- 극단 생활의 정재은 작, 송미숙 연출의 ‘모래탑’ 성황리에 마무리
- 낭독공연 제약 뛰어 넘어...관객 반응 다양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극단 생활(대표 정중헌)이 제2회 공연으로 5월 7일부터 10일까지 명륜동 창조소극장 무대에 올린 정재은 작, 송미숙 연출의 ‘모래탑’은 낭독공연의 제약을 뛰어넘어 관객들로부터 다양한 반응을 일으켰다.
‘모래탑’은 6명의 독서클럽 회원들이 화가 천경자의 삶과 예술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이를 자신의 생활 속에 투영시켜 변화를 일으키는 과정, 그러면서도 현실 속에서 환상적 체험도 해보는, 그래서 화가 천경자를 모르던 관객들도 화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는 인문학적 연극이기도 했다.
처음 희곡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공간감이 느껴지지 않아 공연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계 중진인 송미숙 연출은 우선 희곡에 없던 해설(임상혁)을 통해 공간을 이해시키고, 지문으로 모든 상황을 설명해 관객들이 상상토록 정리했다. 특히 송 연출은 등장인물 6명의 특징을 살려 입체적인 캐릭터로 독립성을 지니게 했다.
화가의 삶과 예술을 무대화한 만큼 그림의 이미지나 영상을 우선 떠올릴 수 있었으나 저작권 등 여러 제약에 부딪혀, 무대에 ‘황금의 비’ ‘탱고가 흐르는 황혼’ 등 4점의 복제 그림을 이젤에 올려놓아 관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이야기는 미술 전공자이자 해설가인 지현이 리드하는 ‘천경자의 환상여행’읽기 독서 모임에서 펼쳐진다. 이 모임은 전시장을 방문하고, 자화상도 그리는 4주간의 과정이다.
주부, 회사원, 아이를 키우는 여성, 연출가, 전문직 등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을 가진 이들이 모여 ‘천경자’라는 화가와 작품, 미술과 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는 점차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각자의 기억과 감정, 경험을 나누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지현(강경림)을 중심으로 소영(임인재), 유정(차유경), 철수(김진태, 양대국), 은수(정재연), 미진(이하늘) 등 회원들은 천경자의 삶과 작품, 예술계의 논란 등을 읽고 토론하며, 예술가를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작가는 그 안에서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 여성의 정체성, 창작의 현실과 조건, 그리고 “나도 그랬으면...” 하는 상상을 통해 생활의 작은 변화를 꿈꾸게 된다.
진정한 화가가 되기 위해 명예와 안정을 버리고 힘든 길을 선택했던 천경자 화가의 삶은 독서클럽 멤버들에게 크고 작은 변화를 일으키게 한다. 지현은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고, 철수는 이 이야기로 연극을 만들고자 한다.
정재은 작가는 “‘모래탑’은 ‘천경자’라는 화가의 삶을 따라가며 우리 안의 질문과 욕망, 경계를 함께 마주하게 하고 싶었다”고 작의를 밝혔다.
“귀로 들으면서 그림(영상)이 그려지는 색다른 느낌을 받았어요.“
”화가 천경자에 대해 가짜 그림 사건밖에 몰랐었는데 낭독공연을 보고 정말 멋진 화가라는 것을 알았고, 전시장에 가서도 듣기 어려운 화가와 그림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어요.”
“극 중에 나오는 배역들이 경단녀라든가 육아가 힘겨운 엄마 등 우리 주변 인물들 같아서 친근함을 느꼈고, 화가 천경자에 대한 접근 방법이나 해석이 각자의 입장에서 달라 좋았어요. 공연을 보고 그림과 관련된 모임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품을 제작한 필자는 ‘모래탑’은 재미와는 좀 먼 작품이라고 여겼는데 첫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은 의외로 “재미있었다”는 반응이 많았고, "연극의 특징인 상상력을 현장에서 체험했다“는 관극 소감도 적지 않았다.
낭독공연 ‘모래탑’은 현재 영국 런던에 체류 중인 정재은 작가의 대학로 데뷔작이다. 한예종 연극원 극작과를 나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기획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는 정 작가는 ”제가 쓴 글을 세상에 내놓는 일은 여전히 부끄럽지만 여러 사람들이 함께 완성해 무대에 올리니 새롭고 설렜다“고 첫 공연의 소감을 전해왔다.
데뷔작이라 공연으로 미진한 점도 적지 않았는데 중진 송미숙 연출은 해설자를 신설하고 6명의 배우들이 자신의 특기를 살려 화가 천경자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관심과 드라마틱한 삶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대화로 나누게 캐릭터를 잡아주었다.
송 연출은 ”각양각색의 느낌과 색깔로 천경자 화가의 삶과 예술이 관객에게 잘 전달되도록 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차유경 임인재 김진태(양대국) 강경림 정재연 이하늘 배우는 각자의 위치에서 6인의 시선으로 천경자 화가의 삶과 예술을 조명, 낭독극이지만 토론, 미술관 순례, 자화상 그리기 등 여러 상황을 연기와 화술로 그려내 관객들에게 한 작가의 전모를 입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게 했다.
해설을 맡은 임상혁 배우는 밋밋할 수 있는 이야기를 명확한 공간 구성과 배우의 역할 제시로 관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마지막에 배우들은 환상 속에서 천경자 화가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례식을 치르는 설정은 이 공연의 백미였다는 평을 들었다.
극단 생활의 낭독공연 ‘모래탑’은 4회 공연에 약 250여 명이 관람했는데 연극인들의 관심이 컸다. 마지막 공연에는 원로연극인들의 모임인 대학로연극인광장(대연장) 노경식 회장과 회원 20여 명을 비롯해 박정의 서울연극협회 회장, 강선숙 여성연극인협회 이사장, 백수련 김재건 김화영 배우, 권혁우 연출 등이 관람했다.
10일 막공 후 커튼콜 후에 간단한 세레머니가 열렸다. 출연 배우를 대표해 양대국 배우가 송미숙 연출을 소개했고, 이어 제작자인 극단 생활 정중헌 대표에게도 발언 기회를 주었다.
필자는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영국 런던에 체류 중인 정재은 작가의 문자 메시지를 전했다. 공연을 보지 못해 아쉬움을 표한 정 작가는 "부족한 작품 봐주셔 감사해요. 앞으로 더욱 정진해 더 좋은 작품을 쓰겠습니다"고 했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소감을 피력했다.
첫째는 극작을 전공하고도 취업으로 인해 희곡을 쓰지 못했던 딸의 창작을 낭독공연이지만 무대에 올려 연극 동네에 데뷔시킨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는 것.
둘째는 간암 수술로 몸이 편치 않은 제작자를 위해 송미숙 연출과 차유경 임인재 김진태 강경림 정재연 양대국 이하늘 임상혁 배우의 열정으로 낭독이지만 입체적이고 상상력을 자극한 재밌고 참신한 공연을 올릴 수 있어 진심 감사했다는 것.
셋째는 화가 천경자를 오롯이 조명하는 창작극을 강영걸 연출과 함께 7월 중순 대학로 공간아울에서 선보이겠다는 것.
이 세 가지가 이루어져 필자는 기분이 좋았고 행복했다.
화가 천경자를 공연으로 재조명하는 작업에 열정을 쏟아온 극단 생활은 낭독공연 ‘모래탑’을 2026년 상반기 정극으로 올리는 기획을 검토 중이며, 서울문화재단 2025 원로예술지원사업에 선정된 ‘슬픈 전설의 화가’로 색다른 형식의 화가 천경자를 주인공으로 한 창작극을 선보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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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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