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객석 가득 메운 국립극장 대표브랜드 '마당놀이 모듬전'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객석 가득 메운 국립극장 대표브랜드 '마당놀이 모듬전'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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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극장 연말연시 대표브랜드로 자리매김
- 손진책 연출, 배삼식 극본, 박범훈 음악, 국수호 무용 참여
- 14년 만에 다시 무대 오른 마당놀이 명인 3인방, 윤문식·김종엽·김성녀
- 내년 1월 30일까지 국립극장 하늘서 공연
사진=정중헌
국립극장 ‘마당놀이 모듬전’ 장면/사진=정중헌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오늘 오신 손님네 잘 왔소!”

마당놀이 관객이 이처럼 많은 줄은 미처 몰랐다. 낮 2시인데도 장충동 일대 거리에 60~70대 남녀 시니어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국립극장으로 향했다. 1981년 마당놀이 초기부터 지켜봤지만 어르신 고정관객이 이렇게 형성되어 있는 줄은 몰랐다.

18일 낮 3시. 국립극장 하늘에는 쌀쌀한 날씨는 아랑곳없이 중장년 관객들로 객석 800석이 거의 찼다. 간혹 젊은이들도 보이는데 상당수는 부모님을 모시고 온 효심 세대였다.

국립극장의 연말 토종브랜드로 자리매김한 마당놀이! 

사진=정중헌
국립극장 하늘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사진=정중헌

비엔나 등 세계 유수의 공연장에 연말연시 대표 브랜드가 있듯 지난해 취임한 박인건 극장장이 “풍자와 해학을 담아낸 마당놀이야말로 국립극장의 정체성을 담아내면서도 전 세대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대표적 공연”으로 정했다.

원형극장인 하늘에서 매년 연말에 시작해 연초까지 장기 공연할 수 있도록 전통예술 전문 기획사인 ㈜인사이트모션(대표 김지욱)이 프로모션을 맡았다.

손진책, 배삼식, 박범훈, 국수호 최고들이 뭉쳤다. 2024년 ‘국립극장 마당놀이’가 이들에 의해 새롭게 부활했다.

손진책 연출은 1981년 문화방송과 함께 마당놀이를 정립한 분으로, 극단 미추를 거쳐 2014년 국립극장으로 무대를 옮겨 마침내 토종브랜드로 정착시킨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 초창기 극본은 김지일이 썼으나 지금은 극작가 배삼식과 찰떡 호흡을 이루고 있고, 여기에 놀이에 맞는 국악을 작곡가 박범훈이 만들고, 무용가 국수호는 원형무대에 맞춰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춤사위로 마당놀이의 신명을 돋웠다.

국립극장 ‘마당놀이 모듬전’ 장면/사진=국립극장

윤문식, 김종엽, 김성녀. 마당놀이 명인(名人) 3인방이 14년 만에 다시 무대에 섰다. 마당놀이의 특성은 현장성인데 그 현장을 휘젓던 예인들이 다시 마당에 섰다.

걸쭉한 입담의 윤문식, 고전 인물에 어울리는 김종엽의 은근하면서도 구성진 연기, 춤과 노래 연기 3박자를 갖춘 김성녀. 70~80대인 이들의 원숙한 스타성이 있기에 전국에서 버스 대절해 단체 관객이 오고, 일본에서도 골수팬이 오는 것이리라.

이들이 나오자 객석에서 환성이 터졌고, 젊은 세대의 패기 넘쳐나는 무대에서도 이들의 존재감은 탁월했다.

‘마당놀이 모듬전’

국립극장 ‘마당놀이 모듬전’ 장면/사진=국립극장

마당놀이 역사 40여 년, 웬만한 고전 작품은 놀이화 되었지만, 고전의 매력은 시대가 변해도 대중들이 여전히 애호한다는 것이다.

우리 전래작품 중 으뜸은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일 것이다.

올해 국립극장 마당놀이는 이 3대 명작을 한 무대에서 모듬으로 보여주는 기발한 발상이다.

심청과 몽룡이 초야를 치르려는데 난데없이 심봉사가 등장하고, 심청이 공양미 3백 석에 팔려가는데 처자식 거느린 흥부는 놀부에게 밥 빌러 갔다가 호되게 맞는 식이다. 세 고전의 하이라이트를 마당에서 모듬으로 보여주니 관객들은 배가 절로 부를 수밖에 없다.

스펙터클한 원형 무대

사진=정중헌
국립극장 ‘마당놀이 모듬전’/사진=정중헌

국립극장 하늘을 마당놀이 특성에 맞게 무대미술가 박동우가 고전미와 기능성을 살려 멋지게 디자인했다.

의상과 장신구(김영진), 다양한 소품(김상희)등이 원형무대를 화려하게 수놓고, 현장 연주(김영절 지휘 중앙국악관현악단)와 군무(국수호무용단)가 어울려 웬만한 뮤지컬보다 더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아우라를 보여준다.

무대에 출연 인원만 50여 명인데, 눈 깜짝할 사이에 세 고전의 명장면들을 스펙터클하게 변주하는 기술이 놀랍다.

마당놀이 명인들의 풍자와 해학 그리고 즉흥성

윤문식은 심봉사, 김성녀는 뺑덕, 김종엽은 놀보... 3인은 대본대로 긴 대사를 척척 해내면서도 촌철살인, 마당놀이의 핵심인 풍자와 해학을 틈새에 던진다.

요즘 시국이 뒤숭숭해서 직접적인 코멘트는 삼가는 분위기나, 슬쩍슬쩍 건드리는 재미가 쏠쏠하고 관객을 하나로 만드는 재주가 남다르다. 풍자의 수위가 넘치지 않고, 화합을 강조하여 마당놀이의 특징인 '함께'의 의미를 살려주었다.

창극단의 재주꾼들과 오디션으로 뽑은 마당놀이 전문 배우들

사진=정중헌
국립극장 ‘마당놀이 모듬전’/사진=정중헌

젊은 소리꾼들이 주축이 된 창극의 활성화는 마당놀이에도 세대교체를 일으켜 생기를 불어넣은 듯하다.

이번 모듬전의 주요 배역은 창극단 단원들이, 스펙터클한 장면은 오디션으로 선발한 젊은 배우들이 맡아 전개가 빠르고 에너지가 넘쳤다. 국립극장이 마당놀이를 고유브랜드로 삼은 것도 이 같은 인적 자원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신구세대 배우들의 조화

심청(민은경 송나영), 춘향(이소연 백나현), 몽룡(김준수 정보권), 흥보(유태평양 이재현), 월매(조유아 전애현), 방자(정준태 윤석기), 변학도(최승호 정보권), 향단(홍승희), 흥보처(유희경), 놀부처(윤지선 전애현) 등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의 기량이 고루 뛰어나 마당놀이의 미래는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부른 소리 한마디.

객석 맨 앞에서 2시간 넘게 모듬전을 보다 보니 포만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관객들이 다 아는 3대 고전의 하이라이트를 한 장면 한 장면 정성들여 보여주려다 보니 나중에는 소화불량 증세까지 느껴졌다. 엇비슷한 대형 장면은 중복감이 없도록 정선하고, 대신 걸쭉한 입담으로 관객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만담이나 해학이 깃들여지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국립극장이 마당놀이를 연말연시 토종브랜드로 공연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사실 늘어가는 고령인구들이 갈만한 곳도 볼만한 공연도 많지 않은데, 시니어 고정관객이 엄청난 마당놀이야말로 대표브랜드로 더욱 육성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손진책 연출과 그의 일행들이 마당놀이를 장르화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면 좋을 것이다.

공연평론가 윤중강은 “마당놀이에는 관객이 관객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내가 웃고, 네가 웃고, 우리가 웃는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가 된다”고 했다.

이날 필자는 국립극장 하늘에서 이 같은 아우라를 체험했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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