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레이스 역 서지유 배우의 매력, 김동현·신현종 배우의 코믹한 연기 배틀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4일 명륜동 씨어터 쿰에서 관람한 신성우 작, 원종철 연출의 연극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미술품 사기’라는 진진한 소재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세 가지 타입으로 그려낸 화제작이다.
신성우 작가의 번득이는 기지, 배우 출신 원종철 연출의 경쾌하면서 풋풋한 무대, 그리고 서지유·김동현·신현종 배우의 탕탕 튀는 케미가 삼합을 이뤄 풋과일 같은 상큼한 뒷맛을 안겨 주었다.
이 연극은 재벌 부인들을 상대로 가짜 그림을 팔았다는 사기죄로 조사받는 그레이스(서지유)라는 세련된 미술품 딜러와 신원 파악도 못한 채 피의자의 가짜 논리에도 밀리는 털털하면서도 인간미를 풍기는 검사(김동현), 다소 과장된 듯 보이지만 재밌는 캐릭터의 변호사(신현종)의 공방을 웹툰처럼 탱글탱글하게 그려냈다.
요즘 대학로에서 '핫한 작가'로 꼽히는 신성우는 천경자의 가짜그림 사건, 한때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불리던 여성의 학력 위조 사건, 모 가수의 대작(代作) 사건 등을 버무려 진위(眞僞)를 가리는 수사극 형식으로 엮어냈다.
유명 화가의 명작 도난이나 가짜 사건은 서구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흥미로운 토픽이다. 가짜가 진짜를 뺨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신성우 작가는 희곡에서 진짜와 가짜의 논리를 현란하게 펼치고, 이를 그레이스 역의 서지유 배우가 무대 위에서 더 그럴듯하게 연기했다.
가짜와 진짜의 다른 점을 말하는 대목이 특히 흥미로웠다. 진짜에는 어딘가 작가의 고뇌한 흔적이 남아있지만, 가짜는 일사천리로 베껴 매끈하다는 것이다.
원종철 연출은 씨어터 쿰의 넓고 깊은 무대를 시원하게 활용해 극에 변화를 주었다. 검사가 피의자를 조사할 때, 변호사가 의뢰인을 만날 때는 흰 벽으로 칸막이를 해 심플하면서 긴장감을 조성했다. 텅 빈 액자로 처리한 그림의 프레임 안에서 그레이스가 만들어내는 라스트의 미장셴은 일품이었다.
서지유 배우는 여러 무대에서 멋진 연기력을 보여왔는데 특히 이번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미술품 경매인은 적역이었다. 고가 미술품의 내력을 꿰고 있는 그는 허영심 가득한 유한층 고객에게 멋지게 그림을 팔아넘기는 능력자다. 그런데 그 그림의 제작 연도 이전에 작가가 작고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기범이 된 것이다.
그레이스는 인정 신문을 하는 검사에게 묵묵부답, 자신은 죄가 없다고 항변한다. 경매사 또는 큐레이터로서의 그레이스와 피의자로서의 자신을 구분해 연기하는 서지유의 배우의 연기는 ‘매력’이외의 수식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서 진짜 같은 가짜 논리를 정당화하는 그의 언변과 온몸에서 우러나는 캐릭터의 아우라는 그의 역할을 결코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매체에서 활동하는 김동현 배우의 연기를 무대에서 보는 것 역시 신선하고 매력적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자신의 개성을 살린 허술한 듯하면서 욕망도 표출하는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해내 검사지만 밝아서 더 멋졌다.
신현종 배우는 다소 과장된듯한 캐릭터를 설정해 극에 파격과 활력을 주는 연기를 보였다. 의뢰인을 변호하는 논리가 흥미로웠을 뿐 아니라 연기파 배우로서의 그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어 좋았다.
필자가 특히 이 작품을 애정하는 이유는 미술기자를 하면서 그 세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재가 구미에 맞는데다 연기 앙상블도 좋아 재미있게 관람했다.
다만 초반의 팽팽한 긴장이 중반에 느슨해지는 바람에 라스트 클라이맥스의 텐션을 끌어올리는 힘이 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더 사견을 말하자면 그레이스는 일관되게 자신의 캐릭터를 펼쳐나갔지만, 검사와 변호사는 논리를 펴다마는, 캐릭터를 매듭짓는 부분이 좀 허술해 보였다.
아무튼 연극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제목 그대로 대학로 연극동네에 화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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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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