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진실’을 향한 작가의 멈출 수 없는 ‘행보’...뮤지컬 '에밀'
[주하영 365칼럼] ‘진실’을 향한 작가의 멈출 수 없는 ‘행보’...뮤지컬 '에밀'
  • 주하영
  • 승인 202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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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
- 1902년 9월 29일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의 마지막 밤에 관한 상상
-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대본 공모 당선작
'로로르'에 게재된 '에밀(박유덕)'의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글은 프랑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 파장을 낳는다.
뮤지컬 '에밀' 공연 장면. '로로르'에 게재된 '에밀(박유덕)'의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글은 프랑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 파장을 낳는다./사진= 프로스랩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진실이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의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는 '진실 사회'에서, 세상 사람들 모두가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지만 “21세기로 들어서면서 ‘진실’이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가 150년 전에 비해 약 3분의 1로 감소했다”고 말했다.

진실이 명백하고 단순했던 시대를 지나 각자의 진실이 다르고 서로의 진실을 신뢰하지 않는 현재의 ‘위기’에 도달한 것은, 무엇이 진실인가보다는 ‘누구에 의해’ 진실이 확립되는가에 더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바지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아직 “진실에 안녕을 고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고 피력했다.

바지니에 따르면, 사람들은 여전히 거짓에 분노하고, ‘탈진실(post-truth)’이라는 말에 불안을 느낀다. 이성과 논리보다는 직관과 감정에 따른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는 인간의 뇌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진실을 분별하는 일의 복잡함과 어려움에 대한 인식을 가중시켰다. 하지만 “탈진실이라는 용어가 횡행한다는 것은 오히려 진실에 대한 갈망이 높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진실을 파악하고, 발견하고, 설명하고, 입증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과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하고, 남용하기란 놀라울 정도로 쉽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하고, 진실로 간주되는 것들의 “진정성”을 검증하는 방법을 “역사와 철학”을 통해 찾아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진실의 남용이 이루어졌던 과거의 ‘역사’를 통해 배우고, 진실의 이상적인 모습을 미래의 ‘철학’으로 세워야만, 현재의 위기를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에밀' 공식 포스터 컷.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의 대본 공모 당선작으로 선정된 뮤지컬 '에밀'은 2023년 2월, 대본 공모 유통 프로모션 ‘대본의 발견’ 쇼케이스를 거쳐, 2024년 초연을 선보였다.
뮤지컬 '에밀' 공식 포스터 컷.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의 대본 공모 당선작으로 선정된 뮤지컬 '에밀'은 2023년 2월, 대본 공모 유통 프로모션 ‘대본의 발견’ 쇼케이스를 거쳐, 2024년 초연을 선보였다./사진= 프로스랩

지난 9월 초, “행동하는 지식인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자연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Émile Zola)’의 마지막 밤에 관한 상상을 담은 뮤지컬 '에밀'이 3개월간의 여정의 막을 내렸다.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의 대본 공모 당선작으로 선정된 뮤지컬 '에밀'은 2023년 2월, 대본 공모 유통 프로모션 ‘대본의 발견’ 쇼케이스를 거쳐 제작사 프로스랩에 의해 두 번째 뮤지컬 신작으로 탄생했다.

뮤지컬 '에밀'은 “진실은 새벽을 깨우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주장하며, 은폐와 조작에서부터 진실로 나아가기 위한 길을 몸소 실천했던 작가 졸라의 말년을 다룬다.

1898년 졸라는 1894년 독일에 기밀을 넘긴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유대인 프랑스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Alfred Dreyfus) 사건과 관련해 진실 규명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편지를 '로로르'에 게재한다.

‘나는 고발한다...!(J'Accuse...!)’라는 제목의 글은 1870년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패배로 인해 독일을 향한 적대감이 만연해 있던 프랑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 파장을 낳는다. 이후 졸라는 반드레퓌스파의 과격분자들로부터 꾸준한 테러 및 살해 협박을 받게 되고, 1902년 9월 29일 자택에서 의문의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다.

1898년에 '에밀(박유덕)'은 1894년 독일에 기밀을 넘긴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유대인 프랑스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해 진실 규명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편지를 게재한다.
뮤지컬 '에밀' 공연 장면. 1898년에 '에밀(박유덕)'은 1894년 독일에 기밀을 넘긴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유대인 프랑스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해 진실 규명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편지를 게재한다./사진= 프로스랩

드레퓌스 사건의 본질이 당시 프랑스뿐 아니라 전 유럽을 휩쓸고 있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반유대주의의 영향 아래에 있음을 인지한 졸라는 1897년부터 3년간, 13편의 글을 게재하며 대중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그 글들을 모아 1901년 '멈추지 않는 진실'을 출간한다.

그는 소설을 통해 더 많은 독자들의 이해를 확장하고자 드레퓌스 사건을 소재로 발전시킨 '진실(Vérité)'을 완성하지만, 미처 발표하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른다.

사망 당일, 졸라는 습하고 추운 침실에 불을 피워 줄 것을 하인들에게 부탁하고 아내 알렉산드린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하인들은 석탄 연기에 질식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졸라와 의식을 잃은 채 침대에 누워있는 알렉산드린을 발견했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진 알렉산드린은 무사했지만, 바닥에 쓰러진 졸라는 20분이 넘는 인공호흡에도 불구하고 회생하지 못했다.

졸라의 사망은 암살에 관한 각종 의혹을 낳았고, 수사와 검시가 이루어졌지만 결국 자연사로 발표되었다. 하지만 1953년, 졸라의 옆집 지붕을 수리하던 난로 도급업자가 고의로 졸라의 집 굴뚝을 막아 살인을 의도했다는 고백을 1927년 임종 직전에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의문은 증폭되었다.

뮤지컬 '에밀' 공연 사진. 실존인물 '에밀 졸라'의 말년에 상상을 더한 공연은 '서재'라는 제한적인 공간을 통해 펼쳐진다. 무대 디자인을 맡은 '남경식'에 따르면, 서재의 공간은 '밀실'처럼 존재하며, 두 인물의 대립을 강조한다.
뮤지컬 '에밀' 공연 장면. 실존인물 '에밀 졸라'의 말년에 상상을 더한 공연은 '서재'라는 제한적인 공간을 통해 펼쳐진다. 무대 디자인을 맡은 '남경식'에 따르면, 서재의 공간은 '밀실'처럼 존재하며, 두 인물의 대립을 강조한다./사진= 프로스랩

뮤지컬 '에밀'은 졸라의 죽음을 둘러싼 이러한 의문과 의혹 속에서 그가 삶의 마지막 날, 젊은 청년 ‘클로드(Claude)’와 알려지지 않은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모른다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자택에 함께 머물렀던 졸라의 아내 알렉산드린이나 하인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졸라의 어릴 적 친구이자 화가인 ‘폴 세잔’의 부탁을 받고 그의 그림을 전달하러 왔다는 가상의 인물 클로드와 실존 인물 에밀이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머무는 ‘서재’만을 배경 공간으로 삼는다.

본질적으로 2인극을 표방하는 뮤지컬 '에밀'이 주목하는 것은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에 명성을 쌓은 40년 경력의 성공한 작가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알지도 못하는 ‘타인’의 무죄와 정의구현을 위해 ‘어떻게 끝까지 행진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다.

드레퓌스 사건 이전에는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거나 개입하지 않던 졸라가, 그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유대인을 좋아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고, 특별히 가까이 지내는 유대인 친구도 없”으면서, 프랑스의 ‘적’으로 선포되어 ‘악마도’에 유배된 드레퓌스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그토록 애쓴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클로드(구준모, 왼쪽)'는 8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드레퓌스 사건을 향한 뜨거운 논쟁과 대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에밀(박영수)'이 겪는 곤란과 위협에 대해 말한다.
뮤지컬 '에밀' 공연 장면. '클로드(구준모, 왼쪽)'는 8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드레퓌스 사건을 향한 뜨거운 논쟁과 대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에밀(박영수)'이 겪는 곤란과 위협에 대해 말한다./사진= 프로스랩

뮤지컬 대본과 가사를 쓴 김소라에 따르면, “어떤 대가가 따라올지 뻔히 알면서도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에 대한 상상이 첫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또, 1906년 마침내 드레퓌스에게 내려졌던 유죄 선고가 오류였음이 만천하에 공표되기 4년 전, 그토록 모진 비난과 협박을 받으면서도 열망했던 결과를 보지 못하고 사망에 이른 졸라를 위해 ‘위로가 되는 공연’이었으며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한다.

1894년 드레퓌스 대위는 비공개로 진행된 군사 재판에서 필적 감정에 의해 독일에 전달된 문서의 작성자로 추정되고, 간첩죄로 종신 유배형을 선고받는다.

1896년 피카르 중령에 의해 해당 문서의 실제 작성자가 에스테라지 소령이라는 것이 드러나지만, 오판을 바로잡기 위한 국방부의 사건 재검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상원 부의장 쉐레르케스트네르의 드레퓌스 재심 운동 확산과 드레퓌스의 형 마티외의 고소로 인해 에스테라지의 유죄에 관한 재판이 열린다. 상부로부터 압력을 받은 필적 전문가들은 거짓 증언을 하고, 에스테라지에게 무죄가 선고된다.

졸라는 재판의 결과에 분노해 자신이 명예훼손죄로 기소될 것을 알면서도, 사건과 관련된 모든 공범자들을 고발하는 내용의 편지 ‘나는 고발한다’를 공식적으로 신문에 게재한다.

'에밀(박영수)'이 발표한 글 '나는 고발한다'는 “지식인의 상징”이 되고, 당시 유럽을 포함한 세계에서 반유대주의가 논의되고 인식되는 방식에 변화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는다.
뮤지컬 '에밀' 공연 장면. '에밀(박영수)'이 발표한 글 '나는 고발한다'는 “지식인의 상징”이 되고, 당시 유럽을 포함한 세계에서 반유대주의가 논의되고 인식되는 방식에 변화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는다./사진= 프로스랩

영국 작가 마이클 로젠은 오늘날 서구 유럽에서 지식인들이 국가를 비판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으로 인식되지만, “대부분의 국민이 국가의 사법 시스템과 정부를 숭배했던 19세기 후반”에 졸라의 행위는 상당히 두려움을 낳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졸라가 ‘고발’의 순간부터 “지식인의 상징”이 되었고, 당시 “유럽을 포함한 세계에서 반유대주의가 논의되고 인식되는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면에서, 그의 ‘헌신’이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로젠에 따르면, 40권에 달하는 작품들로 “프랑스 문학의 확산에 기여한” 60세의 소설가 졸라는 “프랑스 지도에 똥을 묻힌 돼지”에 비유되는 모욕과 프랑스 최고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수훈자 자격 박탈과 같은 수치를 감당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불안과 고립, 외로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반드레퓌스파의 모든 분노를 다른 사람들에게 확산시키지 않고 “오직 한 사람, 그 자신에게만 집중”시켰고, 당대 프랑스에서 “합법적인 정치 운동”처럼 여겨지던 ‘반유대주의’를 인종차별과 혐오라는 보다 광범위한 논쟁으로 이끌어냈다.

로젠은 졸라가 차별과 혐오, 편견과 박해가 “프랑스 공화정의 핵심 가치인 자유, 평등, 박애”와 다원주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임을 드러냄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검증하려는 노력을 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암살 시도에 관한 제보를 받은 날 밤, '에밀(박영수, 오른쪽)'은 액상프로방스의 험준한 바위산을 그린 '생 빅투아르 산' 그림을 전달하러 왔다는 '클로드(구준모)'의 방문을 받는다.
뮤지컬 '에밀' 공연 장면. 암살 시도에 관한 제보를 받은 날 밤, '에밀(박영수, 오른쪽)'은 액상프로방스의 험준한 바위산을 그린 '생 빅투아르 산' 그림을 전달하러 왔다는 '클로드(구준모)'의 방문을 받는다./사진= 프로스랩

뮤지컬 '에밀'은 졸라가 자신처럼 사회의 현실을 생생하게 기록하는 “살아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기를 꿈꾸는 청년 클로드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실제 인물이 역사적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느꼈을지 모를 ‘내밀한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암살 시도에 관한 제보를 받은 날 밤, 에밀(졸라)은 액상프로방스의 험준한 바위산을 그린 그림을 전달하러 왔다는 클로드의 방문을 받는다. 문밖에 그냥 두고 가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배달 증명서에 꼭 서명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클로드를, 에밀은 여러 개의 잠금장치가 달린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인다.

'에밀(정동화, 왼쪽)'은 30년간 형제와 다름없이 지냈던 친구 세잔과 사이가 멀어진 지금, 그가 두 사람의 많은 추억이 담긴 그림을 '클로드(정지우)'를 통해 전달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뮤지컬 '에밀' 공연 장면. '에밀(정동화, 왼쪽)'은 30년간 형제와 다름없이 지냈던 친구 세잔과 사이가 멀어진 지금, 그가 두 사람의 많은 추억이 담긴 그림을 '클로드(정지우)'를 통해 전달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한다./사진= 프로스랩

에밀은 어릴 적부터 30년간 형제와 다름없이 지냈던 친구 세잔과 사이가 멀어진 지금, 그가 두 사람의 많은 추억이 담긴 ‘생 빅투아르 산’의 그림을 보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창문이 깨지면서 무언가가 날아들고, 누구의 소행인지 잡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간 클로드는 팔을 다친 채 집으로 돌아온다. 에밀은 클로드가 어떻게 자신의 주소를 알고 찾아왔는지 의심하면서도, 다친 클로드가 잠시 집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해준다. 독하고 저렴한 술 압생트를 재킷 주머니에서 꺼내 진정하려는 클로드에게 포도주를 증류한 고급술 코냑을 대신 권하는 에밀은 탐색전에 나선다.

에밀은 '클로드(김인성)'가 어떻게 자신의 주소를 알고 찾아왔는지 의심하면서도, 다친 클로드가 잠시 집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해준다.
뮤지컬 '에밀' 공연 장면. 에밀은 '클로드(김인성)'가 어떻게 자신의 주소를 알고 찾아왔는지 의심하면서도, 다친 클로드가 잠시 집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해준다./사진= 프로스랩

묘하게 긴장감이 도는 분위기 속에서 클로드는 8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드레퓌스 사건을 향한 뜨거운 논쟁과 대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에밀이 겪는 곤란과 위협에 대해 말한다.

클로드는 드레퓌스 사건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입장으로 인해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광기’의 상황들을 언급하며, 모든 것이 다 “민족의 반역자”, “조국을 위험에 빠뜨린 프랑스 최악의 남자”인 졸라(에밀)의 탓이라고 비난하는 여론에 대한 에밀의 솔직한 생각을 묻는다.

독하고 저렴한 술 압생트를 재킷 주머니에서 꺼내 진정하려는 '클로드(정지우)'에게 포도주를 증류한 고급술 코냑을 대신 권하는 '에밀(정동화, 왼쪽)'은 탐색전에 나선다.
뮤지컬 '에밀' 공연 장면. 독하고 저렴한 술 압생트를 재킷 주머니에서 꺼내 진정하려는 '클로드(정지우)'에게 포도주를 증류한 고급술 코냑을 대신 권하는 '에밀(정동화, 왼쪽)'은 탐색전에 나선다./사진= 프로스랩

뮤지컬 '에밀'은 졸라의 자전적 삶에 기반한 첫 번째 소설 '클로드의 고백'의 주인공의 이름을 가진 인물이자, 졸라를 “시대의 증인”으로 만든 ‘루공 마카르 총서’ 20권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13번째 소설 '제르미날(Germinal)'을 떠올리게 하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졸라의 삶을 ‘인터뷰’처럼 회상하는 구조를 형성한다.

클로드와 졸라(에밀)의 대화는 졸라가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 파리의 빈민가에서 극도로 가난한 환경에 놓였던 시절부터 아세트 출판사에 취직을 하게 되고, 시를 쓰고자 했으나 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소설을 쓰게 된 경위까지, 여러 전기적 정보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젊은 시절의 졸라(에밀)와 마찬가지로 아세트 출판사에서 일을 하면서 작가를 꿈꾸는 클로드는 어쩐지 신뢰할 수 없는 구석이 있지만, 형이 준 ‘펜’에 대해 이야기하며 형과 함께 누워 바라보던 밤하늘을 회상하는 애틋함은 에밀의 마음을 움직인다.

에밀은 형제와 다름없던 친구 세잔을 떠올리고, 현실 속 인물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실제에 근거해 상상으로 재구성하는 졸라(에밀)의 자연주의적 소설 방식이 친구와의 결별을 낳은 사건을 불러온다.

재능을 인정받지 못해 실패한 화가가 자신을 혐오하듯 목을 매 자살하는 결말을 가진 ‘루공 마카르 총서’의 14번째 소설 '작품(L'Œuvre)'은 주인공의 모델이 세잔이라는 세간의 추측과 유사성으로 인해 절교의 원인이 된다.

'클로드(정지우)'와 '에밀(정동화, 오른쪽)'의 대화는 졸라의 전반적인 삶에 관한 전기적 정보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뮤지컬 '에밀' 공연 장면. '클로드(정지우)'와 '에밀(정동화, 오른쪽)'의 대화는 졸라의 전반적인 삶에 관한 전기적 정보를 관객에게 전달한다./사진= 프로스랩

세잔은 1886년 에밀에게 결별을 선언하는 편지를 보내고, 이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완전히 멀어진 이유 가운데에는 드레퓌스 사건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입장과 반대 견해가 작용했다.

‘펜’으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작가로서의 책임”에 관한 클로드의 지적은 에밀로 하여금 발끈하도록 만든다. 에밀은 작가는 현실을 바탕으로 자신이 발견한 ‘진실’을 담아낼 뿐, 독자의 ‘해석’이 다른 것까지 작가가 책임질 수는 없다고 말한다.

본질을 드러내는 ‘예술가의 사명’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에밀은 시대의 모순 혹은 어둠을 인지한 순간, 그 누구보다 먼저 행동하는 것이 지식인의 사명임을 강조한다.

에밀은 “자연은 표면보다 내부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 현상 안에 담긴 ‘진실’을 찾고자 했던 세잔의 그림이, 끝없는 관찰과 세밀함을 통해 ‘진실’을 폭로하고자 한 자신의 소설 창작 방식과 다르지 않음을 설명한다.

클로드는 점점 더 에밀이 ‘왜’ 삶에서 얻은 모든 명예와 관계를 잃으면서까지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는 것인지를 파고들고, 에밀은 ‘왜’ 클로드가 자신을 그냥 죽이거나 드레퓌스의 무죄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될 소설 원고를 훔쳐 가지 않고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지를 알고자 한다.

'클로드(김인성, 오른쪽)'는 어쩐지 신뢰할 수 없는 구석이 있지만, 형이 준 ‘펜’에 대해 이야기하며 형과 함께 누워 바라보던 밤하늘을 회상하는 애틋함에 '에밀(박유덕)'의 마음이 움직인다.
뮤지컬 '에밀' 공연 장면. '클로드(김인성, 오른쪽)'는 어쩐지 신뢰할 수 없는 구석이 있지만, 형이 준 ‘펜’에 대해 이야기하며 형과 함께 누워 바라보던 밤하늘을 회상하는 애틋함에 '에밀(박유덕)'의 마음이 움직인다./사진= 프로스랩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공격처럼 던지는 질문들과 대립하는 의견들, 진실한 속내들은 각자 서로의 삶을 돌아보도록 만든다.

에밀을 향한 클로드의 질문들은 당대 프랑스 일반 대중의 생각뿐 아니라 관객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반영한다. 반대로 클로드를 향한 에밀의 질문들은 그러한 질문을 던지는 대중과 관객의 내면에 자리한 이성을 겨냥한다.

연출을 맡은 이대웅은 '프로그램북'을 통해 뮤지컬 '에밀'이 그려내는 실존인물과 가상인물의 만남이 “여러 모습의 자신을 만나면서 비로소 인간 ‘에밀’에 도달”하게 되는 라인을 구축하고 있음을 언급한다. 실제로 졸라의 삶 속 여러 측면들이 두 인물의 논쟁 속에 응축되어 담기면서 그의 삶을 훑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졸라의 삶과 작품들,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한 배경지식이 있는 경우, 중독성 있는 넘버의 가사와 두 인물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 녹아든 졸라를 향한 비판적 시선들과 모순된 삶, 영웅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품고 있는 고뇌들을 포착하게 되는 재미가 있다.

'에밀(박영수)'은 "어둠이 빛을 내쫓는다해도 마침내 진실은 드러날 것"임을 강조한다.
뮤지컬 '에밀' 공연 장면. '에밀(박영수)'은 "어둠이 빛을 내쫓는다해도 마침내 진실은 드러날 것"임을 강조한다./사진= 프로스랩

에밀(졸라)는 클로드에게 작가란 “쓰지 않으면 못 견디는 운명”을 가진 사람임을 피력한다.

살아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쓰는 것 외에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며, 그 속에서만 자신이 될 수 있기에, 침묵할 수 없음을 강조하는 에밀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진실”을 써 내려간다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무슨 의미인지 클로드가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두 사람의 논쟁 속에서, 클로드는 자신의 행동 아래에 숨겨져 있던 ‘진심’을, 에밀은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가 남기게 될 ‘진실’을 발견한다.

뮤지컬 '에밀' 공연 사진. 마지막 장면은 에밀 졸라를 지지하는 서명과 편지를 보내 응원과 지지를 보내 준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메모판'을 조명한다.
뮤지컬 '에밀' 공연 장면. 마지막 장면은 에밀 졸라를 지지하는 서명과 편지를 보내 응원과 지지를 보내 준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메모판'을 조명한다./사진 출처 = 프로스랩

미국의 소설가 제임스 볼드윈은 작가를 꿈꾸는 모두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글을 쓰지만, 그럴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이 세상에서 없어져서는 안 될 존재”임을 인식한다고 강조했다.

작가의 글은 사실상 “한 사람의 열망과 관심일 뿐”이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의 진심에 공감하는 독자들의 많은 마음이 하나로 연결될 때 “실제로 세상은 바뀌기 시작”한다.

“세상은 사람들이 보는 방식에 따라 변한다”고 말하는 볼드윈은 만약 작가가 사람들이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을 “단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 결국 전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토로한다.

“진실의 빛에 대한 열정”으로 글을 쓰고, “진실과 정의가 폭발하도록 만드는 혁명적 수단”이기를 의도했던 졸라의 행보는 프랑스 아카데미를 대표하는 아나톨 프랑스에 의해 “인류 양심의 역사의 한순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탈진실의 시대에 바지니가 주장한 역사와 철학의 필요성은 ‘에밀 졸라’가 자신의 글을 통해 끊임없이 되풀이한 “진실은 행진하며, 아무것도 그 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는 공언과 그에 따른 행동을 통해 찾아지는 것이 아닐까?

졸라의 12년간의 투쟁과 진실을 향한 행보가 현재에도 의미를 가지는 것은 작가인 그가 사람들이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을 실제로 바꿀 수 있음을 역사 속에서 증명해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상지대 겸임교수, 대림대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공학대학교 지식융합학부(교양교육센터)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집위원 및 이사, 세계문화예술경영연구소 초빙연구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주하영
주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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