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기자들을 취재하다
드라마, 기자들을 취재하다
  • 김희준
  • 승인 200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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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에어 기자 비하, 자초한 측면도 / 김희준



[인터뷰365 김희준] 수목드라마 ‘온에어’가 절정을 달리고 있다. 이 드라마의 주축이 되는 것은 스타와 매니저, 피디와 작가다. 이들이 새로운 드라마 한 편을 제작하기까지의 과정을 중심 줄거리로 하여 연예계의 이면이 사실감 있게 그려지고 있다. 때문에 그동안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이나 상황을 실제와 대비시켜 갖가지 화제를 양산해왔다.



이 드라마를 쓰는 작가는 자신의 활동반경 내에 있는 모든 인물들에게 리얼리티를 주고 있으며 시선에는 애정이 담겨있다. 극의 주축이 되는 네 사람은 물론이고, 결정적일 때 아랫사람 편을 드는 방송국 부장이나 자금 때문에 고민하는 외주제작사 대표 등 실제로 드라마와 연관된 주변 사람들에게도 고루 눈인사를 하고 있다. 이제는 초반에 악덕 매니저의 표상으로 묘사됐던 오승아의 전 매니지먼트사 사장에게도 숨겨진 아픔이 있다며 인간적인 면까지 가미하는 여유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유독 작가가 별로 애정을 가지지 않는 대상이 있다면 그건 기자다. 이 드라마를 꼼꼼하게 다 챙겨 보지는 못했지만 극중 기자 캐릭터가 레이더에 걸린 것은 에밀리 노통브 때문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이름이 나와 유심히 보게 됐다. 극중 오승아가 인터뷰를 하던 중 책에 대한 질문이 나오고 여기자가 에밀리 노통브에 대해 아는 척을 하자 오승아는 노통브에 대해 되묻고 기자가 답을 못하는 사이 오승아는 노통브의 작품에 대해 유창하게 늘어놓는다. 여기자는 말문이 막힌다. 알고 보니 오승아가 휴대전화 검색 덕을 본 것이었지만, 이 장면에서 기자는 아는 척만 했지 실제 아는 것은 없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아무래도 작가가 다른 등장인물과는 달리 기자들에 대해서는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줄 생각이 없는 듯 보이는 대목이다.



드라마에서까지 홀대(?)하지 않더라도 요즈음 연예 기자들의 위상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스타들에게는 신문이 막강한 홍보수단이었다. 때문에 기자와 스타는 싫건 좋건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존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인터넷상에 셀 수 없이 많은 매체가 등장하면서 매니지먼트사나 홍보대행사는 이제 자신들이 매체를 선택해 선별적으로 인터뷰를 하게 됐다. 예전에는 소위 연예계 권력으로 군림하던 것이 매체였다면 지금은 그 위치가 180도 달라진 상황인 것이다.





요즘 기자들이 스타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방송 드라마의 제작보고회 또는 영화 제작발표회 같은 공식석상에서다. 방송드라마 제작발표회는 1,2회 정도 사전제작분 시사회를 하면서 출연 배우들이 나와 기자회견을 갖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영화의 경우는 대개 촬영을 다 마친 후 제작보고회를 연다. 제작보고회나 제작발표회 때면 무대 위에서 출연 배우들이 포토타임을 갖는데 화제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무대 주변에서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사진기자만도 수십 명이다. 사진 촬영과 단체 기자회견이 끝나면 미리 신청한 매체별로 라운드 인터뷰를 갖지만 시간은 대략 30분 내외여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영화의 개별 인터뷰 사정도 마찬가지다. 영화 개봉에 즈음해 출연 배우가 어느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으면 인터뷰 매체가 미리 약속된 시간에 따라 들어와 줄줄이 인터뷰를 한다. 대개는 개봉할 영화에 대한 질문, 그리고 답이다. 다른 질문을 할 시간도 없고 또 아예 개봉작과 관련된 질문만 받겠다고 못을 박고 시작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더군다나 사생활에 대한 질문은 절대사절이다. 드라마 ‘온에어’에서 기자가 오승아에게 한방 먹는 것도 이처럼 변화된 위상과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 드라마에 매체가 다시 등장한 것은 지난 목요일 방송분이다. 오승아의 섹스비디오가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이를 언론이 보도한 것이다. 이른바 섹스비디오 사건은 90년대 후반을 강타한, 대단한 사건이었다. 그때까지 인터넷을 잘 쓸 줄 모르던 40, 50대조차 이 비디오를 보기 위해 인터넷을 배웠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사회적 파장이 컸고 결국 스타 한 사람을 매장시켰다. 극중 오승아의 섹스 비디오가 있다는 것을 언론에 알린 것은 다른 매니지먼트사다. 제보를 받은 신문은 대문짝만한 이니셜을 써서 1면을 장식한다. 하지만 이는 20세기적 접근이다.



만약 언론에 이런 제보가 들어오면 우선 기자들은 ‘증거품’을 확보하려 애쓴다. 오승아의 섹스비디오를 확보해서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이런 기사를 신문 1면에 내는 일은 짚을 지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일이다. 사실, 이같은 기사가 먹히던 시절도 있었다. 해당 스타의 성을 영문자 이니셜로 표기해 세간에 나도는 ‘카더라 통신’을 기사화했고 독자들은 이니셜에 해당하는 배우들 이름 맞추기를 했다. 독자들이 이름 알아맞히기에 성공하는 확률이 높아지자 다음에는 아예 A, B, C 순으로 이니셜을 달고 기사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실명시대에는 먹혀들지 않는다. 아무리 이니셜로 쓰더라도 오승아임을 연상시키는 글자는 단 한 자도 쓸 수 없다.





요즘은 스타들이 인기 토크쇼 프로그램에 출연해 스스로 자신의 열애설이나 사생활에 얽힌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바람에 매체들의 ‘특종’도 사라진 지 오래다. 오히려 기자들은 인기 토크쇼에 출연한 스타들이 무슨 말을 했나에 귀를 기울이는 처지가 됐다. 극중 오승아의 비디오 건이 결국 악성 루머로 밝혀지자 오승아와 매니저는 기자회견을 연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오승아는 기자들에게 엄중 경고한다. 얼마 전 가수 나훈아가 자신에 관한 루머를 해명하는 기자회견장에서 언론을 질타했던 것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이처럼 드라마 ‘온에어’ 속에 극히 적은 분량 등장하는 기자나 저널리즘은 그나마 제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같은 시각은 일부 인정해야 할 면도 있다. 연전에 새 영화를 내놓고 수십 개 매체와 인터뷰를 한 김모 감독은 기자들마다 하는 질문이 너무 똑같아서 인터뷰가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다고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마침 5월 14일이면 본격적으로 기자들의 생활을 그린 드라마가 방영될 예정이란다. 드라마 사상 최초로 방송사 보도국 기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드라마 ‘스포트라이트’에서는 과연 기자들이, 이 시대 저널리즘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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