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대 뮤지컬 만드는 인기테너 박현준
세계최대 뮤지컬 만드는 인기테너 박현준
  • 김두호
  • 승인 2008.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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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기념 <투란도트> 총감독, 세계무대 도전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테너 박현준(한강 오페라단장)은 월드컵기념 <투란도트>의 예술총감독으로 상암 경기장에서 세계 최대의 오페라 공연을 이끌어낸 성악가다. 그때 그가 데려와 연출에 참여시킨 장이모우 감독은 그 경험을 인정받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총감독을 맡고 있다.


“포부를 크게 가져라.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은 ‘대한민국 월드컵 4강'이 있기 전부터 테너 박현준의 성장신념이었고 행동철학이었다. 이탈리아에서만 오페라 <토스카> 등 20여 편의 주역으로 화려하게 조명을 받았고, 국내에서도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한 <라보엠>으로 오페라 공연사상 최다 관객 동원의 기록을 남겼다. 대통령 취임 축하행사나 <열린음악회> 등을 통해 대중 가수 못지않게 인기를 누려온 테너 박현준은 최근 대학 교수직을 던져버리고 또 하나의 거대한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도 한국에서 만든 세계 최대의 뮤지컬을 오페라의 본고장에 상장시키는 작업이다. 열정적이고 자유분방하게 살면서 꿈을 향해서는 초원의 표범처럼 내달리는 젊은 음악인 박현준을 만났다.




KBS <열린음악회>에서 이따금 박 교수의 노래를 듣는다. 방송을 통해 듣지만 매번 테너가수의 강렬한 성량과 타고난 성악가의 파워를 느끼게 한다.

하하하. 지금은 교수가 아니다. 올해 수원대 성악과 교수직을 겸한 벨칸토아트센터 극장장까지 모두 정리하고 내가 1995년에 창단한 한강오페라단 단장일로 돌아왔다. 그동안 <열린음악회>를 포함해 방송사가 주관하는 각종 행사나 연주회에 3백회 쯤, 대통령 취임식이나 광복행사 등까지 출연 횟수가 1천여 회는 넘을 것 같다.



TV 인물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한 걸 보았고, 의상 패션업체의 CF에도 모델로 나왔던 것을 보면 테너가수도 연예인이 안 부러운 인기인으로 느껴진다.

테너는 어느 나라에서든 인기가 높다. 타계한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포함해 디 스테파노, 플라시도 도밍고 등이 모두 일생동안 인기에 묻혀 살았다. 클래식 음악에서 테너의 역할이나 비중도 무겁지만 특히 여성 음악팬들에게 테너는 어느 나라에서나 매우 호감을 받는 인물로 꼽힌다.



당신은 잘 생긴 미남 테너이므로 더욱 인기가 많을 것 같다.

하하하. 부인하지 않겠다. 잘생겼다기보다 매력 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나는 나의 목소리를 사랑하는 모든 여자를 사랑한다.





성악가는 목소리의 음질이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목소리를 관리하는가?

성악도 경기를 앞두고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운동선수와 같은 노력이 따른다. 끊임없이 성대의 기능을 유지 수련, 보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온몸 안에서 고루 울림이 나오도록 공명통을 자극하고 호흡 훈련을 하면서 인체를 일종의 악기로 만드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그런 가운데 이제 성악도 과학도구인 마이크와 접합이 되어 마이크를 통한 소리의 효율적인 활용이 매우 소중하다. 과거에는 마이크를 쓰지 않았다. 오페라도 대형화되고 넓은 홀을 울리게 하는 마이크를 통한 기계적이고 기술적인 효과를 잘 활용하면 발성관리에 크게 신경을 안 써도 되는 시대가 됐다.



어떻게 테너의 길로 들어섰는지 어린 시절 이야기가 궁금하다.

서울사대 출신의 아버지는 국어선생님이었지만 어머니가 여고시절부터 음악에 소질을 발휘하셨고 클래식 음악광이셨다. 형과 나는 일찍 음악에 귀가 뚫려 중학시절부터 성가대에 참여했다. 그런데 형이 먼저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게 되자 가족들이 나의 성악 전공을 반대해 입시과외를 시켜주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독학으로 한양대 음대에 입학했다.




여기에서 잠시 그가 쌓은 남다른 성악이력을 들추어 보았다. 한양대 성악과를 졸업한 박현준은 이탈리아로 옮겨 학업을 계속했다. 명문인 롯씨니 국립음악원을 졸업하고 파르마 국립음악원, 뻬스끼라 아카데미 오페라과, 오지모 아카데미 오페라과, 아꾸아 스빠르타 아카데미 오페라과를 수료 또는 졸업했다. 그 가운데 입학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오지모 아카데미는 졸업을 하지 못하고 중도에 학업을 중단(이유는 아래쪽 인터뷰에서 밝힘)했다. 정력적으로 학업활동을 하는 동안 이탈리아 <엔나>와 <투란도트> 국제콩쿨, <모나코 국제콩쿨>, 오스트리아 <비엔나 콩쿨>에 참가해 입상 가수의 경력을 확보한 뒤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에 진출했다.




당신의 화려한 경력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2003년 세계를 놀라게 한 월드컵 1주년 기념 오페라 <투란도트>의 총감독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실현한 실적일 것 같다. 준비 과정에는 무모한 기획으로 외면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이다. 환상에서 깨어나라는 경고들이 빗발칠 때 오페라는 원래 환상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라고 일축했다. 누구도 나의 방대한 공연기획을 믿지 않았으나 장이모우 감독을 발탁하고 세계 최고의 성악가들을 초청하게 되자 실제 벌어지는 이야기로 믿기 시작하더라.



2005년 세종문화회관에서 보름간 <투란도트>를 재공연할 때도 음악계의 시끄러운 화젯거리가 됐다. 당신은 오페라에 출연하는 주역 테너인가 아니면 오페라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예술 감독이 더 큰 장기인가?

두 가지 모두 나의 평생 직업이다. 자나 깨나 오페라와 함께 숨을 쉬며 살아온 나에게 오페라와 관련된 모든 것이 일의 연장선에 있다. 그런데 월드컵 경기장 <투란도트>를 끝내고 나는 성취감보다 허무감을 느끼는 심각한 방황의 블랙홀에 빠졌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공허한 풍경 같은 것이 가슴 안에서 일어났다. 나는 누구인가? 음악은 무엇이며 왜 그토록 그것에 얽매여 살고 있는가? 그럴 때 나는 포부가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내 음악의 고향 같은 이탈리아로 간다. 그곳은 모든 것이 옛 그대로 남아 나를 맞이한다. 그리고 내가 사는 해안도시 패사로의 이름다운 언덕 집에서 새로운 일을 생각한다.



지금도 이탈리아에 주거할 집을 두고 있는가?

살던 집을 후배들에게 물려주었지만 언제든 내 집처럼 찾아간다. 그런데 이탈리아는 10년, 20년 후에 가도 그때 그 동네와 집들, 그 길, 그 술집들이 변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제 모습으로 있다. 그래서 더 정이 깊게 만든다. 도시의 길도 수백 년 묵은 옛길이라 대부분 골목 같고 그 골목에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그 사람들 목소리가 크고 거리가 좁아서 어딜 가도 사람 사는 동네라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언제 다시 돌아왔는가? 그리고 그곳에서 생각한 다음의 포부는 무엇이었나?

이탈리아 극장 시스템을 연구하다가 수원대학교 성악과 교수로 발령을 받아 돌아왔다.



이탈리아는 당신에게 언제나 그처럼 좋은 기억밖에 없는 곳인가?

아니다. 아픈 기억도 있다. 서른 살 때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최고의 오페라 명문인 오지모 아카데미에 합격했다. 졸업하면 최고의 공연무대인 스칼라극장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된다. 그런데 한 학기의 학업이 끝나갈 무렵 문제가 생겼다. 입학 연령제한보다 한 살이 많다는 것을 누군가가 뒤늦게 고해바쳐 퇴교를 당했다. 유학생 사회에 큰 파문을 남긴 사건의 주인공이 됐다. 좌절감을 극복 못하고 이삿짐을 챙겨 서울로 돌아왔었다.



고발자는 이탈리아인인가?

한국인 유학생이다.



살다보면 포부를 가지고 도전해도 그렇게 실력만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불운도 따른다. 행운이란 것도 필요하다. 불가능에 부딪히거나 좌절을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람에 따라 또는 목적하는 바에 따라 노력으로 성취가 어렵고 한계가 있는 경우도 많지 않는가?

그래도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대학에서도 나는 제자들에게 그렇게 말했고 제자뿐만 아니라 후배들에게도 그 말을 반복한다. 포부가 크면 이루는 결과도 다른 사람보다 크다는 것이 진리 아닌가? 내 개인의 경우 노력이나 도전의지 못지않게 운도 좋았다. 마음먹은 일이 순탄하게 잘 풀리고 재운도 따랐다. 일이 힘들고 운이 없을 때도 있다. 그럴 때 기도한다. 기도하면 눈물이 주르륵 나올 때도 있다. 신은 언제나 흔들리는 인간이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기둥이다. 그렇게 일을 성공시키고 꿈을 이루었다고 스스로 만족한 경우는 한 번도 없다. 오히려 결실이 클수록 성취감 속에는 외롭고 쓸쓸한 공간과 여백이 생긴다. 알고 보면 나의 큰 꿈이란 것들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것이다.



재미있는 시각이다. 꿈이란 결국 자신을 위한 것보다 남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적당한 휴식이나 취미로 머리를 식히는 시간도 소중하다. 자신을 위해 즐기는 것이 있다면?

젊을 때는 나를 위해 집착해 외로움이 많았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타고난 역마살 덕분에 일이 없을 때는 여행을 다닌다. 미국도 자주 가고 몽골에 가서도 오페라 예술총감독을 하고, 중국만 40여 차례 다녀왔다. 하려는 일이 안 풀리면 여행 다니며 될 때까지 고민하고 힘을 찾을 때가 많다. 또 등산을 좋아한다. 지금도 틈나면 북한산, 청계산을 찾는다.





당신은 당신의 목소리를 사랑하는 모든 여자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사랑했다는 것인가?

나는 사랑에 빠지면, 사랑을 위해서라면 여자를 위해 목숨까지 기꺼이 바칠 수 있다. 나는 오페라 속에서 살고 있고 오페라는 모두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들이다. 물론 내 목소리나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관객을 연인으로 생각하는 것은 상상이며 과장일 뿐이다.



가족이 궁금하다.

성장한 아들이 있다. 사랑하는 아내도 있었다. 지금은 싱글이다. 오지모 아카데미에서 학업을 강제로 포기 당해 귀국을 결심했을 때 아내는 현지에서 계속 공연활동을 하자면서 간곡하게 귀국을 반대 했었다. 아마도 돌아가면 더 불행한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서 그랬었는지 모르겠다.



꿈을 이루며 밝게 살아온 당신에게도 우울한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다. 다시 새로운 당신의 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지금 준비하는 대형 공연 프로젝트에 대해 듣고 싶다.

이탈리아 본고장에서 가져온 오페라 <투란도트>를 이번에는 우리의 창작 뮤지컬로 제작해 스칼라극장과 함께 이탈리아 최고 꿈의 무대인 베로나 오페라극장에 가져가는 것이다. 저작권과 관련해 로열티가 없는 우리의 공연물이며 세계 최대의 규모로 제작된다. 2009년 공연을 목표로 곧 출연 가수의 오디션을 위해 20여 개국을 순회 방문한다. 일본과 중국은 우리나라와 연계해서 공연 계획을 세워 두고 추진 중이지만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은 공연 규모와 일정을 더 크게 잡고 있다.



출연 가수나 제작비 규모 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

나와 친분이 있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소프라노 까띠아 리차렐리와 테너 마르띠 루치 등과 협의 중이다. 까띠아 리차렐리는 <오셀로>에서 도밍고와 공연한 오페라 무대의 큰 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오페라 <황진이>를 연출한 이장호 감독이 제작스태프로 참가하고 영화배우 안성기도 출연 의사를 타진 중이다. 세계적인 가수와 함께 신인 스타도 여러 나라에서 발탁해 국제적인 대작 뮤지컬답게 화제를 충분히 불러 모을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가수라고 하지만 성악가로 일컫는 테너에게는 목소리 자체가 연기예술이며 창작예술이다. 테너 박현준은 목소리의 예술과 함께 꿈이 많고 꿈이 큰 오페라 감독의 스케일로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살고 있다. 그의 정열적인 삶은 언제나 새로운 오페라 공연을 향한 포부와 함께 성장하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축제무대로 이어졌다. 그는 음악인생의 후반기로 넘어 선 후 비로소 ‘성악가의 꿈은 결국 자신이 아니라 남을 위하는 것’이라는 발견을 하고 또 다시 오페라에 이어 뮤지컬 <투란도트>의 공연 기획 작업을 시작했다.


박현준은 장시간의 인터뷰를 하는 동안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그 검은 안경 안에 감추어진 눈동자가 거장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는 테너의 묘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한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김두호
김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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