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이수자 이자람 작창,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원작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불운의 최악의 상태가 최고의 행운으로 바뀌면 모든 일이 행복하게 마무리되는 것일까? 행복과 기쁨은 잠시 허락된 것일 뿐, 또 다시 무언가에 쫓기며 나락으로 떨어지는 삶, 그 끝없는 반복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순응을 의미할까, 아니면 저항을 의미할까? 체념으로 인해 희망을 잃은 상태의 무료함일까, 아니면 새로운 의지를 구축해 다시 한번 도전하기 위한 노력의 고취일까? 84일간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 노인이 85일째에 가까스로 커다란 청새치를 낚았는데 상어 떼를 막지 못해 뼈만 남은 물고기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면, 그 노인의 다음날을 맞이하는 태도는 무엇이어야 할까?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1952년 소설 ‘노인과 바다’에는 평생 멕시코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낚시를 해 온 쿠바의 어부 산티아고가 85일째에 사투를 벌이며 잡은 청새치를 잃고 돌아오는 모습이 담겨 있다.
러셀 커닝햄은 영국 언론 ‘가디언’의 ‘희망을 주는 책들’ 코너를 통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소개하면서 늙은 어부 산티아고를 “몽상가”로 평가했다. 그는 산티아고가 “절망의 바다에서조차 희망의 대양으로 항해”하는 인물이며, 일의 진행이나 물결이 나쁜 방향으로 흐르며 거세지는 “역조(逆潮)를 결코 보지 않는” 사람임을 강조했다.
그는 산티아고의 삶에 있어 시험이 시작된 지점은 고기를 잡지 못한 84일이 아니라 길이가 5.5미터나 되고 무게는 700킬로그램에 달하는 청새치가 낚싯줄에 걸린 때라고 말한다.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다시 낮이 되는 긴 시간을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면서 버티는 노인과 청새치의 싸움, 산티아고는 힘을 보충하기 위해 다랑어와 만새기의 살점을 억지로 씹으며 말한다. “다시는 소금과 라임 없이 바다에 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파멸에 이를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라는 유명한 문장을 남긴 ‘노인과 바다’가 판소리로 재창작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이수자로서 ‘사천가’와 ‘억척가’, ‘이방인의 노래’, ‘추물/살인’ 등 문학작품을 판소리로 재창작한 공연을 선보여온 소리꾼 이자람은 2019년 새로운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를 초연했다.
뮤지컬 ‘서편제’로 더 뮤지컬 어워즈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자람은 인디밴드 ‘아마도 이자람밴드’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다양한 장르의 영역에서 활동해 온 소리꾼 이자람은 해외원작들을 판소리화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완성하며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2007년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사천의 선인’을 ‘사천가’로 탄생시키면서 공연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자람은 2011년 브레히트의 또 다른 희곡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판소리화한 ‘억척가’로 3년 연속 전석 매진, 전회 기립 박수라는 기록을 남겼다.
2016년 남미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소설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을 재창작한 판소리 ‘이방인의 노래’로 계속된 이자람의 해외원작 판소리화 작업은 2019년,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로 이어졌다.
2019년 11월 두산아트센터에서 선보인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는 이전의 작품들과 다르게 관객들의 참여가 많이 요구되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넘나드는 ‘함께 만드는 공연’을 겨냥한 작품이었다.
극장에 들어서는 관객들은 카리브해에 위치한 도시 아바나 근교의 어촌마을 코히마르를 느낄 수 있도록 경쾌한 쿠바 음악 선율과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객석은 전통 판소리 공연장의 느낌을 갖도록 방석이 놓인 좌식으로 구성되었고, 모든 관객들에게는 얇은 가운이 제공되었다.
반투명의 얇은 가운은 청새치와 노인이 지속된 힘겨루기에 지쳐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사이 소리꾼 이자람이 바다 속으로 시선을 옮기는 장면에서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활용되었다. 소리꾼은 관객들을 향해 가운 안쪽으로 휴대폰 플래시를 비춰 어둠 속에서도 인광으로 빛나는 바다 생물들의 광경을 연출하는데 도움을 줄 것을 요청했다.
관객들은 소리꾼의 창의 흐름에 따라 이쪽저쪽으로 움직이며 인광으로 빛나는 푸른 바다의 조류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멕시코만 수심을 따라 아래로 깊이 내려가 낚싯줄을 입에 문 채 지쳐 잠든 청새치를 잠시 엿보고 돌아오는 여정을 완성했다.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 초연의 이러한 참여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을 거치면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2월, LG아트센터 서울에서 펼쳐진 공연에서는 무대를 비추는 조명을 통해 깊은 바다의 느낌과 인광으로 빛나는 산호초, 갑오징어, 방어떼, 수염 긴 랍스터와 댄싱 새우의 모습을 관개들의 상상력으로 채우도록 변화를 주었다.
하지만 판소리의 추임새를 알려주며 객석의 반응을 유도하고, 자진모리장단을 가르쳐주며 관객들의 손뼉 장단이 만들어내는 “국악의 그루브” 속에 ‘어부 산티아고’를 다시 한번 열창하는 장면 등의 부분은 그대로 적용되었다. 한 명의 소리꾼이 고수(鼓手)의 북장단에 맞춰 소리와 아니리, 발림을 통해 청자들에게 서사를 전달하는 전통적인 판소리의 형식 또한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자람의 ‘노인과 바다’의 가장 큰 특징은 헤밍웨이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쿠바의 노인 어부 산티아고가 아니라 국내 어촌 어딘가에 현존하고 있을 것 같은 산티아고라는 이름의 노인 어부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또, 산티아고가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시련과 행운, 상실과 외로움, 늙음과 젊음을 간직한 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일을 반복해 온 한 사람의 흥망성쇠는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나가는 노인 어부의 삶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운이 다했다”며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함께 배를 타던 수제자마저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다른 배로 떠나버린 뒤 노인은 홀로 “큰 우물”로 향한다. 수심이 갑자기 깊어지는 곳이기에 해류가 부딪쳐 소용돌이가 생기고 온갖 종류의 물고기들이 몰려드는 ‘우물’은 작은 배에 탄 어부가 홀로 고기를 낚기에 적절하지 않지만 성공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산티아고의 이러한 선택은 삶에서 어려움이 찾아올 때 험난할 줄 알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는 순간들과 유사성을 갖는다.
이자람은 어부 산티아고의 삶과 소리꾼 이자람의 삶을 연결함으로써 모두의 삶으로의 확장을 이끌어낸다. 외줄낚시로 수많은 물고기를 잡아 온 노인의 “어깨 이야기로만 2시간 판소리”가 가능한 삶은 “뒤집힌 꽃다발인양 보기 좋은 미끼다발”을 만드는 빠른 손놀림이나 군함새 한 마리가 먼저 눈치를 챈 “다랑어 축제”가 벌어진 바다의 모습, 말없이 줄을 드리우고 있지만 “매우 바쁘고 분주한 프로페셔널한” 속마음을 엿보는 장면 등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9살 때부터 바람과 조류 읽는 법, 미끼 만드는 법 등 어부에게 필요한 모든 일을 배우고 50년이 넘도록 이어온 산티아고는 “예사롭지 않은 놈”인 청새치를 낚게 된 후 엄청난 힘에 끌려 다니면서 생각한다. 대단한 놈을 낚고 싶은 욕망은 있었지만 “저런 놈을 만날 줄은 몰랐던” 산티아고는 광활한 바다 위에 혼자 있다는 외로움을 깊이 느낀다. 지친 노인은 잠들고 싶지만 “타고난 어부”인 탓에 이 싸움에서 질 수 없고, “침대가 그리우면 지는 거다”라는 결연한 마음으로 팽팽한 낚싯줄을 부여잡은 채 어둠과 추위, 고독과 싸운다.
노인의 “내적 추임새”는 오랫동안 버텨온 청새치가 바다 위로 뛰어 오른 중요한 순간에 “가장 쓸데없는 근육 경련”이 일어난 상태에서 연보라색과 은빛, 금빛으로 반짝이는 물고기의 모습을 바라보며 무척 바빠진다. 지금 본 것이 청새치가 맞는 것인지, 자신의 눈을 의심하던 노인은 “저렇게 큰 놈을 만나자는 것은 아니었는데”라고 의기소침하게 말한다.
하지만 이내 “기품 있고 멋진 놈”이기에 기필코 잡고 싶다면서 85일을 기다린 보람이 있다고 말하는 노인은 왕년에 팔씨름 챔피언으로 하룻밤을 꼬박 지새우며 팔에서 힘을 거두지 않았던 때를 회상한다. 그 때보다 2배는 더 나이가 든 지금 “마음이 자꾸 어디론가 도망을 가려고 간당간당”하는 넓은 바다 위에서 산티아고는 쥐가 난 손을 계속 주무르며 버티는 것 밖에는 도리가 없음을 인식한다.
노인은 낚싯줄에 매달려 자신만큼 버티는 청새치가 대단하다는 생각에 이른다. 평생을 물고기를 낚는 일을 해왔는데, 왜 언제나 새로운 것인지, 왜 꼭 죽여야만 하는 것인지, 고기를 잡아먹을 자격이 인간에게 있는 것인지를 고민하던 노인의 마음은 소리꾼 이자람에게로 옮겨진다.
“나는 왜 너를 죽여야 할까? 죽이지 않고 이길 수는 없을까? 나는 왜 판소리를 할까? 이 힘든 걸 왜 계속 할까?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기다리는 것들은 결국 나타날까? 죽여야 하는 것이 저 달이 아니라 고기라서 다행이다. 사방을 둘러보니 참 홀로 있구나.”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보편성은 어부 산티아고의 이야기가 모든 이의 삶으로 확장될 때 획득되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젊은 독자들에게는 ‘아무 죄도 없는 물고기와 소득 없는 싸움을 벌이는 이상한 노인의 이야기’로 읽히는 경우도 많은 게 사실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세월이 지나 다시 소설을 읽게 될 때 산티아고의 삶이 매우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고기를 잡는 일은 성공을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일의 비유가 되고, 고기를 죽이는 일은 수많은 경쟁과 어려움 속에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 일의 비유가 된다. ‘죽이지 않고 이기는 일’과 ‘판소리’의 연결은 모든 이의 삶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사회 속에서 생존과 성공, 과업과 일, 목표와 꿈을 떠올리도록 만든다.
노인 산티아고의 긴 노력은 결국 청새치를 배에 매달고 아바나를 향해 기쁨으로 나아가는 큰 소득을 이루지만 위기는 또 다시 시작된다. 소리꾼 이자람은 드론을 날려 멕시코만 넓은 바다에 하나의 점처럼 보이는 “작살을 옆구리에 꽂은 청새치와 함께 있는 산티아고”를 관객들에게 펼쳐 보인다.
꿈인지 생시인지 어깨춤이 절로 나오던 기쁨의 시간은 피냄새를 맡고 물거품을 일으키며 따라온 청상아리들로 인해 비극으로 얼룩지기 시작한다. 청상아리가 물어뜯은 살점들 사이로 더 많은 피가 솟구치며 온갖 상어들이 산티아고의 배를 뒤쫓는다.
작살 하나와 몽둥이로 상어들과의 전쟁을 시작한 노인은 더는 방어할 힘이 없음을 깨달으며 후회하기 시작한다. 좀 더 큰 배를 빌려서 나올 것을, 이렇게 멀리 나오지 말 것을, 긴 작살을 하나 더 만들어 놓을 것을, 다랑어라도 한 마리 더 먹고 힘을 비축해 둘 것을... 후회는 이어져 “차라리 저 놈들에게 수모를 겪기 전에 그냥 너를 놓아줄 것을, 너를 잡지 말 것을”에 도달한다.
더 이상 뜯길 게 없이 뼈만 남은 청새치와 함께 아바나로 돌아온 노인 산티아고는 그대로 쓰러져 깊은 잠에 빠진다. 항구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이 청새치 뼈의 엄청난 크기에 웅성거리는 사이로 수제자인 니꼴은 노인을 찾는다.
노인을 위해 커피와 음식을 챙겨 집으로 달려간 니꼴은 엉망이 된 노인의 두 손을 보고 울음을 터뜨린다. “청새치의 주둥이”는 자신에게 달라는 니꼴을 향해 껄껄 웃는 노인은 또 다시 바다로 나갈 생각을 하며 라임, 창살 등 가져갈 것들이 많이 늘었다고 말한다.
앞으로의 고기잡이에 니꼴이 함께 할 가능성을 예측하는 소리꾼은 노인이 앞으로도 새벽이면 바다로 나갈 것이고, 바다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지만, 여전히 그들의 삶이 계속될 것임을 피력한다.
무언가를 끝없이 쫓지만 막상 닿고 보면 행복과 기쁨은 잠시 또 다시 더 깊은 시련이 시작되는 일은 삶에 가득하다. 산 하나를 넘었다는 자부심을 가질 때면 그 앞에 더 높은 산이 있음에 절망하게 되고, 큰 성공을 얻었다며 안도하는 순간 더 힘든 경쟁과 위협이 자신을 겨냥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실망하게 된다. 삶은 무언가를 취하는 만큼 무언가를 빼앗기는 과정이며, 어딘가에 도달하고자 하지만 결국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여정이기도 하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인간의 삶을 향한 의지는 결코 꺾을 수 없다는 몽상가 산티아고를 그려낸 것이었다면, 이자람의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는 잃어버릴 것임을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삶과 생존에 대한 연민, 삶의 수긍과 반복, 그리고 지속을 강조한다. 갑작스럽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가기도 하지만 또 언젠가 무엇을 가져다줄 것이기에 삶은 예측 불가능한 바다와 닮아있다.
얻는다고 해서 얻는 것이 아니고, 잃는다고 해서 잃는 것이 아닌 삶 앞에서 우리가 진정 배워야 할 것은 ‘겸손’이 아닐까? 청새치와 같은 행운이 찾아오는 날도 있겠지만 상어 떼와 같은 불행이 찾아오는 날도 있을 테고, 84일간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 채 정체된 상태를 반복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삶’이라는 거대한 바다 앞에서 오늘도 작은 배를 띄우는 노인 산티아고에게 숭고함을 느끼는 것은 우리 모두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공연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력으로 독자분들의 사랑을 받아온 전문가 칼럼 '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이 2023년 새해부터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으로 칼럼명이 변경됩니다. 기존에 다뤄졌던 공연 분야뿐 아니라, 문화 예술 분야 전반에 대한 주하영 칼럼니스트만의 새로운 시각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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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상지대 겸임교수, 대림대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공학대학교 지식융합학부(교양교육센터)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집위원 및 이사, 세계문화예술경영연구소 초빙연구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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