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완성도 높았던 '단테 신곡-지옥편'...리얼리즘 연기 정수 보여준 대배우 정동환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완성도 높았던 '단테 신곡-지옥편'...리얼리즘 연기 정수 보여준 대배우 정동환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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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피악 창단 20주년 기념 공연...'숨은 실력자' 나진환 연출가
- 단테 서거 700주년 기념으로 단테가 상상한 지옥의 천태만상 그려내
'단테 신곡-지옥편'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 정동환. 그는 체력과 암기력 없이 도전하기 힘든 '신곡'의 안내자 역을 한치 오차 없이 완벽에 가깝게 해낸 대배우였다./사진=정중헌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정동환이라는 대배우와 한윤춘의 연기력, 나진환이라는 뚝심 있는 가이드가 있어 가능했다. 산자는 보기 힘든 지옥 여행이. 

단테가 상상한 지옥의 구석구석 천태만상을 눈으로 본 것이다. 

역시 지옥은 아수라장이고, 오물의 악취가 진동했으며, 형벌의 고통과 신음으로 벌겋게 달아있었다. 골짜기마다 죄질이 다른 군상들이 뒤틀리고 엉겨 붙어 영겁의 천형에 발광하고 있는 곳.  그 끔찍한 광경과 죄목을 접하며 순례자가 된 관객들은 살아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란 자각과 충격과 전율을 체험했다. 150분 동안.

극단 피악이 창단 20주년 기념으로 대학로예술극장에서 공연 중(5월 7~16일)인 '단테 신곡 지옥편'은 정동환 배우의 초절정 연기, 나진환 각색 연출의 열정과 집념, 한윤춘 배우의 대발견이라는 점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만한 역작이었다. 기온은 올라 가는데 마스크를 쓰고 견뎌내야 하는 세상에서 ‘지옥 체험’은 그래도 인생은 살만 하다는 역설적 위로를 안겨주어 시의에도 적절했다.

나진환 연출가의 '단테 신곡-지옥편'

정동환은 이제 대배우의 반열에 당당히 올라 섰다. 70세 이후 그가 무대에서 보여온 행보는 구도자를 방불케한다. 

나진환 연출의 '대심문관과 파우스트'에서 혼신의 연기를 뿜어낸 정동환은 체력과 암기력 없이 도전하기 힘든 '신곡'의 안내자 역을 한치 오차 없이 완벽에 가깝게 해냈다. 

포스는 당당했으며 화술은 명료했고, 리드미컬한 소리와 연기의 미세한 변화로 150분 동안 그만의 아우라를 뿜어냈다. 단테의 정신적 스승으로 지옥을 안내하는 베르길리우스 역을 맡은 정동환은 단테 역 한윤춘과 호흡을 맞춰가며 리얼리즘 연기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정동환이라는 배우의 연극성을 극대화 시키는 나진환 연출과의 협업이 이뤄낸 성과는 특기할 만하다.

나진환의 '단테 신곡'에서 타이틀롤 단테를 연기한 한윤춘은 정동환을 받쳐주며 자신의 역량을 폭포처럼 분출시켜 연극의 맛, 연기의 멋을 실감시켜 주었다. 국립극단 출신의 한윤춘 배우를 필자는 구태환 연출의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에서 발견했다.

연기력도 근성도 있겠다 싶었던 그는 '신곡 지옥'에서 자연스러우면서도 맥을 짚어내는 연기로 단단하게 극을 이끌며 무한한 가능성을 드러내 보였다.

필자는 나진환이라는 연출가를 잘 모른다. 그가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공연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성결대 교수임은 매체를 통해 알았지만 진지한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다. 그런데도 그를 신뢰하는 연출자로 꼽는 이유는 2017년 공연한 7시간짜리 대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국공립에서도 버거워하는 레퍼터리들을 택해 그만의 방식으로 무대에 올리는 한국 연극계의 숨은 실력자라고 할만하다. 

극단 피악을 20년 동안 이끌어온 그는 단테 서거 700주년 기념으로 원작을 시대에 맞게 각색하여 완성도 높은 대작을 선보였다. 이번 작품으로 더 파워플하게 역량을 발휘한 연출가 나진환의 행보를 관심 있게 지켜보려고 한다.

나진환 연출가의 극단 피악 창단 20주년 기념 공연 '단테 신곡-지옥편'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사진=정중헌 

이번 무대에서 미노스 역과 멀티 연기를 보인 정수영도 기대주로 꼽을만하다. 또한 이천영 김찬 강이담과 조창원 유수진 민인기 허웅 조민형 이수형 김서휘 등 10명의 배우들은 극중 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코러스로 앙상블을 펼쳤는데, 이들의 헌신과 고난도 연기가 없었다면 '단테의 신곡'은 제 빛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세 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단테의 '신곡' 속 지옥도는 700년이라는 시공을 뛰어넘어 오늘에 되 비추어도 그 풍속도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죄와 벌, 사상과 윤리가 서구중심인 이 연극을 보면서 '신과 함께'라는 한국 영화 장면들을 지우느라 애를 먹었지만, 7세기 전 단테가 이같은 문학적 상상력을 펼쳤다는 점은 경의를 표할만 했다. 

이 작품에는 9개의 지옥 풍경이 펼쳐지는데 애욕, 탐욕, 폭력, 아첨, 사기, 위조, 배반과 태만의 죄 등 형별도 다양한데 나진환 연출과 배우들은 이 많은 장면을 온 몸으로 표현해 냈다. 빛을 활용한 소도구와 공들여 만든 영상도 연극 이해에 도움을 주었다.

'신곡'은 코로나로 위축된 한국 연극에 활력을 불어넣은 역작이자 대작이며, 그리스 시대부터 이어온 연극성을 이어 내렸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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