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노배우 이승옥의 카리스마 연기가 빛을 발한 '노부인의 방문'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노배우 이승옥의 카리스마 연기가 빛을 발한 '노부인의 방문'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9.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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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본 연극 중 손꼽을 만한 수작... 늘 푸른 연극제 '노부인의 방문'
손정우 연출의 '노부인의 방문'

인터뷰365 정중헌기획자문위원 = 배우 이승옥은 무대에서 당당하고 카리스마가 넘쳤다. 연출 손정우는 유명 오케스트라 지휘자 못지않게 전편을 유려하게 이끌었으며, 함께 출연한 중진 배우들은 최대의 기량을 발휘했고, 스탭들은 완성도를 높이는데 일조했다. 

제4회 늘푸른연극제 마지막 작품으로 19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막을 올린 뒤렌마트 원작, 손정우 연출의 <노부인의 방문>은 필자가 올해 본 연극 중 손꼽을 만한 수작이었으며, '늘 푸른 연극제'를 할 가치가 있음을 입증한 작품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참으로 오랜만에 국립극단 전성기 무대를 보는듯 한 화려한 캐스팅에 불꽃 튀는 연기, 매끄러운 연출, 짜임새 있는 무대로 2시간 넘게 관객의 시선을 몰입시킨 대작을 만났다.

1994년 독일의 연출가가 국립극장에서 공연했다고 하는데 기억이 가물거려 이번 무대는 필자에게 초연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타이틀롤 노부인을 맡았던 이승옥 배우는 생전 다시한번 <노부인의 방문>을 하고 싶다고 되뇌었는데 늘 푸른 연극제 배우로 선정되어 그 염원을 이뤘고, 25년 전보다 더 원숙하고 매력있는 연기로 무대에서 빛이 났다. 

손정우 연출의 '노부인의 방문'의 이승옥 배우

연극은 혼자 하는 예술이 아니라 여러 요소가 총화를 이루는 집단예술이다. 올해 만 76세의 원로 배우 이승옥이 무대에서 빛을 발한 것은 연출의 미학과 공연 배우들의 연기력과 앙상블, 그리고 스태프들의 협업의 결과인 것이다. 

귈렌 기차역과 다목적 공간을 기하학적으로 디자인한 민병구의 무대, 이제까지 지녔던 이승옥 배우의 이미지를 파격적으로 변신 시킨 박팔영의 분장이 극 초반 관객들을 압도했다.

그러나 연극은 배우예술, 좋은 연극은 단역들까지도 에너지를 발산한다. 첫 장면, 귈렌 역 앞 시민들의 연기가 흥미를 유발하더니 전반부는 귈렌 시장 역을 맡은 주호성이 발군의 개성 연기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일찍이 <돈키호테>의 산초 역으로 주목받은 주호성은 최근 70대 나이에 적역을 맡아 돈의 유혹 앞에서 교활한 시장 캐릭터를 생동감 넘치게 해냈다. 

연극 '노부인의 방문'

중반부터 저력을 발휘한 배우는 국립극단 출신 정상철이었다. 국립에서 좋은 배역을 했던 그가 오랜만에 전성기의 저력을 발휘했다. 극중에서 노부인의 배신한 애인 일 역을 맡은 그는 돈으로 매수된 정의라는 미명아래 합법적 죽음을 당하는 비참한 캐릭터를 노련하게 연기해냈다. 

여기에 국립극단 출신 오영수가 원숙한 연기로 노회한 지식인 교장 역을 해내는데 특히 후반부 연설은 이 작품의 명장면으로 꼽을만 하다. 지식인을 상징하는 그는 “유혹은 너무나 크고, 우리의 가난은 너무도 비참해”라며 노부인의 복수전략에 합류한다. 

조역인 이일섭(집사), 이광휘(로비), 김춘기(신부), 정슬기(경찰서장), 강애란(시민5), 김진태(의사), 임은연(일의 아내) 등도 자신들의 역할을 깔끔하게 소화해 냈다. 여기에 이승현, 홍은정, 서정후, 정대곤, 최재성, 신동준, 박근홍 등 시민 역 배우들과 노부인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이다혜가 멋진 앙상블을 이뤄냈다. 

연극  '노부인의 방문' 커튼콜이 끝난 후 무대에 오른 배우들

필자가 그동안 주목해 보지 못했던 연출가 손정우는 어렵다고 여겼던 스위스 작가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을 매우 흥미있게, 그러면서도 일관된 힘으로 2시간 공연을 인터미션 없이 밀고나갔다.

돈(권력) 앞에서 비굴해지고 이해관계 앞에서 무너지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정의’와 ‘배신’이라는 화두로 흥미롭게 펼쳐내면서 복수의 허망함과 사랑의 연민을 짙은 페이소스로 오버랩해 가슴을 짠하게 했다. 

백발의 숏컷과 진홍빛 드레스로 귀부인의 위엄을 뿜어낸 주인공 이승옥은 국립극단 출신 정상철과의 듀엣에서 아픔을 감추지 못하는 비련의 연기를 해냈고, 무릎까지 꿇은 오영수와의 공연에서 강인한 의지의 여장부 연기를 해냈다. 

지원금을 받아 만든 연극은 지원금 그 이상의 작품을 만들지못한다는 것이 대학로의 속설인데, 지원금으로 만든 손정우 연출, 이승옥 주연의 <노부인의 방문>은 이런 통설을 깨고 모처럼 청출어람의 볼만한 무대를 만들어냈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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