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탁무권 이사장 "윤이상 예술혼 잇는 세계적 음악가 길러낼 것"
[인터뷰] 탁무권 이사장 "윤이상 예술혼 잇는 세계적 음악가 길러낼 것"
  • 신향식
  • 승인 2018.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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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평화재단 탁무권 이사장, 20일 베를린서 '윤이상하우스' 개관음악회 개최
-탁 이사장 "윤이상하우스, 유럽에서 한민족 청소년들에게 민족혼 심어주는 본부 역할 할 것"
-"남북 음악 예술인들의 민간 교류의 장 활용 기대"
(재)윤이상평화재단 탁무권 이사장/사진=신향식  

[인터뷰365 신향식 인터뷰어] "윤이상 선생의 음악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예술인들을 키우려고 합니다."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선생(尹伊桑, 1917~1995)의 예술혼이 담긴 독일 베를린의 생전 자택이 문화예술 창작공간으로 거듭난다.

(재)윤이상평화재단은 20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중심가에서 남서쪽으로 30㎞ 거리인 클라도우(Sakrower Kirchweg 47, Berlin Kladow)에 있는 윤 선생의 자택을 '윤이상하우스'로 개관했다.

재정문제 등으로 제대로 보수하지 않아 방치 논란이 있었지만 윤 선생 서거 23년 만에 예술창작공간으로 재단장한 것이다. 이날 저녁에는 교포 2세 작곡가 겸 기타 연주자인 정일련 선생이 주도하여 개관 음악회를 열었다.

윤이상 선생의 예술혼이 서려 있는 생전의 베를린 자택.  

'윤이상하우스'에서는 ▲'예술인 창작활동 공간제공'을 비롯해 ▲작은 음악회, ▲학술행사(인문과학, 사회과학, 예술) ▲남북 예술가 및 학자 교류 ▲평화 및 예술 단체의 협력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예술인 창작활동 공간제공' 방안은 작곡 및 음악이론 전공 대학원생(석사) 이상의 젊은 예술인들이 '윤이상하우스'에 장단기로 거주하며 학업과 예술활동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문학, 미술, 사진 등의 젊은 예술인들에게도 문호를 연다.

탁무권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교육복지재단 교육과미래 이사장, 성공회대 이사)은 "베를린은 문화 예술의 중심지"라며 "'윤이상하우스'가 한국 학생들이 세계적인 음악 예술인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정거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남북 관계가 풀리면 북측 유학생들도 '윤이상하우스'를 활용하게 할 생각"이라며 "남북 음악 예술인들이 민간 교류를 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이상하우스'는 이미 1기 '장기 예술인 창작활동 공간제공 대상자' 선정을 마쳤다. 3개월 이내 체류하는 단기 대상자들도 선발했다.

윤이상평화재단의 베를린 지부장 겸 '윤이상하우스' 운영관장인 정진헌 베를린자유대학교 연구교수는 "1~2주 정도의 단기체류도 가능하다"면서 "한국이나 미국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들이 지원했다"고 밝혔다.

윤이상 선생 학창시절
‘윤이상하우스’에 전시해 놓은 윤이상 선생의 학창 시절 사진.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윤이상 선생은 1967년 동백림(東伯林, East Berlin)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었다.

윤 선생은 '유럽의 현존 5대 작곡가', '동양과 서양의 음악기법 및 사상을 융합한 세계적 현대 음악가' 등으로 평가 받았다. 그는 1995년 11월 베를린에서 폐렴으로 타계해 가토우 공원묘지에 묻혔으나, 그의 유해는 지난 3월 고향인 경남 통영의 통영국제음악당 인근 묘역으로 옮겨져 안장됐다.

개관식에는 윤 선생의 제자인 지휘자 어빈 코크 라파엘과 한명숙 전 총리, 정범구 주독 대한민국 대사, 권세훈 주독 한국문화원장, 이은정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장 등이 참석했다.

정 대사는 축사에서 "윤이상 선생이 고향을 떠난 지 49년 만에 고향 통영에 잠들어 있지만, 고인의 음악에 대한 사랑과 정신은 아직도 이곳 어딘가에 머물러 있으리라 믿는다"며 "윤이상하우스가 한국과 독일의 뜻깊은 문화교류의 장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지난 4월 2일, 탁무권 이사장의 1차 인터뷰를 서울에서 전화로 진행했으며, 4월 20일엔 베를린 '윤이상하우스' 현장 취재 및 정진헌 운영관장 인터뷰를 진행했다. '윤이상하우스' 개관식 참석을 위해 베를린으로 이동한 재단 관계자들을 2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연결하여 개관음악회 상황을 확인했다. 다음은 탁무권 이사장 문답 전문.

- '윤이상하우스'의 의의를 설명해 주시지요.

우리는 해외에 자산이 없습니다. 자산이 있다는 게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정도지요.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의 빈곤함이 드러나는 겁니다. 남북 이념 갈등이 빚은 천박한 현주소입니다. 그 과정에서 '윤이상하우스' 같은 민족적 자산이 이념적으로 덧칠되고 방치되고 소수에게만 관심을 받는다면 안타까운 일이지요

- '윤이상하우스'를 소개하신다면.

작은 음악당(콘서트홀)이 있습니다. 공연도 하고 작품도 발표하게 하려고 합니다. 예술활동의 정거장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직접 주거하면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설을 정비했어요. 베를린은 이미 예술의 중심지입니다. 한국 학생들이 세계적인 예술인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정거장이 될 수 있습니다.

윤이상 선생이 생전 음악 창작 활동을 한 ‘윤이상하우스’
윤이상 선생이 생전 음악 창작 활동을 한 '윤이상하우스'.
20일 남북의 젊은 예술인 창작공간으로 개관한 윤이상 선생의 생전 베를린 자택 풍경.

- 음악에 국한한 공간인가요?

단순히 음악 분야만으로 한정하지는 않습니다.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작게는 베를린 넓게는 독일, 더 나아가서는 유럽의 현대 예술문화 창작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하려고 합니다. 유학을 오기 전의 젊은 예술인들과 청소년들이 단기로 이곳에 방문하여 윤이상 선생의 음악세계도 접하고 민족통일을 비롯한 윤 선생의 철학세계를 공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적 없는 음악이 아니라 국적 있는 음악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유럽에서 한민족 청소년들에게 민족혼을 심어주는 본부의 역할을 해 주고자 합니다.  

- '윤이상하우스'를 개관한 목적은 무엇인가요?

윤이상 선생의 음악과 철학을 이어받을 세대를 길러내려고 합니다. 보통 저명한 분들은 기념관 형태로 운영합니다. 그런데 윤이상 선생은 '기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과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기념하는 일보다 미래를 향한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지난해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윤이상 선생의 고향인 경남 통영에서 베를린의 윤이상 선생 묘소로 옮겨 심었던 동백나무도 올 4월 '윤이상하우스'로 자리를 옮겼다.

- 남과 북이 평화 분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만.

남북 관계가 풀리면 북한 유학생들도 '윤이상하우스'를 활용할 수 있게 할 생각입니다. 남북 음악 예술인들의 교류와 화합, 소통, 창작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 북측도 참여하게 한다면 '하우스'란 명칭이 마음에 걸립니다.

'윤이상하우스'에서 '하우스'가 영어 명칭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바꾸는 것을 의논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얼마든지 명칭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영어가 공통어다보니까 일단 '하우스'란 명칭을 붙인 측면이 있습니다.

- 한글식 표현도 괜찮지 않을까요?

깊이 고민해 보겠습니다. 문제제기가 나오면 적극 검토해 보겠습니다. '윤이상의 집'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북측 학생들도 받으려면 '윤이상하우스'보다는 한글 이름이 좋겠지요. 명칭 공모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신향식

필명 신우성. 언론인 출신의 입시전문가 겸 대학강사. 스포츠조선과 굿데이에서 체육기자로 활약했고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독서신문에서 프리랜서 기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경희대, 경인교대, 백석대, 인덕대, 신우성학원에서 작문(글쓰기) 관련 출강.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을 수상한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에 관한 연구'의 요약본이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수록. 신우성글쓰기본부 대표. 저서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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