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행복한 삶의 안내자 된 허용무 정화예술대 총장
[인터뷰②] 행복한 삶의 안내자 된 허용무 정화예술대 총장
  • 김두호
  • 승인 201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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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용무 총장, '행복'이 대학 교육의 목표...향후 '정화 평생 교육 프로그램' 구체화 시킬 것
일생을 대학 교육에 바친 허용무 정화예술대학교 총장은 비전과 인간의 품격을 갖춰 행복한 삶을 설계하는 교육을 제1목표로 삼고 있다. 특화교육인 '정화예대 행복론'을 정규 교양 과목으로 채택한 이유도 이 같은 허 총장의 교육 철학과 신념에서 비롯됐다. 여기엔 젊은 세대들이 따뜻한 사회의 행복한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는 간곡한 소망이 담겨 있다. /사진=인터뷰365
일생을 대학 교육에 바친 허용무 정화예술대학교 총장은 비전과 인간의 품격을 갖춰 행복한 삶을 설계하는 교육을 제1목표로 삼고 있다. 특화교육인 '정화예대 행복론'을 정규 교양 과목으로 채택한 이유도 이 같은 허 총장의 교육 철학과 신념에서 비롯됐다. 여기엔 젊은 세대들이 따뜻한 사회의 행복한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는 간곡한 소망이 담겨 있다. /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화려한 도시, 서울'을 상징하는 서울 명동에 정화예술대학교가 있다. 뷰티 예술 관광 복지 서비스분야의 전문 기능인재를 배출해온 특화된 도심형 대학이다. 

명동역과 회현역 인근에 있는 세 곳의 빌딩 캠퍼스에 3200여명이 재학 중인 이 대학은 교육 목표의 첫 항목을 전공 지식의 습득에 두지 않고 '행복 교육', 즉 비전과 인간의 품격을 갖추어 행복한 삶을 설계하는 교육을 제1목표로 삼고 있다.

정규 교양 과목으로도 채택한 독특하고 특별한 '정화예대 행복론'은 일생을 대학 교육에 바친 허용무 총장(1954∼/행정학 박사)의 교육 철학과 신념에서 비롯됐다.

기본 학교 교육의 마지막 관문인 대학을 나서면서 시작되는 사회활동은 기술과 지식 등 실력도 중요하지만 삶의 비전과 신뢰받는 인품이 행복을 맞이할 수 있다는 '행복 교육'에 대한 허 총장의 교육 신념은 분명하고 단호하다.

가난한 시대에 성장하고 공부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삶을 긍정적으로 개척해온 세대의 교육자 눈에 미래가 모호한 젊은 세대들이 따뜻한 사회의 행복한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는 간곡한 소망이 '정화예대 행복론' 교육정신의 배경이다. 대학 내에는 과제를 제시하고 실행하는 부설기구로 행복추진위원회까지 가동하고 있다.

충주의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난 허 총장은 교직을 천직으로 이어받아 중년기는 백석대학교 교수로 교무처장, 기획실장, 대학기획발전위원회 실무책임자, 정책기획본부장, 경영행정대학원장 등을 역임하며 대학 발전에 참여하고 2009년 정화예술대로 옮겨 부총장을 거쳐 6년째 연임 총장으로 재임 중이다.

지난 연초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후원한 TV조선의 '2018년 한국의 영향력 있는 CEO 대상'시상식에서 'CEO 인재경영분야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뷰티 한류'의 인재들을 양성하는 미용예술학부를 포함해 방송영상연기학부, 관광학부, 외식산업부, 사회복지학부까지 5학부 14개 전공학과를 둔 정화예대를 '행복 인재'의 특화대학으로 이끌어 가는 허용무 총장을 만났다.

▶[인터뷰ⓛ] '정화예대 행복론' 창안한 허용무 총장 이어서 


허용무 정화예술대학교 총장/사진=인터뷰365

◆더불어 산 조부의 삶이 행복론의 모델

-총장께서 '행복론' 강의를 통해 들려주는 자신의 성장기 이야기를 시작하자.

선친(허인행 전 충주 남한강초교 교장 /2012년 타계)은 일생을 교단에 바친 교육자였다. 나도 맏아들로 태어나 운명처럼 교육자의 길을 선택했다. 집안에서 행복한 삶의 교본이 되어 준 어른이 할아버지셨다. 농업으로 부잣집 가세를 이룬 조부께서는 명절이 다가오면 이웃 동네의 가난한 집까지 소문내지 않고 새벽에 쌀자루를 전달하는 음덕을 쌓으셨다.

어릴 때 한 번은 마을을 지나가는데 낯선 할머니가 달려와 "도련님 도련님"하면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해왔다. 할아버지가 어느 날 밤에 놓고 간 쌀가마니로 떡장사를 시작해 이제 걱정없이 산다는 청상과부 할머니였다. 부잣집이라고 했지만 할아버지의 투철한 검약정신으로 우리 가족은 꽁보리밥을 먹는 때가 많았다. 남을 도와주는 곡식은 매년 예비비 형태로 따로 챙겨 두셨기 때문에 큰 돈을 쓸 일이 있어도 그 비축 식량은 줄지가 않았다.

다른 마을을 지나다닐 때마다 할아버지 대신 손자가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 돌아가신 후에는 낯선 사람들이 산소를 찾아 음식을 차려놓고 성묘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더불어 사는 후덕함을 자손들에게 보여준 지엄한 어른이 생전에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직업이 교육자"라며 그 길을 자식들에게 권해 아버님에 이어 작은아버님 고모님까지 생애를 교직에 바치도록 하셨다.

장손인 나는 당연히 선친의 뒤를 이어 청주교육대학에 진학했고 잠시 초등학교 교직에 머물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내 인생의 백지 위에 스스로의 꿈을 좀 더 크고 넓게 그리다가 서울로 올라와 다시 대학(단국대)에 들어가 중어중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행정학으로 석 박사까지 학업을 마쳤다.

허용무 정화예술대학교 총장은 "정화예대 출신이라면 꿈과 인품이 있고 행복이 뭔지를 아는 소리를 듣게 하는 것이 총장의 사명이고 우리 대학의 과제"라고 말했다./사진=인터뷰365

-백석대 교수 시절에도 대학의 성장 발전과 관련된 주요 보직교수로 활동한 이력을 보았다.

나의 전공은 행정학이다. 백석대에 있을 때도 교무, 기획, 행정지원 사업 등 학교의 성장 발전과 관련해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주어진 것이다. 다행히 내가 재직시절에 기독교대학의 울타리속에서 수도권 학생들이 모여드는 종합대학으로 발전한 것이 보람으로 남는다.

백석대 시절 잊을 수 없는 일화가 있다. 내가 교무처장일 때 어렵게 큰 방직기업과 위탁교육과 관련된 산학협력관계 협약을 성사시켰는데, 목사이면서 설립자인 장종현 총장으로부터 오히려 질책을 받은 일이다.

나는 학교 입장에서 교육비 문제를 산업체 협약의 우선 조건으로 제시했지만 장 총장은 환경이 어려운 산업 종사자들에게 교육비보다 먼저 교육 혜택을 어떻게 주느냐를 앞세워야 한다는 따뜻한 배려심이 우선이었다. 나의 속마음도 총장과 통하는 게 있어서 질책을 흐뭇하게 받아들였다. 총장의 그런 정신이 백석대가 성장하게 된 동력이 된 것으로 생각한다.

-총장께서는 인생의 백지 위에 스스로 그려놓은 '행복'의 비전에 따라 비교적 순탄하게 살아온 것 아닌가?

아니다. 청년기에 내가 잘했다고 평생 자긍심을 심어 준 그림 중 하나는 군복무였다. 복무 기간이 36개월, 만3년 일 때 최전방 철책선을 지키는 초병생활을 했다. 교육대학 시절에 부사관교육(RNTC)을 받고 졸업 후 5년간 교직생활을 하면 군복무 면제 대상이 되었지만 2년간 교편을 잡고도 나는 그 길을 택하지 않고 입대했다.

주변에서 정신 나간 사람 취급도 했지만 국가를 사랑하는 의무감과 엄격한 조직사회의 일원으로 심신을 단단하게 단련하는 인생수업을 공짜로 공부하고 체험한 시기였다. 군복 유니폼은 대한민국 남자로 반드시 한번 입어야 하는 과정이다. 의무를 다하는 기본정신도 소중하지만 개인적으로 조직사회의 적응력, 인내심이나 협동심, 규범을 중요시 하고 담력과 고통을 극복하는 지혜도 터득하게 되었다.

군 복무 후 다시 학업을 계속하기로 결심한 청년기의 백지 위에 내가 그린 행복한 그림은 꿈만 가득했고 현실은 가난하고 힘들었다. 대학 4학년 때 결혼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하 단칸 셋방에서 살았다. 어린 아들이 열이 나면 아내는 약값을 아끼려고 몸에 좋다는 대추차를 끓여 먹여 눈물이 나게 했다. 밤에는 가족 잠자리에 불을 켤 수 없어 가스냄새가 나는 좁은 연탄 부엌에 합판을 깔고 남대문 시장에서 상인들이 입는 두꺼운 솜옷을 입고 공부했다.

-가난한 부모일 때 어린 자녀의 백지 위에 그려 준 그림은 어떤 것이었나?

사랑을 주고 꿈을 갖게 하는 것이 부모가 그려주는 그림이다. 첫 아이가 출생했을 때 나는 바로 병원에 가지 않고 꽃집부터 찾았다. 큰 인물이 되지 않아도 좋으니 일생동안 주변사람들에게 꽃처럼 향기를 풍겨주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 줄 것을 바라면서 새벽에 꽃집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가 꽃을 사들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걸을 수 있는 나이가 될 때부터 어른들이 계시는 충주행 버스에 태워 보내면 도착지에서 어른들이 맞이하는 홀로 여행을 하게 했다. 어느 해 어버이날에는 아들을 통해 내가 어버이 은혜에 감사를 드리는 7장의 장문 보은편지를 전해드리게 했다. 그 무렵 워낙 어려워 간신히 가는 차표만 끊어주고 빈손으로 편지만 달랑 전해드리게 했는데 어른께서 고등어 한손이라도 사가지고 오는 것이 자손의 도리이고 아이들에게도 예절교육이 된다는 지적을 하셨다. 그 후 아이들도 어느 집을 방문하든 절대로 빈손으로 가지 않는 예절을 기본으로 몸에 익히게 했다.

첫째아이가 중학교 1학년 때는 초등학교 4학년 동생과 함께 돈 15만원과 전국의 친척 댁 주소를 주고 절대로 돈을 받거나 누를 끼치지 말고 혼자서 보름간 여행을 하고 돌아오게 했다. 남매가 세상 구경을 하며 사회공부를 하게 한 것인데 돌아올 때에는 또래 친척 7명을 데리고 와 당황한 적이 있다. 인생은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다니는 여행이다. 성장기의 여행은 새로운 사람들과 문물을 접하면서 자아를 발견하고 경험하는 시기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가족 사진에는 내 얼굴이 없다

-'행복'을 대학 교육의 목표로 정한 과정을 두고 학생사회나 대외적인 대학의 인식 면에서 총장으로 강조하는 가장 핵심적인 동기라면 무엇부터 강조하게 되는가?

글로벌 기업 임원들에게 많이 들은 얘기부터 시작한다. 전문 인력을 공개 채용하면 직장사회의 필요한 구성원으로 기본적인 인성을 갖게 하고 기존의 자기중심 머리를 깨뜨리는 데 3, 4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전문 기술은 부족해도 차라리 채용 후 가르쳐도 되므로 대학에서는 인간교육이나 제대로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다는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대다수 현장 경영자들이 4차 산업혁명의 아이콘이 될 AI(인공지능) 로봇시대에 앞으로는 전문 지식의 암기와 주입식 교육보다 인간적인 창의성과 함께 협동협업 정신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버드를 비롯한 세계 명문대학 교육의 통계에서도 학문보다 꿈과 비전을 제시한 명교수의 강의가 학생들의 성공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내가 산학협력관계로 자주 만나는 산업체 경영주체들도 종사자들의 기술이나 기능도 중요하지만 요즘 채용한 직원들이 사회생활의 기본 질서를 지키지 않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처신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우려한다.

우리 대학이 교육 목표로 행복에 대한 가치관을 일깨워 줘야 하는 데 두는 이유들이다. 적어도 정화예대 출신이라면 꿈과 인품이 있고 행복이 뭔지를 아는 소리를 듣게 하는 것이 총장의 사명이고 우리 대학의 과제다.

-'행복교육'을 떠나 정화예대가 특성화 대학으로 차별화 되는 다른 특색이라면?

각종 기술 서비스 분야 전문대학의 성패는 대학과 학생과 산업체가 톱니바퀴로 맞물려 3위1체로 멈추지 않고 정교하게 돌아가야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 '정화인증제'를 통해 졸업보다 6개월 먼저 현장 취업을 하는 교육 시스템으로 특성화대학의 궤도를 착실하게 가고 있다. 

교내외 전공 관련 경연대회나 페스티벌에 학생들의 수상, 참여활동도 활발하다. 학생들의 각종 자격증 획득과 한류 산업의 인재 교육으로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어학교육의 필수과정과 드림페스티벌, 취업박람회, CEO간담회 등의 행사도 주요 참여 프로그램으로 유지하고 있다.

‘산업체 CEO초청 간담회’는 산학협력을 체결한 우량 산업체 대표 및 주요 인사를 초청한 가운데 매년 진행되며, 간담회를 통해 수렴된 의견은 교육과정 및 대학운영 방향 수립 등에 적극 반영되고 있다.
허용무 정화예술대 총장은 산학협력을 체결한 우량 산업체 대표 및 주요 인사를 초청해 매년 '산업체 CEO초청 간담회'를 진행한다. 간담회를 통해 수렴된 의견은 교육과정 및 대학운영 방향 수립 등에 적극 반영된다./사진=정화예술대

-성장한 자녀를 비롯한 가족을 소개해 달라. 가난한 시절에 문득 떠오르는 인상적인 추억과 함께.

가난한 시절? 가난해도 가난을 잊고 살았다. 하는 일에 매달려 열심히 살다보니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딸이 1학년 때 자식들의 학교에서 가족사진을 가져오라고 한 때가 있었는데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이 없어서 내 얼굴만 증명사진을 가위로 오려 붙여 만든 가족사진을 제출했다. 아마도 그게 아직 가족 앨범에 기념으로 있는 것도 같다. 그 무렵 나와 함께 일한 직원이 제주도 가족여행 티켓을 선물해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족여행을 한 것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평생을 두고 가정을 편안하게 지켜 준 아내(황선하)와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대 의생명공학 학사와 미국 유펜대(펜실베니아대)에서 의생명공학 전공 학·석사를 끝내고 현재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아들(허범강)과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대에서 심리학 학·석사를 전공하고 바로 본 대학 어드바이저로 활동하는 딸(허한솔)이 있다.

-총장으로 앞으로 실현하고 싶은 또 다른 대학의 비전이 있다면 공개해 달라.

정화예대에 평생교육기관의 교육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 비전이다. 나이·연령·성별·학력 등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대학에서 운영하는 문화 예술을 비롯해 기능, 기술과 서비스분야를 평생 배울 수 있게 하는 특화된 '정화 평생 교육 프로그램'을 구체화 시켜 적절한 시기에 창립을 계획하고 있다. 아마도 그곳에도 다른 형태의 '행복론'이 주요 교과 항목으로 편성될 것이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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