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수 화가의 페인팅 북 리뷰] (17) 자연은 당신이다
[천지수 화가의 페인팅 북 리뷰] (17) 자연은 당신이다
  • 천지수 칼럼니스트
  • 승인 202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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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트리샤 오노나우 케이시언 저 '자연은 퀴어하다'

책 한 권에 담긴 활자들이 천지수의 몸과 기억과 희망을 만나 씨앗으로 응결되면, 화가는 그 작은 것을 캔버스에 심고 붓과 물감으로 키워내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한다. 독서를 통해 창조적 영감을 얻는 실험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책 읽는 천지수 화가의 ‘페인팅 북 리뷰'는 그 대답 중 하나다. 열 일곱번째 책은 '자연은 퀴어하다'(퍼트리샤 오노나우 케이시언 지음/노승영 옮김/에이도스)이다.

'자연은 퀴어하다'(퍼트리샤 오노나우 케이시언 지음/노승영 옮김/에이도스)

인터뷰365 천지수 칼럼니스트(/(화가·서평가) = “인간과 자연을 가르는 선을 뭉개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 인류가 제 스스로 강요한 고립 속에서 지독히 외로워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균류학자인 퍼트리샤 오노나우 케이시언이 쓴 책 '자연은 퀴어하다'는 자연에 가득한 퀴어함을 발견하고,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편견과 위계질서가 얼마나 비과학적이고 오만한지 깨닫게 해준다.

작가는 자신에게 우정, 확신, 영감을 선사한 다양한 생물의 종들이 인간 사회에서 가장 멀찍이 내쫓기는 까닭은 인간의‘바람직한 ’특질(똑바로 설 것, 논리적일 것, 두 발로 걸을 것, 이분법적 성별을 가질 것)과 가장 거리가 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이 생물들과 인연을 맺으며 소속감과 안도감을 얻었고, 그 보답으로 독자들 또한 땅의 친밀함, 우리 세포들 사이의 가까움, 서로에 대한 기억을 느끼길 바라며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작가는 ‘퀴어’(기이하다)라는 말이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및 표현, 가족 구성 등에 대한 일반적 기대를 거스르는 모든 존재 방식을 가리키는 포괄적 용어이자, 행동을 촉구하는 명령이라고 한다. 퀴어 이론은 ‘정상으로 범주화된 것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우리 문화의 이분법적 규칙(남성 대 여성, 백인 대 흑인, 퀴어 대 비퀴어)은 위계질서를 만들고 우월한 집단과 예속된 집단 사이에 거리가 생겨나며 그 공간 안에서 지배와 폭력이 일어난다는 작가의 주장은 나 자신의 퀴어함을 일깨우고 직선화된 질서를 반성하게 한다. 나도 자연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어릴 적 집 주변에는 소택지가 있었다. 소택지(swamp)라는 낱말은 질퍽질퍽한 땅을 두루 일컫지만 실은 습지의 여러 유형 중 하나라고 한다.

그녀를 매료시키는 장소는 소택지 인근의 숲인데, 혹독한 열기가 내리쬐는 세상에서 소택지와 숲은 빛을 걸러주는 포근한 구덩이며, 아늑하고 폭신폭신하며 서늘하게 느끼는 공간이다.

“‘퀴어한 나니아’(C.S.루이스의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의 배경이 되는 나니아 왕국)로 통하는 관문”이 존재하는 그녀만의 아지트였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얽히고 설켜 있으며, 구별하기 힘들고 역동적인 자연의 상태 그대로인데, 우리의 문화는 특정한 상자나 규정에 순응하라고 강요한다는 저자의 설명에 깊은 공감과 해방감을 느낀다.

상상의 아지트(자연은퀴어하다)53X45.5cm oil on canvas 2026
도서관 판타지- 상상의 아지트Ⅰ, 53x45.5cm, Oil on Canvas, 2026 ⓒ천지수

“소택지와 숲을 내면에 들여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과 “우리 몸은 고대의 공동 소택지다”라며 그 무엇도 홀로 있지 않다는 통찰과 발견은 나의 퀴어한 DNA의 직관이 명료해지도록 도와준다.

“물과 식물에 대해 죄를 저지르고(비록 잔가지 하나를 꺾었을지언정) 속죄하지 않으면 이승을 하직했을 때 세상 모든 식물의 정령이 그의 앞에서 벌떡 일어나 그를 천국에 들여보내면 된다고 아우성친다”

어린아이에게 들려주는 설화 같은 이 이야기는 조로아스터교 팔레비어 경전에 있는 구절이다. 아르메니아의 이민자 출신인 저자는 이 문구를 보고 수천 년 전 아르메니아인들과 잠시 하나가 되는 것 같았고, 무척 감명을 받았다.

재미있는 것은 나도 이 경전의 구절에 묘한 믿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녀는 직관을 몸의 언어이며 내장과 우리 주위 모든 것 사이에서 발화되는 마법의 일종으로 보는데, 나의 직관에도 마법이 있다고 느껴진다. 따라서 나는 숲에 들어가 귀 기울이면 직관을 갈고닦을 수 있다는 작가의 조언처럼 끊임없이 숲과 동물과 환상을 그리는 것일까?

자연의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온전하게 바라보며 찬미하게 만드는 책 '자연은 퀴어하다'는 어느 순간, 내 안의 상상의 아지트를 위해 함께 노래해 주는 것만 같다.  

천지수 칼럼니스트

화가이자 서평가. 대학에서 회화과를 졸업한 후 로마국립미술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2003년 '지오반니 뻬리꼬네' 이탈리아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2008년에는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건너가 세랭게티 국립공원 내 암석벽화 복원작업에 참여했다.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 주이탈리아 로마 한인성당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저서로는 '책읽는 아틀리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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