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풍경] (53) 강감찬 문하시중의 생가터에서 사람의 향기를 맡다
[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풍경] (53) 강감찬 문하시중의 생가터에서 사람의 향기를 맡다
  • 홍찬선 칼럼니스트
  • 승인 202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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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안국사
강감찬 장군의 사당인 안국사(安國祠)/사진=홍찬선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문득 생각이 났다. 곡우(穀雨, 4월20일) 날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을까.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4번 출구를 나오면서 발길이 자연스럽게 인헌초등학교 후문 쪽으로 향했다. 마음보다 먼저 발이 관악구 봉천동 218-9번지를 떠올렸다.

올해부터 1주일에 한두 번 서울대학교에 갈 일이 생겨, 낙성대역 4번 출구에서 관악2-2번 마을버스를 타고 오갔는데, 오늘은 그냥 걸어서 갔다. 곡우 비를 한 차례 뿌린 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걱정돼서였을지 모른다.

강감찬 문하시중의 숨결을 느끼는 낙성대집터

강감찬장군유허비
강감찬장군낙성대유허비/사진=홍찬선

강감찬(姜邯贊, 948~1031) 문하시중은 고려 정종 3년(948) 금주(衿州)에서 태어났다. 고려 때의 금주는 서울의 관악구 일대다. 그가 태어날 때 문곡성(文曲星)이 그의 집으로 내려왔다는 설화가 전한다.

전설에 따르면 송(宋)의 한 관리가 별을 보면서 길을 걷는데 별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달려갈 때 강감찬이 태어났다. 그 관리가 사신이 되어 고려에 왔을 때, 강감찬이 하인과 옷을 바꿔 입고 사신을 맞이했다. 사신은 강감찬을 보고 “그동안 문곡성이 어디로 갔는지 걱정했는데 바로 이곳에 현신하셨다”며 절을 했다.

문곡성은 북두칠성의 4번째 별로 문(文)과 재물을 관장하는 별이다. 조선 중종 때 성현(成俔, 1439~1504)이 간행한 '용재총화(慵齋叢話)'에서는 강감찬이 문곡성이 아니라 염정성(廉貞星)의 화신이라고 서술했다. 염정성은 북두칠성의 5번째 별로 형벌과 공정 및 충효를 관장한다. 문곡성이든 염정성이든, 별이 떨어져 강감찬이 태어났다고 해서, 그의 집터를 낙성대(落星垈)라고 한다.

강감찬향나무
향나무/사진=홍찬선

강감찬이 태어난 집터엔 ‘강감찬장군낙성대유허비’가 서 있고, 그 앞에 향나무 한 그루가 자란다. 이 향나무는 1996년 고양에서 150살 된 것을 옮겨 심은 것이다.

원래 있던 향나무(강감찬향나무)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고사(枯死)해, 한 토막이 강감찬 장군의 사당인 ‘안국사(安國祠)’ 경내의 ‘강감찬기념관’에 보관돼 있다.

이곳에는 강감찬 집터임을 증명해주는 3층 석탑이 있었는데, 안국사를 조성하면서 그쪽으로 옮겨 세웠다. 탑신(塔身)에는 한자로 ‘姜邯贊 落星垈(강감찬 낙성대)’라고 새겨있다.

‘강감찬기념관’에 보관된 강감찬 향나무 고사목/사진=홍찬선

인헌공(仁憲公) 강감찬은 고려의 최고 벼슬인 문하시중을 지냈다. 그는 문관이었는데 제3차 고려여진전쟁 때 상원수(上元帥)로 고려군을 총지휘해 귀주대첩에서 거란군을 거의 전멸시켰다. 강감찬이 갑주(甲冑)를 입은 것은 3차 고려여진전쟁 때, 약 3개월 남짓이었다. 귀주대첩을 거둬 장군으로 불리지만 실은 문하시중이다. 철쭉이 피기 시작한 강감찬 집터에서 시 한 수를 주웠다.

사람은 가도 
향기는 남는다

천 년의 세월이 물처럼 흘러도
향기는 바람으로 남아 
우리의 가슴을 적신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반드시 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백척간두에서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맞이하는 촛불이라도

권력과 인생은 짧고
역사와 정의는 길다

두려움 없이 이긴다
적을 알고 나를 아니
사람이 가도 향기는 바람으로 남으니

- 홍찬선, '사람은 가도' 전문.

낙성대공원과 안국사

강감찬 장군동상에서
강감찬 장군동상 앞에서/사진=홍찬선

관악구에는 강감찬과 관련된 이름이 많다. 인헌초,중,고와 인헌동, 인헌운수는 그의 시호(諡號)인 인헌(仁憲)을 땄다. 은천(殷川)동과 은천초등학교, 은천운수는 강감찬의 어릴 때 이름인 은천을 땄다. 해군의 구축함 가운데 5번함은 강감찬의 함자(銜字)를 따서 ‘강감찬함’(DDH-979)이라 명명했다.

강감찬 집터에서 관악산 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낙성대공원이 나온다. 공원 광장에는 거란군을 정벌하기 위해 말을 타고 긴 칼을 쥐고 힘차게 질주하는 강감찬 장군의 동상이 있다. 관악산에 있는 대학교에 다닐 때는 본 기억이 없어 동상 뒤쪽에 가보니 1997년 10월에 세웠다는 설명문이 있다.

황금갑옷을 입은 강감찬 장군 영정/사진=홍찬선

동상에서 동쪽으로 가면 안국사(安國祠)가 있다. 사당에는 황금갑옷을 입은 강감찬 장군의 영정이 있다. 두 눈을 부릅뜨고 거란군의 진영을 노려보는 모습이 반드시 이기겠다는 각오를 느끼게 한다. 침략군 사령관 소배압(蕭排押)은 그 눈길에 전의를 상실했을 것이다.

강감찬의 기상을 떠올리며 성명시조를 한 수 읊는다. 나날이 어려워지는 나라를 걱정하며 강감찬 장군같은 현인(賢人)이 나타나 국난(國難)을 이겨낼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강 건너 침입한 적 쇠가죽 수공(水攻)으로
감상할 틈도 없이 귀주(龜州)에서 섬멸하니
찬란한 고려의 병법 망신당한 소배압

강산을 아름답게 지켜낸 문무겸비
감응한 천지신명 문곡성을 보냈으니
찬사가 천년 이어진 낙성대의 안국사

귀신을 물리치고 부드러운 호질심강
국난을 내다보아 금주에서 강림대감
국사리 독특한 이름 잊힌 묘를 찾은 찬

- 홍찬선, '강감찬' 전문

강감찬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진다. 어느 혼례식에서 귀신이 신랑으로 변신한 것을 알아보고 귀신을 쫓아버렸다. 중으로 변신해 사람을 해치는 범을 크게 꾸짖어 떠나게 할 정도로 강단이 센 강감찬의 모습을 호질심강(虎叱心剛)으로 표현했다.

국사리(國仕里)는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에 있는 마을이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강감찬 묘를 1963년에 국사리에 찾은 것을 “국사리 독특한 이름 잊힌 묘를 찾은 찬”으로 정리했다.

홍찬선 칼럼니스트

시인 겸 소설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천안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기자를 하면서 서강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재무관리전공)과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칭화(淸華)대학교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 성균관대학교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등을 수료했다. 머니투데이방송(MTN) 보도국장,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 역임한 뒤, 100세 시대에 제2인생을 살기 위해 2017년 7월부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2016년 가을호)한 뒤 시집 ‘틈’ ‘독도연가’ ‘서울특별詩 1, 2, 3, 4, 5’ ‘생명과 사랑’ 등 19권과 부부시화집 ‘그 섬에서 1박2일’ 등 2권을 출간했다. ‘연인’에서 소설 등단(2019)해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와 장편소설 ‘백석의 불시착’도 출간했다.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패치워크인문학’ ‘20대 대통령을 위한 경제학’ 등 경제분야 저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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