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59) 107세 김형석 교수에게 AI시대에 살아남는 인문학을 배우다
[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59) 107세 김형석 교수에게 AI시대에 살아남는 인문학을 배우다
  • 홍찬선 칼럼니스트
  • 승인 2026.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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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 중인 김형석(金亨錫, 1920~) 연세대 명예교수./사진=홍찬선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어르신은 그저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르신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풍파를 겪으며 쌓고 쌓은 삶의 지혜가 풍부하면서도 튼실하게 익은 벼 이삭처럼 고개를 숙이는 겸손함이 배인 사람이 어르신이다.

한두 개 새로 배운 뒤 세상 모든 이치를 다 깨친 것처럼 촉싹대는 하룻강아지를 나무라지 않고 여유로운 미소로 기다려준다. 아는 지식을 모두 쏟아붓고 몇 날 며칠을 밤샘하는 정성을 기울였는데도 실패하고 좌절하는 젊은이에게는 따뜻하게 어깨를 감싸 준다.

김형석(金亨錫, 1920~) 연세대 명예교수가 바로 그런 어르신이다. 

'AI 시대, 인간의 가치를 묻다' 주제로 1시간 동안 열강

지난달 30일 을지로 입구 ‘남포면옥’에서 열린 ‘숭륭회(崇隆會)’ 주최 김형석 명예교수 초청 사제동행 북 토크 'AI 시대, 인간의 가치를 묻다' 현장./사진=홍찬선

올해 107세로 기네스가 공식으로 인증한 ‘현존하는 세계 최고령 저자’인 김형석 교수는 최근 'AI시대에 인문학은 무엇인가'(위더북, 2026. 6. 16)를 출간했다. ‘움직이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통념(通念)을 깨고, 6월30일 오후 을지로 입구 ‘남포면옥’에서 열린 ‘숭륭회(崇隆會)’ 주최 ‘김형석 명예교수 초청 사제동행 북 토크’에서 'AI 시대, 인간의 가치를 묻다'를 주제로 1시간 동안 열강(熱講)했다.

3‘숭륭회’는 김형석 교수가 졸업한 숭실학교(현 숭실중고등학교) 졸업생들의 모임이다. 김 교수는 1920년 평안북도 운산에 태어나 평양에서 성장했다.

숭실학교 재학시절,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시인과 3학년 때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 숭실학교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자진 폐교하자, 윤동주는 고향인 만주로 돌아갔고 김 교수도 자퇴했다.

김 교수는 윤 시인에 대해 “당시 윤동주가 시를 쓰는 것을 보며 ‘병아리 시인’이라 생각했다. 장차 크면 세상을 울릴 거라 여겼는데 과연 그렇게 됐다”고 회고했다.

소설 '소나기'로 유명한 황순원(黃順元, 1915~2000) 소설가와 문익환(文益換, 1918~1994) 목사는 김 교수의 숭실학교 선배다. 

김형석 명예교수와 함께.

김 교수는 이날 강연이 시작되기 전에 한 사람씩 사진을 찍도록 배려했다. 나이가 107세나 되는 고령이어서, 사진 찍는 것이 귀찮을 수도 있을 텐데, 싫은 내색을 전혀 하지 않고 지긋한 미소를 띠고 반갑게 카메라를 응시했다.

'AI시대에 인문학은 무엇인가'에서 맨 끝에 밝힌 “주어진 시간이 끝나 가고 있으니 나를 위한 소원과 희망은 없습니다. 나와 함께 살아온 더 많은 사람과 이웃이 인간답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라는 바로 그 말을 실천하는 모습이었다. 가슴이 뭉클해 시 한 편을 주웠다. 

두 눈이 축구공처럼 커졌다
윤동주 시인과 숭실학교 같은 반에서 함께 지냈고
황순원 소설가와 숭실학교 동문수학한
107세 김형석 교수의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두 귀가 천사의 나팔꽃보다 더 크게 울렸다
AI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려면 
인문학을 더욱 배워 진실과 선(善)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며
1시간 동안 강조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모으려고

두 코가 벌렁벌렁거렸다
잘 익은 벼이삭이 스스로 고개를 숙이듯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정성스럽게 서명하고
곁을 따뜻하게 내주며 피우는 웃음꽃에

말과 말이 가슴에 콕콕 박혔다
인생의 황금기는 예순에서 일흔다섯인 바로 지금이고
사람은 늙었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늙으며
더 많은 사람과 이웃이 인간답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보고 싶다는 바로 그 말이

- 홍찬선, '김형석 교수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전문.

인도 중국 그리스 문명의 차이

‘현존하는 세계 최고령 저자’인 김형석 교수가 펴낸  'AI시대에 인문학은 무엇인가'(위더북)
‘현존하는 세계 최고령 저자’인 김형석 교수가 펴낸 'AI시대에 인문학은 무엇인가'(위더북)

강연이 시작되자 김 교수는 인도문명과 황하문명의 차이부터 설명했다. 인도는 자연의 혜택을 받지 못해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종교가 발전했다. 인도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든가, 월드컵 본선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기 힘들 정도로 현세보다는 내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황하문명은 자연환경이 좋아 만족하며 살기 때문에, 종교보다는 윤리와 도덕에 중점을 두었다. 살기 좋은 현세를 떠나지 않고,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춘 문명이라는 설명이다. 

그리스문명에서는 신화가 강조됐다. 흙을 빚어서 사람을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조각품이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생명도 없었다. 영혼의 신 프시케가 그 조각의 코에 입김을 불어넣어 생명을 갖게 됐다. 그러자 사람을 빚은 신과 생명을 불어넣은 신이 서로 인간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중의 신, 제우스는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사람은 사는 동안은 영혼을 갖고 근심과 걱정 속에 생활하다가 죽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고. 사는 동안의 근심 걱정을 다루는 철학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구약성서를 믿는 이스라엘 중심의 ‘민족종교’인 기독교가 로마로 가서 ‘세계종교’가 된 것은 베드로 덕분이었다. 베드로가 로마의 백부장이던 고린도의 안내를 받아 로마에 가서 처음으로 ‘베드로교회’를 세웠다. 초기의 기독교 탄압이 있었지만, 로마는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종교를 통합함으로써 세계국가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점차 종교만 남고 철학을 배제함으로써 1500년 동안 암흑의 중세가 시작되었다.  

인류에게는 사상적으로 세 어머니를 갖고 있다. 인도와 중국, 그리고 그리스-로마다. 세 어머니 가운데 인도와 중국은 ‘근대라는 아들’을 낳지 못하고 서양만 낳았다. 기독교가 ‘역사적 종교’인 덕분이다.  

김 교수는 이어 ‘AI 시대의 인문학의 역할’에 관해 설명했다. 나무에 비유하자면, 인문학은 눈에 보이지 뿌리고,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은 줄기와 가지이며, 공학은 화려한 꽃과 열매다. 자연과학과 공학에서는 한 가지 질문에 한 가지 답만 존재한다. 사회과학에는 똑같은 질문에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다. 민주주의와 정의에 관해서는 학자마다, 사람마다, 체제마다 다른 답을 제시한다. 인문학에서는 한 가지 질문에 대해 사람 수만큼 답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한 다양성이 바로 창조력의 바탕이다.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한다면, 인문학은 붕괴하고 세상이 무너질 위험해 처한다.  

인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4가지 핵심 원리

김형석 교수의 하트 손동작
강연이 끝난 후 김형석 명예교수와 함께한 손하트./사진=홍찬선 

인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미래를 위한 사고와 책임의 균형이다. 또 권리와 의무는 반드시 함께 존재해야 한다. 권리만 주장하거나 의무만 떠맡게 되면, 조직과 공동체는 혼란에 빠지고 핑계를 대며 책임을 회피하게 마련이다. 이런 관점에서 인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4가지 핵심원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성을 통해 진리와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다. 진리와 진실을 구분하고 거짓과 혼동디지 않도록 하는 힘이 바로 철학적 사고다. 둘째 양심의 판단을 통해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이다. 특히 지도자는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셋째 미래와 장래를 위해 가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고, 넷째 인간을 위한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AI는 자연과학과 공학의 원리를 활용해서 현실 세계에 적용한 결과다. AI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복합적 산물이다. 인문학적 관점은 AI를 단순히 효율성과 편리함의 도구로 보지 않고, 인간과 사회, 윤리와 가치, 인간 존재의 의미와 관련해 성찰할 문제로 본다. AI가 발전할수록 기술 뒤에 숨은 인간적, 사회적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진다.  

인문학적 성찰 없이는 아무리 뛰어난 AI도 올바르게 활용되기 어렵다. AI가 제공하는 답은 과거의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인문학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 지인이 AI에게 ‘우리나라 대표 지성인이자 철학자로 여러 권의 책을 쓰고 유명 강연자인 김형석 교수가 앞으로 몇 해나 더 살 것 같은가?’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AI의 답은 “김형석 교수는 지금 상태로 봐서는 110세, 잘하면 그 이상 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AI가 인간의 삶과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 같지만, 아무리 많은 정보를 분석한다 해도 그것은 과거의 데이터에 기반했을 뿐이다. 

AI는 역사적 통찰과 사회적 판단을 하기 어렵다. 인문학과 역사적 사고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우리가 미래를 설계하고 사회를 이끌어 가는 데 필요한 핵심적 힘이다. AI가 모든 영역을 지배하면 인간은 단지 심부름만 하는 존재로 전락한다. AI가 주인이 되고 인간은 거기에 종속돼 주체성을 상실한 노예가 된다. AI를 맹목적으로 믿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인간의 참된 성숙은 ‘나에서 우리로’, ‘우리에서 모두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얻어진다. 모두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대통령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고, 사회 전체를 이끄는 지도자가 된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지도자는 개인적 성취에 머무를 뿐, 사회와 국가를 위해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한다. 

인문학의 한 분야인 철학이 우리데게 가르쳐 주는 교훈은 인간의 양심에 관한 것이다. 양심이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스스로 깨닫고 판단하는 기준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자서전에서 “거짓은 죄악”이라고 썼다. 오늘날 가장 나쁜 악은 지도자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지도자가 정직하지 않으면 국민 전체가 피해를 입고, 사회적 신뢰가 무너진다.  

김형석 교수의 강연을 들으면서 김 교수의 기도문이 떠올랐다. 앞으로도 건강한 모습으로, ‘100세 시대’를 맞이하는 많은 사람에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오랫동안 알려주기를 기원한다. 강의가 끝난 뒤 'AI시대에 인문학은 무엇인가'에 김 교수의 친필 서명을 받고, 함께 또 사진을 찍었다. 

내 세월 다하는 날
슬픔 없이 가게 하소서
초대 없이 온 이 세상
정주고 받으며 더불어 살다가

귀천의 그날은
모두 다 버리고
빈 손과 빈 마음으로
떠나기를 약속하고 왔나니

내 시간 멈추거든
그림자 사라지듯
그렇게 가게 하소서

한 세상 한 세월
사랑하고 즐겁고 괴로웠던 생애였나니

이 세상 모든 인연과 맺어온
그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들이
허락없이 떠나는 그날의 외로움으로
슬프게 지워지지 않게 하여 주소서

다만 어제 잠자리에 들 듯
그렇게 가고 보내는 이별이 되게 하여 주소서

아울러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이
슬픔과 외로움을 잊고
이 세상의 삶을 더욱 알고
깨달아 굳건히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를 갖게 하여 주소서

아름다운 이 세상
마지막 소망을 아름답게 이루고
아름답게 떠나가게 하여 주소서

- 김형석 '기도문' 전문.

홍찬선 칼럼니스트

시인 겸 소설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천안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기자를 하면서 서강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재무관리전공)과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칭화(淸華)대학교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 성균관대학교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등을 수료했다. 머니투데이방송(MTN) 보도국장,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 역임한 뒤, 100세 시대에 제2인생을 살기 위해 2017년 7월부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2016년 가을호)한 뒤 시집 ‘틈’ ‘독도연가’ ‘서울특별詩 1, 2, 3, 4, 5’ ‘생명과 사랑’ 등 19권과 부부시화집 ‘그 섬에서 1박2일’ 등 2권을 출간했다. ‘연인’에서 소설 등단(2019)해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와 장편소설 ‘백석의 불시착’도 출간했다.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패치워크인문학’ ‘20대 대통령을 위한 경제학’ 등 경제분야 저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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