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년간 영화와 함께 했던 열정적인 삶
- 뒤늦게 접한 부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황망함
인터뷰365 김두호 기자(/칼럼니스트)= 인간 사회에서 가장 큰 슬픔은 사별이다. 혈연에서 학연, 또는 사회활동을 하며 만난 인연이든, 가깝게 지내던 주변 친지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다른 세상으로 홀연히 떠나면 한동안 슬픔이 저미는 가슴앓이를 한다.
그 가운데 한동안 소식이 끊겨 근황을 알아보던 가까운 지인이 느닷없이 한참 전에 고인이 되었다는 부음을 뒤늦게 전해 들었을 때, 그 황망한 심경은 선뜻 표현할 적절한 언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과거 ‘인터뷰365’에 한동안 영화계 비화를 연재하던 정종화(1942∽2025) 칼럼니스트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서설(絮說)이 너무 길었다.
고인은 생전에 ‘영화연구가’라는 호칭으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의 한사람으로 영화 저널리즘 관련 직업기자이기도 한 필자는 정종화 영화연구가와 오랜 세월 인연을 나누어 왔다. 그는 연간 200편 이상이 제작되던 1960년대 한국영화 중흥기부터 영화 포스터와 전단지, 극장(영화관) 입장권 등 영화 관련 자료와 인물 관련 사료를 수집, 개인 영화자료 최대 소장자이기도 했다.
그는 수재로 볼 수 있는 뛰어난 기억력으로 ‘걸어 다니는 영화백과사전’ ‘움직이는 영화박물관’ 소리를 들을 만큼 독보적인 영화역사 관련 지식과 영화 인물들의 신상, 각종 비화를 기억하고 증언했다. 한번 영화 관련 주제를 제시하면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영화정보와 일화를 접하면서 평소 필자는 그를 대할 때 ‘정 박사’로 불렀다.
실제 영화학자들이 논문 준비를 하면서 그를 찾았고, 많은 원로 영화인들이 자신의 작품 활동 이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 그를 찾았다. 고인의 마지막 활동은 영화역사의 시발점인 서울 종로 단성사 극장을 영안모자 그룹이 인수했을 때였다. 건물의 용도가 바뀌면서 지하에 영화기념관이 설립, 고인이 소장 자료를 이관하고 한동안 기념관 고문으로 참여했다.
고인은 자료 수집가로 머물지 않고 문화예술전문 매체 ‘인터뷰365’에 <정종화의 한국영화 진기록 100년>칼럼을 연재하면서 고전 영화의 제작 비화와 감독, 배우들의 활동 비화를 연재하기도 했지만, 그에 앞서 1980년대에 월간 '시네마'를 창간해 영화 저널리즘 분야에서도 열정적인 활동 발자취를 남겼다.
영화연구가 정종화, 그는 생전에 ‘자료로 본 한국영화사’ ‘한국의 영화포스터’ ‘영화동네 사람들’ ‘영화에 미친 남자’ 등 저서를 남겼고 대학에서 영화사 강의를 하는 등 사회활동을 시작해 60여 년을 두고 영화와 더불어 살다가 어느 날 소리 없이 하늘로 떠났다.
-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 Copyrights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