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시인의 좋은 시 365] 맹기호 시인의 ‘봄’
[김지수 시인의 좋은 시 365] 맹기호 시인의 ‘봄’
  • 김지수 칼럼니스트
  • 승인 202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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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인간 마음속 심상(心像)에서 피어나는 혼불과도 같습니다. 깊은 사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짧지만 응축된 언어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시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좋은 시와 함께 조용하지만 반짝이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산아래 詩' 다시 공방에서 열린 맹기호 시인 북토크에서.

/ 맹기호

녹아내린 얼음장 밑에 
강물은 새처럼 노래하고

서릿발 무른 논둑길
냉이 캐는 아가씨들 
발자욱 깊은데

초가집 추녀 끝으로 
따스한 햇살 별처럼 반짝이니 
그대 오시는가

멀리 아지랑이
굽이굽이 오르고

긴 잠 깬 다람쥐
나무마다 바쁜데

물오른 갯버들도 
보송한 강아지 밀어 올리니 
그대 그리는 맘 깊어만 가네

- 『그리워서 그립다』 (감커뮤니케이션, 2017)

경칩입니다. 땅속에서 잠들어 있던 것들이 조용히 몸을 뒤척이는 시간. 얼음장 같던 강물은 숨을 고르고, 다람쥐는 바쁜 걸음을 시작하며, 갯버들과 냉이를 캐는 사람들의 손끝에도 봄이 스며듭니다. 경칩의 의미는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깨어남’에 있습니다. 겨울 동안 말없이 묻어 두었던 마음과 그리움, 기다림까지 함께 눈을 뜨는 순간입니다. 자연의 경칩이 마음의 경칩으로 이어질 때, 봄은 비로소 우리 안에서 시작됩니다.

맹기호 시인은 1955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1998년 월간 『문예사조』를 통해 등단했습니다. 오랜 교직 생활을 마치고 교장으로 정년 퇴임을 한 뒤에도 시와 수필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삶과 예술을 함께 가꾸어 가고 있습니다. 그의 시에는 특별한 사건보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지나온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첫 시집 『그리워서 그립다』라는 제목처럼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남아 계속 살아 있는 감정들을 이야기합니다. 사랑과 존재 탐구, 동무와 인연의 기억은 쉽고 담백한 언어로 다가오지만 읽고 나면 오래 남는 여운을 줍니다. 학생들과 함께했던 시간과 지나온 세월에 대한 성찰은 그의 작품 속에서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되살아납니다.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염소가 새끼를 낳기만을 기다린다고 조용히 말하던 한 학생을 잊지 못하는 마음처럼, 그의 시는 사람을 향한 이해와 연민에서 출발합니다. 삶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함께 견디며 지나온 시간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는 사실을 그는 담담히 일깨워 줍니다.

제6회 백봉문학상 본상을 받으며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은 그는, 자랑스러운 수원 문학인상과 함께 오랜 시간 지역 문학의 뿌리를 지켜 온 작가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국제 PEN 한국본부 회원이자 한국문인협회·한국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경기수필가협회장을 맡고 있는 그의 행보는 문학과 예술이 삶과 동떨어진 장식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식임을 보여 줍니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문학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하루하루 속에 이미 자리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경칩의 아침처럼, 마음도 어느 순간 조용히 깨어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김지수 칼럼니스트

시인, 교수, 연기지도. 2023년 ‘월간 시’ 34회 추천 신인상으로 등단, 시담작가회 회장, [감성지수 시낭독회] 진행. 저서로는 시집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 된다』, 동인시집 『공감과 치유』, 『지구의 솜털을 숏커트로 잘랐다』, 『나 때와 라떼』, 『축봄합니다』 가 있으며,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에 다양한 언어로 번역 소개 됨. 상명대 영화과, 백제예대 연예매니지먼트과, 국제대 모델과의 겸임교수와 김지수 연기 아카데미 학원장을 역임했으며, 배우 권상우, 송혜교, 김선아, 남궁민, 아이유, 김다미 등 연기 지도. 저서 『대한민국에서 연예인 되는 법』이 있음. 현재 단국대 공연예술학부 연극과 초빙교수, 서울사이버대학교 성악과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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