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인간 마음속 심상(心像)에서 피어나는 혼불과도 같습니다. 깊은 사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짧지만 응축된 언어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시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좋은 시와 함께 조용하지만 반짝이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은하수 / 박형준
저녁밥 먹고
누나들과 부지깽이로 아궁이를 뒤적이며
불빛이 사그라들기를 기다린다
불씨들이
잔잔하게 숨어 있던 아궁이 재 속에서
고구마가 익어가는 겨울밤
아버지는 부엌 토방에 나뭇단을 쌓아두는 걸 좋아하셨지
적막한 겨울 숲속에서 나무를 베고 장작을 쪼개
부엌 한쪽 토방에 쌓아둔 나뭇단
나뭇단이 높이 쌓일수록 그것을 바라보는
키 작은 아버지의 애정도 한뼘씩 자라 있었지
겨울이 오면
쌀은 없어도 나뭇단은 많아서
나무부자라고 불리던 집
아궁이에 나무를 태울 때 맡게 되는
연기와 냄새와 소리와 불꽃까지
말없는 아버지의 눈빛이
잔잔하게 일렁였지
밤하늘에 떠 있는 은하수를
우리는 부지깽이로 뒤적이며
캄캄한 부엌에 앉아 고구마가 익기를 기다린다
-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 (창비, 2020)
박형준 시인은 1966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나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가구의 힘’이 당선되며 문단에 나왔습니다. 이후 존재와 시간, 기억과 소멸의 문제를 섬세한 언어로 탐구하며 한국 서정시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시 세계를 꾸준히 확장해 온 시인입니다.
그의 시는 일상의 감각에서 출발해 삶의 근원적인 질문으로 나아가며, 이미지와 정서가 밀도 있게 어우러진 서정미로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사유의 깊이와 감각적인 언어가 균형을 이루는 작품 세계는 박형준 시인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시집으로는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춤’,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불탄 집’,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 등이 있으며, 산문집 ‘저녁의 무늬’, ‘아름다움에 허기지다’와 평론집 ‘침묵의 음’ 등 다양한 저술을 통해 문학적 사유의 폭을 넓혀 왔습니다. 그의 다섯 번째 시집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는 영화 ‘은교’에 등장하며 문학과 영화의 만남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꿈과시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시학작품상, 소월시문학상, 육사시문학상, 풀꽃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신춘문예와 여러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신진 작가 발굴에 참여해 왔습니다.
‘시힘’ 동인으로도 활동하며 동시대 시인들과의 교류를 이어가고 있으며, 이러한 동인 활동은 그의 시 세계에 집단적 사유와 미학적 실험의 감각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현재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창작과 연구, 교육과 심사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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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칼럼니스트
시인, 교수, 연기지도. 2023년 ‘월간 시’ 34회 추천 신인상으로 등단, 시담작가회 회장, [감성지수 시낭독회] 진행. 저서로는 시집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 된다』, 동인시집 『공감과 치유』, 『지구의 솜털을 숏커트로 잘랐다』, 『나 때와 라떼』, 『축봄합니다』 가 있으며,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에 다양한 언어로 번역 소개 됨. 상명대 영화과, 백제예대 연예매니지먼트과, 국제대 모델과의 겸임교수와 김지수 연기 아카데미 학원장을 역임했으며, 배우 권상우, 송혜교, 김선아, 남궁민, 아이유, 김다미 등 연기 지도. 저서 『대한민국에서 연예인 되는 법』이 있음. 현재 단국대 공연예술학부 연극과 초빙교수, 서울사이버대학교 성악과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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