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인간 마음속 심상(心像)에서 피어나는 혼불과도 같습니다. 깊은 사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짧지만 응축된 언어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시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좋은 시와 함께 조용하지만 반짝이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좋겠다 / 고운기
저물 무렵
먼 도시의 번호판을 단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빠져나간다
가는 동안 밤을 맞더라도
집으로 가는 길이라면 좋겠다
버스에 탄 사람 몇이 먼 도시의 눈빛처럼 보이는데
손님 드문 텅 빈 버스처럼 흐린 눈빛이라도
집으로 가는 길이라면 좋겠다
집에는 옛날의 숟가락이 소담하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구름의 이동속도' (문예중앙, 2012)
고운기 시인의 ‘좋겠다’는 안산의 한 터미널에서 영감을 받아 쓰인 시입니다.
해 질 녘 시외버스를 바라보며, 이 시는 어디로 가느냐보다 집으로 향하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밤을 맞고 눈빛이 흐려져도, 그 길의 끝에 기다림이 있다면 괜찮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집은 결국 고향, 돌아갈 수 있는 방향이며 마음이 쉬어 가는 자리입니다.
이 따뜻한 시는 산울림의 둘째 김창훈에 의해 시노래로도 만들어졌습니다. 김창훈은 하루 한 편씩 시에 곡을 붙여 천 곡을 완성하는 ‘시 노래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중 열 곡을 묶어 기념 앨범 ‘당신 아프지마’를 지난 8월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에 ‘좋겠다’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고운기 시인은 1961년 전남 벌교에서 태어나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자 문학연구자입니다. 현재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40여 년간 시를 쓰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함께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한 고전 서사 연구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고전과 현대를 잇는 인문학적 사유를 꾸준히 탐구해 왔습니다.
그의 시는 남도의 공간 감각과 고전적 교양, 지적인 사유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일상의 장면 속에 역사적 시간이 겹쳐지며, 절제된 언어 안에서 조용한 유머와 깊은 성찰이 드러납니다. 개인의 체험을 과장하지 않은 서정으로 끌어올려, 사적인 감정이 보편적 사유로 확장되는 지점에서 고운기 서정시의 특징이 선명해집니다. 담백한 시어 속에 사유의 여백과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점이 그의 시의 중요한 매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집으로는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섬강 그늘’,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 ‘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 ‘구름의 이동속도’, ‘어쩌다 침착하게 예쁜 한국어’, ‘고비에서’, 육필시집 ‘반쯤’ 등이 있습니다. 또한 문학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문단을 대표하는 동인 ‘시힘’ 1기 멤버로서 한국 서정시의 사유 지평을 확장해 가며 동시대의 시인들과 독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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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칼럼니스트
시인, 교수, 연기지도. 2023년 ‘월간 시’ 34회 추천 신인상으로 등단, 시담작가회 회장, [감성지수 시낭독회] 진행. 저서로는 시집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 된다』, 동인시집 『공감과 치유』, 『지구의 솜털을 숏커트로 잘랐다』, 『나 때와 라떼』, 『축봄합니다』 가 있으며,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에 다양한 언어로 번역 소개 됨. 상명대 영화과, 백제예대 연예매니지먼트과, 국제대 모델과의 겸임교수와 김지수 연기 아카데미 학원장을 역임했으며, 배우 권상우, 송혜교, 김선아, 남궁민, 아이유, 김다미 등 연기 지도. 저서 『대한민국에서 연예인 되는 법』이 있음. 현재 단국대 공연예술학부 연극과 초빙교수, 서울사이버대학교 성악과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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