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에서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뷰365 편집자주]
■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지막 나날(에마뉘엘 드 바레스키엘 지음, 주명철 옮김, 여문책, 2025)
“오늘, 우리는 파리 항소법원으로 가서 장엄한 분위기의 대리석 기둥이 있는 현관문을 지나 고등법원 1호 법정에 들어선다.” _책속에서
그렇게 우리를 프랑스 고등법원 1호 법정으로 불러낸 에마뉘엘 드 바레스키엘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지막 나날’로 데려다 놓는다. 단 사흘 만에 끝난 재판의 기록 속을 거닐며 정말 마리 앙투아네트를 둘러싼 진실을 알고 있느냐고 물어온다. 누구나 아는 ‘빵과 케이크’ 일화를 떠올리는 우리를 잠시 멈춰 세우고 손을 잡아 끈다. 외국인이자 여성이었고, 엄마였던 그에게 겹겹이 덧씌워진 혐오와 편견의 베일을 차분히 헤쳐 나가며 진짜 마리 앙투아네트를 만나러 간다.
“비극은 언제나 드러나지 않는 것의 주름 속에 숨어 있다”_책 속에서
주름 진 베일 속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갈수록 기시감이 든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를 들으러 찾아왔는데 마지막 순간 마주치는 것은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으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도 불온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자 경고다. 민주주의가 길을 잃은 지금, 계속되는 불화와 갈등에 무뎌진 우리에게 과거로부터 날아온 경고장. 여기에 당신은 무어라 답할 것인가. 책장을 덮어도 고민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황예린/출판마케터·문화비평가·비평연대)
■ 기쁨의 책(로스 게이 지음, 김목인 옮김, 필로우, 2025)
나에게 책이란 대개 ‘장바구니’라는 중간 지대를 거쳐 오는 법인데, '기쁨의 책'은 그 단계를 생략하고 곧장 손에 들어왔다. 이유는 단순했다. 표지 속 흰 인간의 자유로운 몸짓, 그리고 그보다 더 자유로워 보이는 로스 게이의 활짝 웃는 얼굴 때문이었다. 저런 웃음이라면 확실히 기쁨을 들려줄 수 있겠다는 내 멋대로의 믿음을 품고 책을 펼쳤다.
2018년 7월, 로스 게이는 그해 생일부터 다음 생일까지 1년간 매일 기쁨에 대한 에세이를 쓰기로 결심한다. 규칙은 간단했다. 초고는 빠르게 쓸 것, 그리고 반드시 손으로 쓸 것. 그렇게 노트에 차곡차곡 쌓인 기쁨은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잔받침 없이 작은 잔에 알맞게 담긴 커피, 주먹 위 움푹한 곳에 내려앉은 벌 한 마리, 장바구니 손잡이를 한쪽씩 나눠 든 엄마와 아이, 길가 분수대 옆의 낮잠 한 조각…. 슬픔과 분노로 뒤덮인 날에도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의식하며 기쁨을 찾았다. 그렇게 1년이 흐르자 기쁨은 애써 쫓아다녀야 하는 것이 아닌, 그의 주변을 맴돌며 "나에 대해 써줘"라고 재촉하는 존재가 되었다.
“옮기는 동안 나도 이런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는 김목인 역자의 고백처럼, 나도 이 기쁨 채집 프로젝트에 슬그머니 끼어들고 싶어진다. 어쩌면 책 표지를 살짝 들추면 보이는 비 오는 날의 샛노란 우비 같은 노란색 면지가 그 첫 번째 기록이 될 수도 있겠다.(이솔림/출판편집자·비평연대)
■ 슬픔의 방문(장일호 지음, 낮은산, 2022)
얼마 전 가까운 친구가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다. 친구의 나이 서른이었다. 주변인 누구도 예상 못한 죽음이었기에 고인과 인연이 깊었던 내게 찾아온 감정은 '당혹'이었다. 나는 발인을 마치고 몸과 마음이 너덜해진 채로 집에 돌아와 구급약처럼 이 책을 펼쳤다. 제목이 나를 불렀다.
'슬픔의 방문'의 머리말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었다.
"책은 내가 들고 온 슬픔이 쉴 자리를 반드시 만들어 주었다."
이 문장에 안도한 채 나는 다음 장을 가뿐히 넘겼다. '책'이 슬픔의 쉼터임을 아는 이가 제 인생을 길어 쓴 에세이를 독자로서 읽는 일이 마침 내게 정확히 필요했으니까. 저자 장일호는 살아오며 맞이한 슬픔의 기억을 과잉도 회피도 없이 담담히 밝혔다. 다섯 살 때 아빠를 잃은 자신보다 스물일곱에 남편을 잃은 엄마를 돌이켜봤던 날, 열렬히 좋아하던 아이돌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던 날, 스스로 난임을 깨닫던 날, 항암 치료 중 극심한 통증보다 흔들리는 자존감을 견디기 어려웠던 날 등... 누가 들어도 슬플 법한 인생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읽을수록 슬프지가 않았다. 외려 책을 다 읽어 갈 쯤엔 슬픔이 가고 없는 자리를 바라보듯, 하얘진 마음으로 책장을 덮게 됐다. 그 이유가 뭘까 곰곰 생각해 보다가 깨달았다. 책 속의 슬픔이 슬픔다웠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자기 인생 속 슬픔을 스스로 무엇과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유방암을 진단받고 나서도 저자는 병의 원인을 반추하길 스스로 거부하며 이렇게 말한다.
"살아온 삶을 바꾸고 싶지 않다."
이 말은 곧 이 책의 태도였다. 슬픔의 자리에 다른 것을 두지 않기. 슬픔을 온전히 슬퍼하기.
그래서 나는 오늘 그를 본받아 보기로 한다. 친구의 죽음을 온전히 슬퍼하기로. '부정'하거나 '당혹'스러워하지 않고 슬픔에게 슬플 자리를 주기로.(김상화/출판편집자·비평연대)
- Copyrights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