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 - 새로운 서평]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었다 外
[숏평 - 새로운 서평]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었다 外
  • 김리선 기자
  • 승인 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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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연대] 김상화·배희주·이솔림의 500자 서평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에서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뷰365 편집자주]

잃어버린 영혼(올가 토카르축 지음,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이지원 옮김, 사계절, 2018)

잃어버린 영혼(올가 토카르축 지음,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이지원 옮김, 사계절, 2018)

'잃어버린 영혼'의 주인공 얀은 어느 날 출장길에 숨이 막힐 듯한 느낌을 받고 병원에 간다. 의사는 ‘얀이 영혼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며, 얀에게 자기만의 장소를 찾아 그곳에서 가만히 영혼을 기다리라는 처방을 내린다. 얀은 의사의 말을 듣고 도시 변두리에 작은 집을 구해 그곳에서 제 영혼을 기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말로 긴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어린이의 모습을 한 얀의 영혼이 오랜 여행을 마친 사람처럼 녹초가 된 얼굴로 얀의 집을 찾아온다.

책은 ‘어린이의 모습을 한 얀의 영혼이 제 몸을 찾고자 지나오는 수많은 장소’들과 ‘어른의 모습을 한 얀이 집안에서 식물을 기르고 차를 내리고 책을 읽으며 제 영혼을 기다리는 모습’을 각각 펼침면의 왼쪽과 오른쪽에 배치해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이때 영혼이 지나오는 장소들은 한낮의 공원 속 벤치가 되기도 하고, 가로등이 불을 밝히는 밤의 공터가 되기도 하고, 햇살이 들이치는 한갓진 카페가 되기도 하고, 저마다 짝을 지어 춤추는 피로연장이 되기도 한다. 페이지을 넘길 때마다 얀의 영혼은 ‘어른 얀’이 그 소중함을 모른 채 정신없이 지나쳐 왔을 삶의 페이지 속을 부지런히, 그러나 천천히 걸어 나간다.

그리하여 책의 막바지. 비로소 영혼과 몸이 서로 만난 순간, 얀은 결심한다. 이제는 “영혼이 따라올 수 없는 속도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조심”하기로. 내가 나를 잃지 않기로.

'잃어버린 영혼'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삶에 치여 제 영혼을 돌볼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들에게 브레이크를 걸어 주는 책이다. 얀처럼 어디선가 영혼을 놓쳐버린 사람들에게 고개를 들어 지금 이 순간 다가오는 계절의 변화와 마음의 파동을 오롯이 느껴 보라고 제안하는 책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책장에서 꺼내기 전까지 얀과 다름없었다. 다가온 가을을 반갑게 맞이할 새 없이, 주말임에도 쌓인 업무들에 치여 집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발견해 다행이었다. 잠시간 멈춰 내 영혼이 나를 뒤쫓아올 시간을 벌었으니까. 책을 매개로 내가 나와 짧은 순간 대화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김상화/출판편집자·비평연대)

김상화<br>
김상화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었다(그랜트 린즐리 지음, 백지선 옮김, 프런트페이지, 2024)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었다(그랜트 린즐리 지음, 백지선 옮김, 프런트페이지, 2024)

살다 보면 누구나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전쟁터 같은 일터, 반복되는 인간관계, 끝없이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종종 사라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저자 그랜트 린즐리는 소중한 친구를 잃은 뒤, 굴레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태국 숲속 사원으로 향한다. 스마트폰도 되지 않고 우편물이 46일 만에 도착하는 그곳에서 그는 수도승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시간은 고요한 평화만으로 채워지지는 않았다. 정오 이후의 금식 앞에서 몰래 초콜릿을 먹기도 하고, 슬픔과 허무를 어쩌지 못해 흔들리기도 한다.

바로 그 솔직함이 이 책의 매력이다. 완벽한 수도승이 아니라 어쩌면 불량한 수도승에 가까운 그는 수도승들의 가르침에 의심을 품으면서도, “더하려 할수록 부족해지고, 비우려 할수록 충분해진다”라는 삶의 의미에 조금씩 다가간다.

끝까지 버티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다. 책장을 덮고 나면 ‘도망’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패배로만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다시 살아가기 위한 또 하나의 길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멈춤이, 또 누군가에게는 숨구멍이 되어줄 이 책은 “도망친 곳이 낙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배희주/출판마케터·비평연대)

배희주<br>
배희주 

뒷자리(희정 지음, 포도밭출판사, 2024)

뒷자리(희정 지음, 포도밭출판사, 2024)

스스로를 기록노동자라 소개하는 희정의 글을 좋아한다. 각자의 몫을 해내느라 바쁜 세상에서 그는 “누군가 악을 쓰며 싸우는 소리를 느지막이 듣는 사람”, “귀 밝은 이들이 앞서 달려간 곳을 더디게 따라가” 한참을 머무는 사람이다.

그런 그도 기록을 하며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매향리, 나아리, 용화여고 등 이제 사람들의 기억에서 거의 지워진 싸움들을 다루는 이 책의 서문에서, 그는 담담히 털어놓는다. 싸움이 벌어진 곳에 찾아가 글을 쓰고, 원고를 안은 채 그 자리를 떠나는 일이 결코 편하지 않았다고.

세상이 외면한 사람들을 만나러 간 자리에서 그는 혹여 자신 또한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어렵게 만난 이들에게 철없거나 무지한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는지 끝까지 고민한다. 바로 그 망설임 때문에 언제나 그의 책을 믿고 펼치게 된다.

안온한 세계에 머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질 때, 희정의 글을 읽어보길 권한다. '뒷자리'가 그 시작이 되어도 좋겠다.(이솔림/출판편집자·비평연대)

이솔림<br>
이솔림 

 

김리선 기자
김리선 기자
leesun@interview36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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