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 - 새로운 서평] 픽션들 · 이야기꾼과 놀이꾼 外
[숏평 - 새로운 서평] 픽션들 · 이야기꾼과 놀이꾼 外
  • 김리선 기자
  • 승인 2025.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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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연대] 맹준혁·이수련·김미향의 500자 서평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에서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뷰365 편집자주]

■ 픽션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민음사, 1994)

픽션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민음사, 1994)

"방대한 양의 책을 쓴다는 것은 쓸데없이 힘만 낭비하는 정신나간 짓이다. 단 몇 분에 걸쳐 말로 완벽하게 표현해 보일 수 있는 어떤 생각을 500여 페이지에 걸쳐 길게 늘어뜨리는 짓. 보다 나은 방법은 이미 그러한 생각들을 담고 있는 책들이 존재하고 있으니까 하나의 코멘트, 즉 그것들의 요약을 제시하는 척하는 것이다." -서문 中

했던 말을 또 하고 싶지는 않은데, 글을 쓰다 보면 결국 예전에 했던 말일 때가 있다. "모든 작가는 결국 한 가지 주제를 반복할 뿐"이라고 누군가 말했던 것 같은데, 평생 수많은 글자를 써내려가는 작가마저 쓸 수 있는 주제가 하나뿐이라는 건 좀 비참하다.

좋아하는 소설가의 단편을 읽다가 보르헤스 이야기가 나와서 '픽션들'을 다시 들춰봤다. 장황하고 지적인 이야기 너머로 이 거장이 말하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내가 이 단편집을 좋아하는 건(착각이겠지만) 어떤 초조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간의 인생에서, 한 주제조차 끝내지 못한 채 삶이 닫혀버릴 수도 있다는 초조함.

"말을 한다는 것은 동어반복을 범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벨의 도서관 中

어쩌면 단편의 미덕, 긴 이야기에 대항할 수 있는 짧은 이야기의 미덕은 이 진리를 인간에게 재빨리 깨우쳐주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삶은 길지 않고, 한 인간이 말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주제뿐이며, 인간은 그것조차 대부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맹준혁 / 출판편집자·콘텐츠제작자)

맹준혁<br>
맹준혁 

 우리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들려줄까(요하나 헤드바, 마티, 2025)

우리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들려줄까(요하나 헤드바, 마티, 2025)

어렸을 적 엘비스 프레슬리의 전기에서 한 세대를 호령한 락스타가 화장실에서 변을 보다 그대로 허무하게 사망했다는 일화를 읽은 적이 있다. 약물복용과다만큼 큰 요인은 질병 수준의 변비였다고 한다.

크고 작은 범위에서, 우리는 모두 언젠가 장애인이 된다. ‘온전하지 못한 존재’로서 인정받는 관점들은 점점 다양해지지만, 그럼에도 질병과 장애는 여전히 그 범주에 끼기 어렵다. 다른 소수자 정체성과 달리, 장애는 유독 ‘돌아가야 할 상태가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자본주의가 만든 웰니스의 개념 아래,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바탕으로 생산성에 복역하지 않는 존재는 쉽게 도태된 삶으로 분류되고, 치워진다. 장애를 가진다는건 이 모든 분류에서 벗어난 관점으로 삶을 새로 정의하는 것 부터 시작해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들려줄까'에서 미술작가이자 장애 운동가인 저자는 피와 고름으로 끝없이 뻗는 자기혐오와 지난한 가난과 질병에 관한 사유를 매 페이지에 한 장 한 장 묻힌다. 그 자국은 치워지는 불결함에 대한 반항인 동시에 우리의 몸을 자본화하는 식민주의에 대한 르포이다.(이수련 / 비평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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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련 

■ 이야기꾼과 놀이꾼(김상환 외 지음, 이학사, 2023)

이야기꾼과 놀이꾼(김상환 외 지음, 이학사, 2023)

'이야기꾼과 놀이꾼'이 말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이야기(서사)의 뿌리가 곧 놀이라는 것. 디지털 게임을 비롯한 현대의 문화는 그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다. 기획자와 개발자가 설계한 세계를 넘어, 플레이어가 만들어 내는 우발적 사건과 작은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자아와 공동체를 발견하고 있지 않은가. 나아가 빠름과 경쟁에 지친 일상을 위로하기라도 하듯 가상 세계는 오히려 쉼과 관조의 공간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결국 이 책은 학술적 논의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질문은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울린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어떻게 놀아왔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 호모 나란스(Homo narrans)로서 삶을 ‘이야기하는 방식’을 다시 묻고, 호모 루덴스(Homo Ludens)로서 ‘노는 법’에 대해 성찰해 보자. (김미향/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김미향<br>
김미향 

 

김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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