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성영화 필름 '미몽'(1936)
▶[내 가슴에 남아있는 한국고전영화와 그 배우들(1)] 전설로 남은 한국 고전 명작에 이어서
인터뷰365 백학기 칼럼니스트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고전영화로 알려진 '미몽'은 1936년 작품인데, 경성촬영소 도제 출신(편집기사)의 양주남 감독이 메가폰을 쥔 영화다.
시대에 맞게 1930년대 중반 서울 풍경을 볼 수 있는 데다, 한국 최초 서양 무용가인 조택원이 출연해 그의 춤사위도 감상할 수 있는 재미도 있다. 러닝타임은 48분.
애순(문예봉 분)은 여염집의 부인으로 허영이 심하다. 가정도 돌보지 않는다. 참다못한 남편(이금룡 분)은 애순을 내쫓는다. 애순은 남편과 딸 정희(유선옥)를 버려둔 채 가출해 정부(情夫, 김인규 분)와 함께 호텔에서 지낸다. 당시 사회상으로 볼 때 대단히 파격적인 행보다. ‘어떤 방탕녀의 이면을 묘파한 행장기요, 상괘를 벗어난 인생의 고백록’이라는 당시 영화 광고문이 이를 뒷받침한다. '미몽'의 영문 제목은 Sweet Dream. 죽음의 자장가라는 부제가 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애순은 정부가 돈 많은 유지가 아니라, 가난한 하숙생인데다 심지어 범죄자임을 알게 된다. 그녀는 강도를 계획하는 정부를 경찰에 신고한 뒤, 화려한 무용수를 쫓아 다시 떠난다.
“당신 대체 어딜 가는 게요?”
“데파트(백화점)에 가요.”
“뭔 옷을 또 산다는 게요?”
이처럼 오늘날의 평범한 부부의 가시 돋친 말싸움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은 대화가 등장한다. 뿐인가. “나는 새장 속의 새가 아니에요”라고 날카롭게 내뱉는 애순 역의 문예봉.
배우로서 그녀의 얼굴은 섬세하다. 날카로운 얼굴선이 특징이다. 영화 '미몽'에서 카메라를 앙각으로 문예봉의 얼굴을 클로즈업 할 때 드러나는, 그녀의 표정과 눈빛은 당대의 최고 여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카리스마를 보인다.
집을 나가라는 남편에게도, 떼를 쓰는 어린 딸에게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싼 옷 쇼핑에 여념이 없는 이 여자, 애순. 20년 뒤에 등장했던 '자유부인'(1956)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자유분방함을 영화는 표방한다. 이는 그녀가 사랑했던 정부가 실은 가난한 범죄자임을 알게 되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경찰에 신고해버리는 결단력을 보이는 캐릭터다.
그리고 언제 정부와의 그런 사연이 있었냐는 듯 또 다른 사랑을 쫓는다. 그녀 앞에 나타난 현대 무용가(조택원 분)를 향해 열렬히 애순은 구애 작전을 펼친다. 자신의 욕망이 사랑하던 딸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만들게 되자 후회 어린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이처럼 파격적인 애순의 캐릭터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것은 할리우드 고전영화의 제작방식을 의식하지 않은 영화의 스타일이다. 대부분 장면에서 180도 법칙은 지켜지지 않고, 비슷한 앵글과 사이즈의 숏이 반복된다는 점. 사운드의 유사성을 염두에 두어 시퀀스를 연결시키거나, 교차편집을 통해 인물의 상황을 극대화하는 등 편집기사 출신 감독(양주남)의 세심한 손길이 화면 곳곳에서 느껴진다.
“나는 조롱 속에 든 새가 아니니까요”라는 애순의 대사가 이어지는 동안 실제 새장을 보여주는 장면에선 몽타주 이론의 흔적도 엿보인다.
1917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했다고 알려진 배우 문예봉의 본명은 문정원. 고향은 함흥이되 출생지는 경성부라는 설도 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배우였던 아버지 문수일을 따라 유랑극단에 흘러 들어가 연기를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13세 때 아역 배우를 시작으로 무성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1932)에서 주인공 뱃사공의 딸 역을 맡아 나운규와 공연한 것이 계기가 돼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청초한 이미지로 '화형(花形)', '백합꽃'이라는 별명을 얻어 193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자리은 문예봉이 '임자 없는 나룻배' 이후 두 번째로 출연한 영화는 '춘향전'. 조선에서 최초로 제작된 발성영화다.
춘향 역으로 인기를 얻은 문예봉은 경성촬영소에 입사하여 경성촬영소가 제작하는 영화에 잇달아 출연했다.
당시 쌍벽인 인기 배우 김연실의 연기와 비교하면, 김연실은 능숙한 연기인 반면 문예봉은 관습화되지 않은 신선한 연기로 표현되고 있다. 1933년 극작가 임선규와 혼인했으나 태평양 전쟁 시기에 임선규가 친일 활동을 하면서, 문예봉도 전쟁을 미화하거나 지원병으로 참전할 것을 선동하는 어용 영화에 대거 출연하다가 1948년 월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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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기 칼럼니스트
시인 겸 영화감독. 전북 고창 출생으로 <삼류극장에서 2046>등 여러 권의 시집을 냈으며, 영화 <공중의자><이화중선><선미촌>등을 감독했다. 현재 서울디지털대학(SDU) 교수로 재직 중으로, 섬진강영화제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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