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톱스타였던 신영균 원로배우와 영화 프로듀서 원조 황기성 회장
인터뷰365 김두호 기자 = 영화 ‘연산군’, ‘빨간마후라’, ‘미워도 다시 한번’ 등에 출연한 살아있는 1960년대 전설의 톱스타 신영균(1928∼ ) 원로배우와 한국영화 프로듀서의 원조 ‘황기성사단’ 영화사의 황기성(1940∼ ) 회장이 지난 5월 서울 명동 복판 호텔28에서 모처럼 식사 자리를 함께했다. 호텔28은 신영균 배우가 명예회장인 한주홀딩스코리아의 계열 호텔이다.
두 사람은 한국영화 중흥기를 이끌었던 신상옥(1926 ∼2006)감독의 영화사 신필름에서 전속 배우와 기획실장으로 활동한 점에서 특별한 인연 관계가 있다.
신영균 원로배우는 중년기 이후 영화 및 예술인총연합회 회장, SBS프로덕션과 JIBS 회장, 두 차례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한 뒤 구순의 사업가로 현재도 기업 명예회장실에 출근하면서 자신이 설립한 신영균예술문화재단 명예 이사장도 맡고 있다. 신영균 회장보다 12살 후배지만 팔순을 넘어선 황기성 회장도 ‘황기성 사단’ 간판을 내리지 않고 몇 해 전 제작한 ‘후궁’을 흥행 안정권에 올려놓는 등 현역 영화제작자로 건재하다.
남북을 오가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오직 영화에 바치고 타계한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서 함께 한국영화 황금기의 문을 연 신영균 배우의 명성은 화려하게 이어져 왔지만, 신상옥 감독이 총애하던 기획 스태프 황기성 회장은 평생 영화기획 및 제작자로 활동해 왔으나 영화사 ‘황기성 사단 ’은 유명해도 영화계 밖에서 ‘주인 황기성’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영화는 감독이 주인이 되고 배우가 주인공인 태생적인 상업문화의 홍보적 속성을 가진 탓이다. 그는 배창호 감독과 안성기 배우의 전성기를 연 ‘고래사냥’, 박철수 감독의 ‘접시꽃 당신’, 강우석 감독이 이름을 내밀기 시작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등 제작 작품만 35편에 이른다. 임권택 감독의 작가적 역량이 주목받게 된 ‘만다라’를 비롯해 김호선 감독의 ‘영자의 전성시대’ 등 기획,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까지 망라하면 100편을 넘어서는 한국영화 산업의 큰 얼굴이다.
두 원로는 ‘신필름 사람’이라는 깊은 인연 관계였지만 1970년대를 지나 일과 활동 영역, 삶의 시공을 달리하면서 시간을 두고 여유 있게 만날 기회가 없었다.
신록이 짙어가는 2023년 5월 초여름 문턱에서 백수(白壽)를 눈앞에 둔 신영균 명예회장이 황기성 회장을 초청했다. 두 사람은 호텔28 딘타이펑 음식점에서 오찬을 함께하고 호텔 내에 있는 신영균 명예회장의 각종 영화제 수상 트로피 기념 전시관으로 이동했다. 조명등 아래 번쩍번쩍 빛나는 수많은 트로피를 둘러보고 난 뒤, 차 한 잔씩을 앞에 두고 비로소 60여 년 지난 세월을 거슬러 오르는 추억의 정담을 시작했다.
후배인 황기성 회장이 먼저 화두를 열었다.
“저는 1962년 원로배우 강계식 선생이 신상옥 감독에게 추천해 신필름에 들어가 영화판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그때가 ‘연산군’(1962년 1월 개봉)이후 신필름 간판 배우가 되신 신 회장께서는 최은희 여사와 영화 ‘쌀’(1963년 개봉)에 출연 중이었습니다.”
신영균 원로는 신상옥 감독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너무 일찍 떠났어요. 간이식을 권하는 의사 말을 듣고 바로 수술을 한 것이 불행으로 발전했었지요.”라고 고인의 죽음을 애석해했다. 이어서 지금 잠들어 있는 묘소 관리를 궁금하게 생각해 동석한 기자가 곧 유가족인 아들 신정균 감독과 전화를 연결했다. 아들은 5월 6일 어버이날 어머니(2018년 타계한 고 최은희 배우)와 함께 잠들어 있는 안성 천주교 묘원을 다녀왔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결국 남북을 오가며 파란만장한 삶을 보낸 신상옥 감독이 영화밖에 모르며 오직 인생의 전부를 영화에 바치고, 최은희 여사와 영화처럼 살았던 고인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에 북받쳐 잠깐씩 침묵에 빠지기도 했다.
- 황기성(이하 황) = “살면서 신필름 시절 일들이 자주 떠오릅니다. 가까이서 보고 겪은 일화 중에는 남들이 실감 못 하는 신 감독님의 영화 집념이 빚어낸 비화가 너무 많습니다.”
- 신영균(이하 신) = “나는 1960년 영화 ‘과부’로 시작했지만 신 감독의 ‘연산군’이 크게 성공하지 않았으면 아마도 좋아하는 연극배우로나 가끔 활동하며 치과의사로 살았을 거요.”
- 황 = “잊을 수 없는 사건 중에 ‘로맨스 빠빠’를 찍을 때 생긴 일이 떠오릅니다. 촬영장 안의 가구 소품들이 변변치 않은 것을 본 신 감독께서 당장 자신의 집에 있는 비싼 자개농을 몽땅 가져오게 해서 결국 폐품을 만들었던 일입니다. 귀가한 최 여사가 알게 되어 난리를 피워 도망 다니시던 해프닝이 눈에 선합니다.
신필름 입사 초기 하숙 생활을 하던 저를 자신의 집에 들어오라고 해서 함께 살게 되었는데 심야든 새벽이든 시도 때도 없이 제 방으로 들어와 흔들어 깨웠습니다. 구상 중인 기획안이나 작품이 있을 때 맨 먼저 저에게 이것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부정적으로 답한 경우가 많았는데 그럼 자신이 깊이 골몰하던 작품 기획안을 젊은 놈이 쉽게 퇴짜를 놓는다고 “개xx” 등 마구 욕을 하곤 하셨습니다. 하하하.
또 김지미 배우가 등장해 관객들의 시선을 모았으나 최은희 여사로 인해 신필름 영화에 캐스팅하기 어려웠을 때 제 아이디어로 김지미를 캐스팅한 일이 있습니다. 신 감독님의 무릎을 치게 한 묘안은 최은희 여사를 ‘민며느리’라는 작품의 감독으로 데뷔시켜 관심을 돌려놓은 일이었습니다.”
이윽고 신영균 원로는 후배 황기성 회장에게 제작 스태프와 배우, 그리고 최경옥 이형표 감독 등 100명이 넘었던 신필름 사람들의 근황을 알고 싶어 했다. 황기성 회장이 전해준 분 중에는 타계한 분이 많았다.
그렇게 60여 년 전 ‘신필름 시대’를 함께 한두 ‘신필름 사람’은 지나간 긴 세월이 엊그제의 시간처럼 느껴가며 잠시 무거운 현실을 잊은 감회의 정담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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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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