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관계와 단절, 정체성을 향한 질문...연극 '카사노바'
[주하영 365칼럼] 관계와 단절, 정체성을 향한 질문...연극 '카사노바'
  • 주하영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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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 2022 국립정동극장_세실 ‘창작ing’ 첫 번째 작품
- 스코틀랜드 극작가 데이비드 그레이그의 서스펙트 컬쳐 극단 작품
연극 '카사노바' 공연사진. 임지민 연출은 극장의 공간을 해체함으로써 극 중 두 세계의 층위를 관객들이 같은 구조물 사이에서 공감각적으로 교차하며 경험할 수 있도록 시도한다. 객석 곳곳은 여러 장소로 기능하며 인물들이 관계를 맺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연극 '카사노바' 공연사진. 임지민 연출은 극장의 공간을 해체함으로써 극 중 두 세계의 층위를 관객들이 같은 구조물 사이에서 공감각적으로 교차하며 경험할 수 있도록 시도한다. 객석 곳곳은 여러 장소로 기능하며 인물들이 관계를 맺는 공간으로 활용된다./사진=국립정동극장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바람둥이라 할 수 있는 카사노바. 2010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독일의 소장가로부터 700만 유로(한화 110억원)를 주고 매입한 이탈리아 출생의 자코모 카사노바의 자서전 육필 원본을 인터넷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카사노바 사후 20여년이 지난 1821년에 비로소 출간된 자서전은 처음부터 편집이 많이 된 상태였다고 한다.

도발적이고 충격적인 그의 자서전은 1960년이 되어서야 검열되지 않은 버전으로 출간될 수 있었고, 영어버전이 출간된 것은 그로부터 6년이 지난 뒤였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근대 유럽 지식인의 언어였던 프랑스어로 쓰여진 그의 자서전이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유럽을 상세히 기록한 역사서일 뿐 아니라 프랑스 문학과 프랑스 정신을 담고 있는 유산이라는 점을 높게 인정해 국보급 문화재로서 소장 가치가 있음을 드러냈다.

2012년 '스미소니언 매거진'에 기고한 토니 페로테의 글에 따르면, 카사노바 자서전의 높은 매입가격은 카사노바를 유럽에서 가장 방탕한 인물에서 “가장 오해받은 인물 중 하나”로 재평가할 기회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연극 '카사노바' 공연사진. /사진=국립정동극장
2022년 7월 새롭게 개관한 국립정동극장_세실의 외관 모습./사진=국립정동극장

카사노바에 대한 학술연구를 지속적으로 이어 온 톰 비텔리는 경솔하고 문란한 쾌락 추구자이자 사기 도박꾼이라는 부정적 시각에 갇혀 있던 카사노바가 사실은 박식한 계몽주의자이자 모험가, 스파이, 바이올리니스트, 40여권의 책을 쓴 작가였음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카사노바는 볼테르, 루소, 벤자민 프랭클린, 모차르트 등 여러 사상가와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영향을 미쳤고,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번역했을 뿐 아니라 공상과학소설을 썼고, 페미니스트적 관점이 드러난 책자와 수학논문을 저술했다.

비텔리는 120명이 넘는 연인과의 정사에 관한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카사노바의 자서전은 현재에도 여전히 충격적이고 당혹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그와 관련된 내용은 전체 이야기의 3분의 1에 해당할 뿐 “인간 본성의 창문”으로서 연애의 삶을 보여주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결속이나 구속을 견디지 못하며, 결혼한 적도 없고, 집을 가지지 않았으며, 이탈리아 태생이지만 프랑스어로 글을 쓰고, 전 유럽을 횡단하며 온갖 직업과 고난, 탈출, 여인들과의 관계를 거쳐 독일어를 사용하는 보헤미아 지방 둑스 성의 사서로 일하다 자살 충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 사람! 카사노바는 말한다.

“내 회고록은 고백의 형식이지만 후회하는 죄인의 것도 아니고, 방탕함을 인정하는 부끄러운 자의 것도 아니다. 단지 젊음에 내재된 어리석음을 말할 뿐이다. ... 가치가 있든 없든, 나의 삶은 나의 주제이고, 나의 주제는 나의 삶이다.”

그는 모든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지만 자유에 대한 믿음을 잃는 순간 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시스템 속에 갇히거나 안주하기보다 삶의 흐름에 개의치 않고 어디론가 미끄러져간 그가 깨달은 것은 성공과 불운, 밝음과 어둠, 선과 악, 쾌락과 고통은 항상 동전의 양면과 같이 공존하고, 세상은 안정과 변화 사이에서 균형을 발견할 필요가 있으며, 신이 인간에게 준 것은 다름 아닌 행복을 찾으려는 경향이라는 점이었다.

연극 '카사노바' 공연사진. /사진=국립정동극장
2022 국립정동극장_세실 창작ing 프로그램의 첫 번째 작품으로 선정된 연극 '카사노바' 포스터 컷./사진=국립정동극장

최근 국립정동극장_세실에서는 ‘2022년 창작ing 프로그램’의 첫 번째 작품으로 스코틀랜드 극작가 데이비드 그레이그의 2001년 연극 '카사노바'를 선보였다.

‘창작ing’는 차세대 아티스트를 발굴해 실험과 도전정신이 엿보이는 창작 작품들을 선보이는 것으로, 창작진에게는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관객들의 의견을 수렴해 예술가와 창작과정을 함께 만들어가는 소극장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연극 '카사노바'는 극작가 그레이그가 1990년대와 2000년대 스코틀랜드 연극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낸 것으로 평가받는 실험적인 극단 ‘서스펙트 컬쳐’의 일원으로서 창작했던 작품이다.

극은 카사노바의 자서전에서 영감을 얻어 동시대를 살고 있는 스코틀랜드인 카사노바를 설정함으로써 세계화와 정체성, 비-장소, 가치의 붕괴 등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그레이그는 1969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났지만 10살 때까지 나이지리아에서 거주했고, 1987년부터 영국 남서부의 브리스톨 대학에서 영문학과 드라마를 전공한 뒤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로 되돌아와 연출가인 그레이엄 이토와 함께 ‘서스펙트 컬쳐’를 창단했다.

극단 서스펙트 컬쳐는 기존의 전통과 인습적 문화를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을 목적으로 한 단체다. 1980년대까지 스코틀랜드에서 주류를 이루던 민족주의적 연극의 흐름에서 벗어나 세계주의적 관점을 드러내고 “주체 및 경계의 해체”를 강조하는 포스트모던적 연극 방식을 추구했다.

연극 '카사노바' 공연사진. /사진=국립정동극장
연극 '카사노바' 공연사진. 평생 카사노바를 후원했을 뿐 아니라 그의 첫 여인이기도 했던 '미세스 테넌트(이영숙, 왼쪽)'는 전시회가 시작되기 전까지 카사노바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그를 고국으로 데려올 수 있도록 확고한 신념을 가진 '마리 루이스(허진)'를 비서로 채용한다. /사진=국립정동극장

그레이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2008년까지 서스펙트 컬쳐의 극본을 대부분 집필했는데, 강렬한 탐구정신과 콜라보로 이루어진 당시의 작업들은 20대의 젊은이들이 세상 속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쏟아낸 모든 자의식, 오만, 인식, 자기혐오, 슬픔, 어리석음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2013년에 출간된 20년의 서스펙트 컬쳐의 업적과 공헌을 기록한 책에서 각각의 작품들은 “우리가 모두 같은 사람인가?, 우리는 무엇이 될 것인가?,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와 같은 내면의 질문들이 연극적 언어와 형식을 통해 터져 나온 것임을 설명한다.

그는 서스펙트 컬쳐의 작품들은 관객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 “도발하고, 방해하며, 소란스럽게 소통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피력한다. 그는 덧붙인다. “우리는 관객들이 우리를 통해 그들 자신을 발견하기를 바랐다. 나는 우리가 연결을 원했다고 생각한다. 오직 연결되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관계, 정체성, 순간과 지속, 쾌락과 안주, 자유와 소외에 대한 질문은 연극 '카사노바' 속에 매우 파편적이고 이중적이며, 슬프면서도 우습고, 불명확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연극 '카사노바' 공연사진. /사진=국립정동극장
연극 '카사노바' 공연사진. 미세스 테넌트의 비서인 '마리 루이스(허진)'는 순간의 쾌락만을 추구하고 거짓된 사랑을 말하는 '카사노바(지현준)'의 삶의 방식이 역겹다고 말하지만 그는 자신은 매 순간 '진심'이며 '이상적인 완벽한 존재'인 운명의 상대를 찾고 있을 뿐이라고 답한다/사진=국립정동극장

카사노바는 전 세계를 가로지르며 부유한 후원자 미세스 테넌트를 위해 예술품을 수집하는 큐레이터이다. 그는 18세기의 카사노바처럼 수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맺으며 끝없이 다른 여자들을 찾아 헤매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었다.

카사노바의 평생의 후원자이자 첫 여인이기도 한 미세스 테넌트는 카사노바에게 그와 함께 한 1000명의 여자들을 기념하는 물건을 전시하는 회고전을 제안한다. 영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을 전시회의 마지막 쇼케이스를 채우기 위해 카사노바는 자신의 종착지가 되어 줄 “마지막 운명의 여자”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매번 새로운 다른 여자를 발견함에 따라 지체되고, 전시회를 채울 쇼케이스의 숫자는 늘어간다. 한편, 전시회의 쇼케이스 제작자인 캐비넷 메이커는 카사노바로 인해 아내를 잃은 데 대한 복수를 계획하고 있다. 그는 아내와 닮은 사설탐정 케이트를 고용해 카사노바가 마지막 쇼케이스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 생각이다.

연극 '카사노바' 공연사진. /사진=국립정동극장
연극 '카사노바' 공연사진. 카사노바로 인해 아내가 자신을 떠났다고 생각하는 '캐비넷 메이커(정승길)'는 아내를 닮은 사설탐정 '케이트(이지혜)'를 고용해 그의 회고전에서 복수할 계획을 세운다./사진=국립정동극장

흥미로운 점은 작품의 첫 부분부터 이미 슬픔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마지막 운명의 여자를 찾으려는 카사노바의 여정이 결국 삶의 끝에 이르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는 사실이다. 고국을 떠나 늘 타지에서 ‘비-장소’라 불릴 수 있는 호텔룸, 공항, 클럽, 바와 같이 정체성이 느슨해질 수 있는 곳을 떠도는 카사노바는 그 자체로 인간의 실존적 삶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순간의 쾌락을 끝없이 추구하면서 자신의 방황을 끝내줄 누군가, 완벽한 만족과 합일을 가져다 줄 상대를 찾는 카사노바는 평생 자신이 누구인가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규정하려하고 결국 죽음이라는 마지막 종착지에서 하나의 이미지이자 전시로 남게 되는 인간 존재와 닮아있다.

서스펙트 컬쳐의 연구자인 클레어 월레스는 문화인류학자인 마르크 오제의 ‘비-장소’ 개념을 언급하면서 “비-장소의 공간은 어떤 정체성도, 관계도 창조하지 않는다. 오직, 고독과 유사성을 창조할 뿐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는데, 서스펙트 컬쳐의 공연들이 반복적으로 표현하는 점이기 때문이다.

연극 '카사노바' 공연사진. /사진=국립정동극장
연극 '카사노바' 공연사진. 극은 처음부터 죽음과 상실, 슬픔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카사노바(지현준)'는 예술작품의 엔딩이 될 마지막 사랑을 찾기 위해 여자들과의 관계를 탐하지만 그와의 관계를 계기로 남편을 떠나기로 결심한 여자는 카사노바의 미래에 '죽음'이 도래하고 있음을 그의 가슴에 립스틱으로 십자가를 그려넣어 암시한다./사진=국립정동극장

연극 '카사노바'는 콜라주와 같이 파편적으로 제시되는 장면들과 연극임을 드러내는 각종 장치들, 미니멀한 무대를 통해 불안과 의심, 양가적 상태와 감정, 경계의 해체와 초월을 목표로 한다.

‘비-장소’는 끊임없이 연결을 시도하지만 지속성을 가지기 어렵고, 수많은 접속이 존재하지만 그만큼 단절이 쉽고, 그로 인해 고립을 낳는 현재의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과 연계될 수 있는 개념이다.

서로 스쳐지나가는 것에 불과할 뿐 타인과 관계를 맺기 힘든 공간, 집과 같은 편안함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졌지만 낯섦이 지배하는 공간, 사회가 규정한 자아에서 벗어나 또 다른 내가 되어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공간, 유동성과 이동성이 정체성과 유대감을 흐리게 만들지만 그로 인해 새로운 ‘문’이 될 수 있는 공간...

고국으로 돌아온 카사노바는 자신의 삶의 마지막 운명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인식하고 함께 할 것을 제안하지만 미세스 테넌트는 현재에 안주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한다. 정체된 틀 안에서 쾌락이 아니라 신경안정제와 폭력, 자극적인 타락과 소비에 노출된 카사노바는 점점 더 술에 취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지속적인 거부와 몰이해, 자기혐오로 인해 방황하던 카사노바는 결국 소비문화가 형성되는 공간이자 사회의 취향과 문화를 이끌어가는 ‘갤러리’라는 전시 공간에 갇혀 “기록적인 관객을 모은 이벤트”이자 “모든 여자들이 알아야 할 기념비”가 되어버린다.

연극 '카사노바' 공연사진. /사진=국립정동극장
연극 '카사노바' 공연사진. 오랜 방황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 '카사노바(지현준)'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찾고 있던 운명의 상대가 '미세스 테넌트(이영숙)'임을 인식하지만 미세스 테넌트는 함께 할 것을 바라는 카사노바의 요청을 거절한다./사진=국립정동극장

서스펙트 컬쳐의 연출을 맡아 온 이토는 현대인의 삶을 구성하는 외면과 내면의 갈등과 대립, 현대인들이 성취하기를 원하는 것과 실제 성취가 가능한 것, 반면에 주변 혹은 환경의 억압으로 인해 성취가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탐구가 자신들의 작업의 핵심이었음을 설명한다.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추구하지만 닿을 수 없는 현실, 인간적인 접촉의 실패와 상실은 함께 있어달라는 카사노바의 요청을 매번 거절하며 다른 곳으로 떠나가는 여자들의 모습 속에 드러난다. 또, 진정한 관계의 지속을 기대하지만 새로운 여자에게 운명을 느껴 뒤를 쫓는 카사노바를 막을 수 없는 비서 마리 루이스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한편, 자신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카사노바를 향한 복수를 꿈꾸는 캐비넷 메이커 역시 안정되고 정착된 사랑을 말하는 듯 하지만 이상화된 존재의 틀 속에 아내의 이미지를 가두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아내는 카사노바를 만나기 전부터 남편을 견디기 힘들어했고, 우울증을 겪고 있었으며, 심리 상담을 받았다.

캐비넷 메이커는 전시품을 가둘 쇼케이스를 만들 듯 아내를 자신의 왜곡된 기억 속에 가두고 있었을 뿐이다. 카사노바는 자신이 사랑을 파괴한 것이 아니라 단지 여자들이 문을 열고 날아갈 수 있도록 ‘열쇠’가 되어준 것이라고 주장한다.

연극 '카사노바' 공연사진. /사진=국립정동극장
연극 '카사노바' 공연사진. '캐비넷 메이커(정승길)'는 안정된 사랑, 책임질 수 있는 지속적인 사랑에 대해 말하지만 이상화된 존재의 틀 속에 아내의 이미지를 가두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케이트(이지혜)'는 아내의 대역으로 복수를 완성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의 아내에 대한 질문을 계속한다./사진=국립정동극장

연극 '카사노바'는 카사노바와 캐비넷 메이커, 미세스 테넌트와 마리 루이스 역을 맡은 배우들이 각자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는 반면 케이트를 맡은 배우는 캐비넷 메이커의 아내를 비롯해 카사노바가 만난 6명의 여인들을 혼자 연기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 유럽의 여러 공항과 클럽, 호텔룸과 사우나, 화장실, 갤러리, 흡연실 등 여러 공간들이 특별한 세트나 소품의 도움 없이 대사로만 관객들의 상상력을 통해 구현되는 실험적인 극이다.

2021년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로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수상한 임지민 연출은 연극 '카사노바'의 공간을 “변치와 환치라는 대주제 아래 텍스트의 확장”을 시도한 것으로 설명한다.

극장은 무대를 특정할 수 없이 객석 곳곳이 여러 장소로 기능하며 인물들이 관계를 맺는 공간이 되기 때문에 극장에 들어선 관객들은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한다. 무대의 공간 안에 놓인 회전의자 객석과 기존의 객석이 공존하는 가운데 배우들은 사방에서 등장과 퇴장을 하고, 1인 6역을 하는 배우는 순간적으로 가발을 쓰거나 옷을 갈아입고, 말투를 달리하는 방식으로 다른 인물로 변신한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유혹의 아이콘이자 순간의 영속성을 추구하는 카사노바는 천장에 매달린 줄을 타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연극 '카사노바' 공연사진. /사진=국립정동극장
연극 '카사노바' 공연사진. 흥미로운 점은 카사노바, 캐비넷 메이커, 미세스 테넌트, 마리 루이스를 맡은 배우들은 각자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는 반면, 캐비넷 메이커가 고용한 사설탐정 케이트를 맡은 '배우(이지혜)'는 카사노바가 만나는 6인의 다른 여인들을 혼자 연기한다는 점이다. /사진=국립정동극장

임지민 연출은 프로그램북을 통해 관객들이 이상과 현실, 순간에 전념하는 세상과 현상유지를 지속하는 세상으로 대비되는 극 중 두 세계의 층위를 공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연출에 중점을 두었음을 언급했다. 또, 관객들이 극장공간이 전시공간으로 치환되는 과정을 바라보며 극 중 “장면의 병치와 환치를 즐길 수 있음”을 강조했다.

실제로 연극 '카사노바'의 하이라이트는 극장 곳곳에 쇼케이스처럼 나뉘어져있던 공간들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카사노바가 전시장의 마지막 남겨진 쇼케이스 공간으로 걸어 들어가 스스로 ‘전시물’이 되는 순간 모두가 바라보는 가운데 삶의 회고전을 완성하게 되는 장면이다.

관객들은 쇼케이스 안에 갇힌 카사노바를 보게 됨과 동시에 미세스 테넌트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이 그에 대한 평가를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하지만 관객들이 듣게 되는 이야기는 이전까지 극이 진행되면서 듣고 보았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다.

순간적인 쾌락의 치욕적인 결과를 경고로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며 욕망은 삶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인물들은 “사랑의 부식성”을 인정하고 현상유지를 위한 지속성의 길을 가야할 필요를 언급한다. 하지만 케이트와 시골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캐비넷 메이커의 마지막 장면은 또 한 번의 전복을 시도한다.

연극 '카사노바' 공연사진. /사진=국립정동극장
연극 '카사노바' 공연사진. 캐비넷 메이커(정승길)'와 아내를 닮은 '케이트'는 점차 서로에게 빠져들고, 관계의 선을 넘지만 그가 과거 속 아내를 되찾고 싶어하는 것인지 케이트와 새로운 만남을 이어가고 싶은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사진=국립정동극장

전시된 인형처럼 고정된 자세로 말 한마디 없이 앉아있는 케이트 옆에서 캐비넷 메이커는 소음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는다. 물건들이 너무 가까이 있으면 마찰이 일어나 소리를 발생시킨다고 말하는 그는 몇 미터 떨어져 있는 경우에도 존재와 존재 사이의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리’가 있다고 언급한다.

끊임없이 소리가 거슬린다면서 무언가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아내에게 어떤 맞춤과 틀을 강요했을 것인지, 그가 인내하고 책임지며 지속하고자 했던 관계가 아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을 암시하게 된다. 관객들의 머릿속은 또 한 번 혼란과 질문 속에 빠져들며, 움직임과 이동이 멈춰버린 ‘공허’의 암흑을 바라보게 된다.

그레이그는 “답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는 연극, 현상 유지에 저항하는 극장, 변형과 변화의 문을 열어주는 작품”이 현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치적 극장’이라고 말한다. “인간 존재의 재정비를 위한 도구”로서의 연극이라는 예술을 강조하는 그레이그가 관객들에게 바라는 것은 기존의 관습과 문화, 도덕과 규범, 가치와 규율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반대 의견에 노출되어 스스로 갈등을 겪기 시작하는 일이다.

연극 '카사노바'가 묻는 것은 관계와 자아, 지속과 단절, 소외와 자유에 대한 질문들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우리가 관계 맺음의 균형을 발견할 가능성이 있는지, 변화와 정체 사이에서 안정과 발전을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극작가 그레이그는 관객들이 그와 함께 보다 현명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주하영 칼럼니스트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상지대 겸임교수, 대림대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공학대학교 지식융합학부(교양교육센터)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집위원 및 이사, 세계문화예술경영연구소 초빙연구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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