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소중함을 선물하는 달콤한 동화...발레 '헨젤과 그레텔'
가족의 소중함을 선물하는 달콤한 동화...발레 '헨젤과 그레텔'
  • 주하영
  • 승인 2018.06.0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 '헨젤과 그레텔 Hansel & Gretel' 
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의 '헨젤과 그레텔' 장면. 초승달의 여인이 아이들을 깨우기 위해 불러낸 '이슬의 요정'의 모습/사진제공=LG아트센터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지붕에서부터 굴뚝, 창문과 문고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과자로 만들어진 집, 달콤한 사탕 손잡이가 달려있고 벽에는 사람 모양의 진저브레드 쿠키가 붙어있으며,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마저 솜사탕이 아닐까 싶어 손을 뻗어 그 맛을 보고 싶어지는 집, 하나씩 모두 먹어보고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예뻐서 손을 댈 수 없는 집...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 쯤 동경했을 법한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로 만든 집’, 그러한 집이 현실에도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근 LG아트센터에서는 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의 ‘다채로움으로 빛나는‘ 애니메이션 만화와 같은 발레 ‘헨젤과 그레텔‘이 소개되었다.

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의 내한 공연은 1992년 영국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비의 방한 이후 26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1957년에 설립되어 60년 동안 지속되어 온 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은 2012년 새로운 예술감독 크리스토퍼 햄슨을 맞이하면서 2013년 ‘헨젤과 그레텔‘을 선보였고, 환상적인 세트와 화려한 의상, 잘 조합된 스토리와 아이디어, 그리고 새로운 해석의 인물구현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으며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의 '헨젤과 그레텔' 장면. 등 굽은 늙은 여인으로 변한 '마녀'가 헨젤을 철창에 가두고, 그레텔에게 집안 일을 시키며 즐거워하는 장면/사진제공=LG아트센터

발레를 사람들이 좀 더 가깝게 느끼고 발레가 지닌 열정과 창의성에 동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햄슨은 새롭게 선보이는 발레 ‘헨젤과 그레텔‘을 위해 스코틀랜드 전역을 돌며 아이들과 어른들을 아우르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하였고, 그 의견들을 작품에 반영했기 때문에 “‘헨젤과 그레텔‘은 스코틀랜드 사람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완성된 작품이자 말 그대로 그들에게 속해있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는 시즌 프로그램북을 통해 “우리는 무대 위에서 혁신을 추구한다... 새로운 작품들과 선도적 노력들은 창의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우리의 목표 중 하나이고,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헨젤과 그레텔‘에는 이러한 ‘창의력’과 ‘삶의 변화를 위한 노력’이 그대로 담겨있는 듯 보인다.

햄슨은 ‘헨젤과 그레텔‘의 제작과정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통해 “아주 오래된 이야기지만 어떤 세대든, 어떤 시대든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가 현대인에게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고, 교육과 관련된 것이길 원했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부모는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고된 생활과 삶에 지쳐 애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현대의 부모로, 아이들은 호기심과 모험심이 넘치지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과 유혹으로 인해 빠져나올 수 없는 위기에 처하는 현대의 아이들로 표현된다.

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의 '헨젤과 그레텔' 장면. 마녀가 변신한 '초승달의 여인'을 향해 다가서려는 헨젤과 그레텔/사진제공=LG아트센터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개리 해리스는 부모에 대해 “누가 봐도 일에 치여 살고, 아주 피곤한 상태에 있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 형편에 지쳐버린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아빠와 담배를 너무 많이 피는 엄마를 드러내려 했다”고 설명한다. 한국 공연의 경우, ‘담배를 너무 많이 피는 엄마’는 표현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812년에 출판된 그림 형제의 ‘헨젤과 그레텔‘은 사실상 ‘식인주의’와 ‘납치와 감금’, 그리고 ‘유기’와 같은 끔찍한 범죄들을 담고 있는 ‘잔혹 동화’였다.

그림 형제의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민담집‘ 서문에는 굶주림으로 인해 부모가 아이들을 버리거나 계모가 아이를 학대하는 일이 빈번했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피력하고 있는데, 이는 1315년부터 1321년까지 유럽대륙을 휩쓸고 지나간 ‘대기근’을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유럽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대기근’이 몰고 온 공포와 끔찍함, 광기와 혐오는 15세기로 이어지면서 ‘아이를 잡아먹는 매부리코의 늙고 추한 여인‘을 ‘악’의 이미지로 규정하고 ‘마녀사냥’이 시작되는 결과를 낳았다.

많은 학자들은 ‘헨젤과 그레텔‘에 등장하는 허리가 굽고, 눈이 잘 보이지 않으며, 늙고 추한 얼굴로 절룩거리는 마녀의 괴이한 모습이 그러한 시대적 배경에 기인한 것이라 말한다.

사실상 ‘헨젤과 그레텔‘의 해석에 있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부분은 ‘마녀와 계모 사이의 연계성’과 아이들을 과자의 집으로 이끄는 ‘새의 존재’에 관한 것이다.

학자들은 아이들이 기지를 발휘해 마녀를 처치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들을 괴롭히던 계모의 존재 역시 사라지고 없다는 점에서 ‘마녀의 존재’는 아이들을 학대하고 괴롭히는 부모 혹은 어른을 의미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헨젤과 그레텔이 길을 잃도록 만든 새들이 그들을 마녀의 집으로 인도하고, 또 숲을 벗어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새’는 ‘자유, 쾌락, 욕망, 인간 정신‘과 같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의 '헨젤과 그레텔' 장면. 새로 부임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달콤한 막대 사탕을 나눠준다./사진제공=LG아트센터

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의 ‘헨젤과 그레텔‘의 경우, ‘마녀’는 과도한 업무와 육아, 맞벌이, 개선되지 않는 경제형편과 같은 21세기 현대인의 삶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상징한다. 많은 가정이 품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무관심’과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의 부족’과 같은 문제들을 의미화 함으로써 아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부모로부터의 ‘따뜻한 관심과 애정’이라는 근본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막이 오르면, 마을 학교에 새로 부임한 예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달콤한 막대 사탕을 나눠준다. 아이들은 마법에 걸린 듯 영혼 없는 걸음으로 마을에서 사라져버리고, 유일하게 남은 헨젤과 그레텔은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지낸다.

호기심과 에너지가 넘치는 헨젤은 식탁 위에 남겨진 단 하나 남은 빵을 먹지 못하게 하는 그레텔을 피해 어떻게든 빵에 손을 대려 하지만 헨젤이 무척 아끼는 곰인형을 그레텔이 빼앗아 버리자 주춤한다.

헨젤이 곰인형에게 보이는 집착은 엄청나다. 한시도 곰인형을 손에서 떼어놓지 않으며, 심지어 마녀가 도끼로 곰인형의 목을 쳐서 떨어뜨린 후에도 몸만 남은 인형을 다시 손에 움켜잡는다. 헨젤의 인형에 대한 집착은 부모의 무관심으로 인한 ‘애정결핍’을 상징한다.

끝없는 맞벌이에도 나아지지 않는 생활형편에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인 엄마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아이들을 귀찮다는 듯 떼어놓으며, 그레텔에게 부츠를 벗기고 실내화를 신겨줄 것을 지시한다.

실망한 표정으로 엄마의 신발을 벗기는 그레텔의 모습은 과자의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가발과 옷을 벗어 던지고 흉측한 마녀의 모습으로 변하여 신발을 벗기라고 다리를 들어올리는 ‘마녀’의 장면에서 반복된다.

엄마는 아이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삶이 너무 버겁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냉장고는 텅 비어있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남편은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엄마의 ‘꿈’은 자신이 욕망하던 삶을 반영한다. 한껏 치장한 아름다운 숙녀의 모습으로 남편과 우아하게 왈츠를 추는 엄마의 손에는 긴 담뱃대가 들려있다. 긴 담뱃대는 과자의 집에서 아이들에게 일을 시켜놓고 화덕이 뜨거워지기를 기다리는 마녀의 손에도 들려있다.

 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의 '헨젤과 그레텔' 장면. 친구들을 찾아 숲으로 떠난 헨젤과 그레텔/사진제공=LG아트센터

지루하고 배가 고픈 아이들은 하루 종일 부모를 기다리지만 막상 집으로 돌아온 부모는 피곤한 표정으로 자신들에게 방으로 들어갈 것을 요구할 뿐이다. 때문에 헨젤과 그레텔은 부모가 잠든 틈을 타 숲 속으로 친구들을 찾아 나선다.

데이비드 루크는 “거의 모든 설화에 등장하는 ‘숲’은 단테가 영혼의 시련을 시작하는 어두운 숲과 같은 진지한 장소”라고 말한다.

‘숲’은 길을 잃고 헤매며 자신을 찾아가기 위한 시험장이자,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깊은 두려움의 표상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숲’으로 떠난 아이들은 길에서 ‘까마귀들’과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장한 ‘마녀’를 만난다.

검은 가죽점퍼를 입고 아름다운 여인을 에스코트하는 ‘까마귀들’은 마치 길거리의 불량 청년들과 같다. 엄마의 따스한 품을 그리워하는 헨젤은 아름다운 여인에게 안기려고 하지만 왠지 불안한 그레텔은 헨젤을 저지한다.

 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의 '헨젤과 그레텔' 장면. 숲 속에서 잠든 헨젤을 지키는 그레텔/사진제공=LG아트센터

‘까마귀들’은 두 남매를 떼어놓고 까마귀는 그레텔을, 여인은 헨젤을 유혹한다. 여인은 사탕을 건네고, 아이들은 기뻐하며 사탕을 손에 쥔다.

사탕, 달콤함, 음식은 모두 ‘숨겨진 욕망과 바램’을 의미한다. 마녀는 사람들이 내면에 품고 있는 욕망과 바램, 손 안에 넣고 싶지만 잡을 수 없는 꿈과 같은 소망을 이용한다. 이 때문에 ‘헨젤과 그레텔‘에는 사람들의 눈에 마법의 모래가루를 뿌려 ‘꿈’과 ‘잠’을 관장하는 모래의 요정, ‘샌드맨’이 등장한다.

모래의 요정은 햄슨의 표현대로 “깨어있지도, 잠들어 있지도 않은, 어딘가 굉장히 으스스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의 '헨젤과 그레텔' 장면. 아이들의 꿈 속의 화려한 연회장면, 성대한 무도회가 펼쳐지고 있다./사진제공=LG아트센터

샌드맨이 뿌린 금빛 모래로 인해 숲 속에서 잠이 들어버린 헨젤과 그레텔은 다양한 음식과 케이크, 춤과 음악이 있는 화려한 연회장에서 우아한 왈츠를 즐기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아이들이 사라진 것을 깨달은 부모는 아이들을 찾아 곳곳을 헤매지만, ‘까마귀들’과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장한 ‘마녀’는 부모에게 아이들을 보지 못했다는 거짓말을 한다. 절망한 부모들이 아이들을 찾아 헤매는 동안 잠에서 깨어 난 헨젤과 그레텔은 과자의 집을 발견한다.

아름다운 여인에서 등 굽은 늙은 여인으로 변한 ‘마녀’는 아이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인형으로 가득한 창고를 보여주며 아이들과 노는 것을 즐기기라도 하듯 숨바꼭질을 제안한다. 처음엔 경계를 늦추지 않던 그레텔마저 놀이에 푹 빠지자 마녀는 헨젤을 철창에 가두고 그레텔에게 화덕에 불을 지피도록 시킨다.

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의 '헨젤과 그레텔' 장면. '마녀'의 집에 갇히게 된 헨젤과 그레텔/사진제공=LG아트센터

살을 찌워 헨젤을 잡아먹으려는 마녀로부터 시간을 벌기 위해 그레텔은 동물의 뼈를 헨젤의 손가락으로 속인다. 잠든 척 마녀를 속인 그레텔에 의해 헨젤이 풀려나지만 또 다시 그레텔이 잡혀 철창에 갇히자 헨젤은 몸싸움 끝에 마녀를 화덕에 밀어 넣어버린다.

두 남매는 사라졌던 친구들과 재회하고 아이를 잃었던 모든 부모들이 아이들을 되찾는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따뜻하게 꼭 안아주는 엄마에게 안긴 두 남매는 이전보다 훨씬 성숙해져 있다. 헨젤은 더 이상 곰인형을 찾지 않으며, 어른들은 두 아이의 용기와 기지를 칭송한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 따르면, 거의 모든 설화들은 “오랫동안 잠재되어 있던 욕망의 상상적 만족을 추구하는 마법의 이야기”이다.

루크는 톨킨을 인용하며, 이러한 마법의 이야기가 여전히 우리의 삶에 정신적으로 작동하고, 여전히 커다란 위로와 안식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현재성’을 가진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의 말처럼, 정말로 설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일들은 현실적인 동시에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비현실 세계는 현실 세계를 반영하고, 현실은 그러한 비현실 세계를 통해 보다 올바르게 수정되고 개선될 수 있다.

 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의 '헨젤과 그레텔' 장면. 헨젤과 그레텔이 마법에서 풀려난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무용담을 들려주고 있다./사진제공=LG아트센터

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의 ‘헨젤과 그레텔‘은 아름답고 환상적인 비현실 세계를 통해 관객들에게 묻는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꿈’은 바로 ‘가족’이 아닐까?’라고.

우리의 삶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위험과 유혹에 넘어지지 않고 슬기롭게 헤쳐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가까이에 있는 부모, 자식, 형제, 자매가 아닐까?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자식이고 부모이며, 형제이고 자매이다. 우리에게 동화는 ‘교훈’이고 ‘경고’이며, 우리가 삶에서 진정으로 꿈꾸는 것은 다름 아닌 ‘따스함과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다.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 서울특별시 구로구 신도림로19길 124 801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737
  • 등록일 : 2009-01-08
  • 창간일 : 2007-02-20
  • 명칭 : (주)인터뷰365
  • 제호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명예발행인 : 안성기
  • 발행인·편집인 : 김두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희
  • 대표전화 : 02-6082-2221
  • 팩스 : 02-2637-2221
  • 인터뷰365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1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interview365.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