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리뷰] '82년생 김지영' 누구나 알고 있지만 외면했던 이야기
[365리뷰] '82년생 김지영' 누구나 알고 있지만 외면했던 이야기
  • 박상훈 기자
  • 승인 201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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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부 돌파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 원작
-'젠더 갈등' 아닌 '희망적인 바람' 담아
-2019년 대한민국에 전하는 위로
영화 '82년생 김지영' 포스터/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82년생 김지영' 포스터/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인터뷰365 박상훈 기자]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성 '지영'을 통해 이 시대의 딸, 여동생, 누나, 아내, 며느리, 엄마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대한민국 사회 구성원이라면 굳이 눈과 귀를 열어 놓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보고 들어온, 혹은 직접적인 경험으로 자연스레 익혔을 이야기다.

미혼일 땐 결혼은 언제 하냐고 묻고, 결혼하면 아이는 언제 가질 거냐고 너무나 가볍게 묻는 사회다. '지영'은 '김지영 씨'라고 불리던 회사에선 미혼 여성이라 업무 능력과 관계없이 차별받았고, 결혼 후엔 시댁 식구들과 남편 '대현'의 출산 압박에 시달린다. 달라질 환경에 걱정이 앞서는 '지영'과 달리 '대현'은 집안일과 육아를 돕겠다고 말하며 철없이 해맑기만 하다.

딸 '아영'을 낳고 직장인 '김지영 씨'가 아닌 '아영이 엄마'로 살아가는 '지영'의 하루는 집안일과 육아로 고단하다. 딸과 공원에 앉아 있을 땐 직장인들의 비난을 듣고 자리를 피해야 하고, 손목이 아파 치료하러 간 병원에서는 빨래는 세탁기, 청소는 청소기가 해주는 데 뭐가 힘드냐는 이야기를 듣는다. 묵묵히 '아영이 엄마'로 살아가는 '지영'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남편 '대현'뿐이다. 집안일을 돕겠다는 약속을 성실히 지키려 노력하는 '대현'이 있음에도 '지영'의 마음은 공허하다. 해가 질 때면 이유 없이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마음의 병이 쌓여왔다.

언젠가부터 '지영'은 다른 인물로 빙의해 가슴 속 말을 내뱉는다. 정신을 잃고 깨어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남편 '대현'은 '지영'의 상태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정신과 진료를 권유하지만, 비싼 진료비에 놀란 '지영'은 진료를 포기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지영'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을 통해 2019년의 대한민국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동명 원작 소설을 둘러싼 '젠더 갈등'을 의식해서인지 최대한 힘을 빼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로 잔잔하게 진행된다. 갈등 요소는 빼냈지만, 이야기가 전달하는 메시지의 힘은 여전히 강렬하다. 때로는 유쾌한 톤을 오가며 지루함 없이 관객을 마지막까지 집중시킨다. 

영화 속에는 자신이 하는 말이 '차별적인 말'임을 인지한 상태에서도 쉽게 내뱉는 상사, '지영'을 걱정하는 듯하지만 내 아들과 내 딸이 먼저인 시어머니, 여자 화장실 속 불법 카메라를 발견하고 자신의 여자친구에게만 이용하지 말라고 몰래 말하는 남자친구 등이 등장한다. 영화는 이들을 통해 쉽게 내뱉은 누군가의 이야기가,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가 됐을 땐 무서운 이야기로 바뀌어 다가온다는 현실을 전한다.

'지영'의 이야기뿐 아니라 다양한 여성 캐릭터와 사건이 등장하는 만큼 공감하는 지점이 다를 수도,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누군가에겐 경험이자 두려움으로 다가온 현실이라는 것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포스터/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82년생 김지영' 포스터/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김지영' 역을 연기한 배우 정유미는 "'지영'과 같은 삶을 살아보지 않았다"고 했지만 훌륭하게 '지영'을 연기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 무채색 의상, 운동화를 신고 달리는 '지영'의 평범한 모습을 특별한 연기로 완성했다.

공유는 극 중 보편적인 30대 남성을 표현하기 위해 살을 찌우고, 실제 그의 고향인 부산 사투리까지 써가며 일상적인 연기에 도전했다. 눈치 없지만 귀여운 신혼의 남편부터, 육아 휴직 후 돌아온 동료 남자 직원의 무거운 현실을 마주한 뒤 고뇌하는 남편의 모습까지 무리 없이 소화했다. 우려와 달리 집중을 헤치는 것은 그의 연기나 특별한 몸매가 아니라 '맥주'였다. 그가 광고하는 맥주가 아닌 타 회사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어색하게 다가와 잠시 시선을 뺏는다.

영화 속 가장 빛나는 연기를 선보인 배우는 '지영'의 엄마 '미숙'을 연기한 김미경이다. 가족을 위해 꿈을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들었던 어린 '미숙', 아들을 낳기 위해 세번의 출산을 경험한 엄마 '미숙', 아파하는 딸 '지영'을 온전히 이해하고 다시 '지영이 엄마'로 살아가려는 '미숙'의 심정과 서사를 짧은 분량에 모두 전달한다.

딸 '지영'이 자신보다는 나은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미숙'의 마음처럼, 이 영화는 현재의 '지영'보다는 미래를 살아갈 '아영'이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희망적인 바람을 전한다. 

연출을 맡은 김도영 감독은 "'이 땅의 지영이들이 이런 길을 걷고 있구나', '우리 엄마가 이런 강을 건너셨구나'를 한번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2세 관람가. 오는 23일 개봉.

 

 

박상훈 기자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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