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척의 결과
잘난 척의 결과
  • 육홍타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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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홍타의 쉬다, 걷다]
카잔차키스 기념관 ⓒ육홍타

[인터뷰365 육홍타 칼럼니스트] 그리스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누구일까? 최근 남편과 이 문제를 놓고 이야기해 본 적이 있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옛날 사람들 말고, 20세기 이후 현대 그리스인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라면?

장관까지 역임한 반체제 여배우 멜리나 메르쿠리, 여걸형 언론인 오리아나 팔라치가 떠올랐지만 시의성 있는 인물들은 그 이슈가 사라지면 잊혀지게 되므로,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를 거라는 데 의견이 일치되었다.

가수 나나 무스쿠리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였지만 이 역시 흘러간 시절의 이야기... 결국 우리가 ‘예나 지금이나 인지도가 높은 그리스인’으로 꼽은 것은 소설가 카잔차키스였다.

옛날 옛날 한 옛날 20세기의 어느 봄에 3주간 그리스를 여행했었다. 미운 일곱살 여덟살 두 아이와 함께 한 가족여행이었다. 그중 첫 일주일은 크레타섬에서 보냈다.

아테네의 외항인 피레우스에서 배를 타고 한밤을 자고 나니 크레타섬에 도착했다. 배는 꽤 컸고, 객실이 있었지만 모든 사람이 묵을 수 있을 만큼은 아니어서 방을 구하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 배의 이름이 ‘카잔차키스’였다.

카잔차키스는 크레타섬 출신이다. 그래서 그의 생가가 기념관으로 만들어져 공개되고 있었다. 박물관이라 부르기엔 너무 작은, 그야말로 원형을 보존해 놓은 곳이었다.

카잔차키스 기념관을 찾아가는 길은 매우 아름다웠다. 약간 언덕진 곳을 올라가는데, 고개를 돌리면 양떼와 함께 평화로운 농촌의 모습이 펼쳐졌다. 마음이 따스해지는 풍경이었다.

중간 어느 갈림길인가에 기념관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무려 12개국의 언어로 적혀 있었다. 영어, 아랍어, 중국어, 일본어까지 있었지만 한국어는 없어서 서운했다. 지금쯤은 한국어도 있지 않을까.

오렌지나무엔 오렌지가 익어가고, 기념관 입구엔 ‘조르바’라는 이름의 카페테리아가 있었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카잔차키스의 대표작임을 실감할 수 있는 명명이었다.

카잔차키스 기념관 내부 ⓒ육홍타

기념관 내부는 소박했지만 정성스러웠다. 문학뿐만 아니라 정치, 사업, 여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카잔차키스의 생애를 연대별로 자료와 함께 상세하게 설명해놓았다. 책이 많았고, 만년필이나 담배파이프, 안경, 나비넥타이 같은 일상소품들부터 연극무대의 모형까지 꼼꼼하게 갖춰져 있었다.

의자가 40개쯤 되는 작은 강당 같은 것도 있어서 비디오를 상영했다. ‘타인에겐 다정하고 자기 자신에게만 엄격했던 사람’이라는 해설이 마음을 끌었다. 세계 각국에서 출간된 카잔차키스 책들도 한데 모아 놓았다.

거기엔 한국 책도 있었다. 1983년 고려원에서 펴낸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안정효 옮김), 카잔차키스 전집 중 한권이었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밑에 붙어 있는 설명이 이상했다. 책 제목을 ‘알렉시스 조르바’(‘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이름)라고 써 놓은 것도 황당하지만, 북한 책이라고 소개해 놓은 것이다.

북한 책으로 소개된 한국 번역도서 ⓒ육홍타

우리는 당연히 관리인에게 오류를 지적했다. 그는 알았다고 했다. 나는 뭔가 애국적인 일을 한 것 같은 느낌을 갖고 돌아왔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고은 시인이 그곳을 방문한 여행기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세계 각국의 카잔차키스 번역서를 전시하고 있는데 한국 책이 없어서 섭섭했다고... 나는 깜짝 놀랐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해가 갔다. 방문객 말만 믿고 해설을 고칠 수는 없었을 테니까.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시골에서 한국 책의 제목과 발행국가를 확인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냥 책을 전시대에서 빼내버리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으리라. 이해는 하겠는데, 뭔가 아쉬웠다. 그때 가만있었더라면 북한 책으로 오인을 할망정 책은 그대로 있었을 텐데. 공연히 잘난 척을 해서...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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