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뇌형 인간의 뱃멀미
좌뇌형 인간의 뱃멀미
  • 육홍타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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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홍타의 기행칼럼 쉬다, 걷다]
케언즈의 바다는 푸르름과는 거리가 멀었다. 생전 처음 보는 회색의 바다였다. 진흙이 많이 녹아든 황토색도 아니고, 탄광 인근의 강물처럼 짙은 회색도 아닌, 그냥 탁한 회색 물빛에 실망해서 물어봤더니 ‘원래 이런 색’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육홍타

[인터뷰365 육홍타 칼럼니스트] 젊어서부터 나는 뱃멀미를 안 한다는 근자감이 충만해 있었다. 사실 아주 근거가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남들이 다 멀미를 할 때 나홀로 의연했던 경험이 있었으니까.

대학 졸업 직후 홍도에 갔다가 돌아오는 배에서 풍랑을 만난 적이 있다. 이미 무슨 주의보인지 경보인지가 내려져 있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배였는데, 일기예보는 기대 이상으로 정확해서 엄청난 파도가 몰아쳤다. 배는 롤러코스터로 변했고, 사람들은 모두들 토하느라 난리였다.

그런데 나는 멀쩡했다! 그래서 ‘나는 뱃멀미 안하는 체질인가 보다’하고 지레짐작한 것이다.

그후 어떤 논문을 요약한 것을 읽었는데 ‘우뇌형 인간이 뱃멀미를 많이 하고, 좌뇌형은 잘 안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따지기 좋아하는, 전형적인 좌뇌형 인간인지라 금방 공감이 갔다.

뱃멀미를 많이 하는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도 그랬다. 그들은 내가 그 논문의 주장을 소개하자 “그러고 보니...” 하면서 자신이 원래 왼손잡이였다고 털어놓았다. 어릴 적 부모의 강요로 오른손잡이가 되긴 했지만, 한두 가지 고치지 못한 것이 있다고 했다. 가위질을 왼손으로 한다거나 돈을 왼손으로 센다거나... 화투장을 왼손으로 돌린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러니 내가 어찌 그 이론을 믿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나는 좌뇌형 인간이라 멀미 안 해. 안할 것이 분명해! 유난히 물을 좋아하고 배 타기를 좋아하는 나는 내 체질이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대보초. 꼭 10년전 모습이다. ⓒ육홍타

지난 연말,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는 가족들이 호주로 리브어보드(live aboard) 여행을 가자고 했을 때 흔쾌히 따라나섰다. 호주의 대보초,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가 곧 사라진다고, 잠수족들의 명소인 그걸 없어지기 전에 보겠다고 의기투합하면서 잠수는커녕 수영도 전혀 못하는 나를 끼워준 것이다.

(2014-2017년 전세계 산호초의 70% 이상이 손상됐고, 현재의 수온상승 속도로 추정하면 2050년에는 산호초가 아예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지난번 호주여행에서 대보초를 본 적이 있긴 했다. 귀국 비행기 안에서, 기장이 지금 아래에 대보초가 보인다고 기내방송을 해줬다. 얼른 내려다봤더니, 진짜 그게 보였다. 바다 속에 있는 산호초가 비행기에서도 보여서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비록 잠수해서 물속에서 보지는 못하지만 배 타고 지나가면서 가까이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안고 호주 북쪽의 해안도시 케언즈에 도착해 승객 28명짜리 작은 배에 올랐다. 3박4일 동안 항해를 하면서 대보초 경관이 좋은 곳들에 잠깐씩 머물러 잠수를 한다고 했다.

배는 생각보다 많이 출렁거렸다. 그런 상태에서 승객들을 모아놓고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그런데 마지막쯤에 선장이 지도 아래쪽을 가리키며 ‘저기에 열대성저기압이 있는데 사이클론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했다.

출렁임이 계속되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뷔페로 차려놓은 점심식사를 거들떠보기도 싫었다. 앉아 있다가 서 있다가 하다가 방에 가서 침대에 드러누웠다. 비상용 비닐 봉투를 손에 쥐고 누워서 생각했다. ‘이게 멀미인가? 설마? 나는 멀미 안하는 체질인데?’

설마는 확실히 사람을 잡았다. 비상용 봉투는 상용이 되었고, 배의 요동은 점차 심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뱃멀미의 고통 속에서 시간이 이렇게 느리게 흘러갈 수도 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떻게 이 상태로 3박4일을 견디나 생각하니 너무너무 끔찍했다.

리브어보드 배의 객실. 14개의 객실이 있었는데 그중엔 이층침대로 된 방들도 있었다. ⓒ육홍타

그렇게 기나긴 하루, 하룻밤이 지나갔다. 당연히 아무 것도 먹지 못했고, 이미 먹었던 것들조차 무효화되었다. 배의 출렁거림과 위의 울렁거림이 사이좋게 손잡고 나를 고문하는 것 같았다. 이제 두 밤만 버티면 된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한없이 늘어지는 시간을 겨우겨우 견디고 있는데 선장이 다시 승객들을 불렀다. 그리고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을 차례로 전해주었다.

문제의 그 열대성저기압이 결국 사이클론으로 발전했다고 했다(나쁜 소식). 배의 격렬한 요동은 사이클론의 위력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배는 회항한다고 했다(좋은 소식). 이미 떠나온 거리가 꽤 되어서 밤에야 항구에 도착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3박4일을 다 채우지 않고 중간에 이 고통이 끝나는 것이 어디인가!

희망이 생기니까 고통도 조금은 덜해지는 것 같았다. 여전히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이었지만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던 절망감은 사라졌다. 못다한 여정에 대해서는 환불도 해준다고 했다.

선장은 항구에 정박하면 배가 흔들리지 않으니까 그냥 배에서 공짜로 자고 다음날 내리라고 권했지만, 우리는 하룻밤 숙박비를 감수하기로 하고 하선했다. 정말이지 잠시잠깐도 더 배를 타고 싶지 않았다. 식구들 모두 ‘내가 다시 배를 타나 봐라!’하고 이를 갈았다.

물론, 당연하게도, 귀국 후 모두 건망증인지 기억상실증인지에 걸렸다. 남편과 아이들은 다시 배를 타고 다이빙을 하러 갔고, 나는 태평양을 건너는 장거리 항해를 꿈꾼다.

그런데... 뱃멀미는 우뇌형 인간의 특성이라던 그 이론은 어떻게 된 걸까? 하도 머리를 안 쓰고 단순무식하게 살았더니 좌뇌가 퇴화한 걸까?

(홍도의 풍랑 속에서 나는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조금이라도 덜 흔들리는 곳을 찾아보려고 고심하다가, 배의 무게중심은 안정적일 거 같아서 대충 무게중심쯤으로 추정되는 곳에 자리를 잡았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 멀미를 안한 실제 이유는 이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좌뇌가 잘 돌아가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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