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중진 배우들의 악극 무대 진출...소외된 정극의 탈출구는 아닐까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중진 배우들의 악극 무대 진출...소외된 정극의 탈출구는 아닐까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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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극 '찔레꽃',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등 노련한 연기파 배우들 대거 참여
-중진 배우들의 악극 무대는 '진출이 아닌 엑소더스'...문화당국, 정극 무대 활성화 정책 펴야
-열악한 악극 환경...순회공연엔 지자체의 적극적인 협조와 관심 필요
악극 '찔레꽃', 악극 '사랑에 속고 돈에 속고' 포스터/사진=송파구민회관, 극단 미연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중진 배우들의 악극 무대 진출이 활기를 띠고 있다.

최주봉·전원주·황범식·나기수 등이 악극 '찔레꽃'에 참여, 전국 공연에 나섰다.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는 극단 미연의 악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5월 3일부터 6월 2일까지 공연중이다. 이 무대에는 이정섭·박승태·정상철·이인철 등 중진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다.

최근 악극이 다시 살아나는 이유는 고령화 시대에 관객층이 중장년으로 넓어졌고, 배우들 역시 중장년이 많아져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냉정히 말하면 연극 무대에 일생을 바친 경륜 많고 노련한 연기파 배우들을 수용할 무대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요즘 연극계에는 좀처럼 큰 작품이 나오지 않고 있다. 지원 제도를 탓하지만 연극인들의 열정이 60~70년대 동인제시대보다도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교향악축제나 오페라축제, 무용축제의 규모가 커지고 화려해진데 비해 연극축제는 여전히 소박하다.

3.1운동 100주년, 임정 100주년 등 기념행사는 많아도 연극은 여기서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연극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잔뼈가 굵은 중장년 배우들이 무대를 찾아 살길을 찾아 간 곳이 악극인 것이다. 중진 배우들의 악극 무대에 서는 것은 진출이 아니라 엑소더스인 것이다.

1930년대 관객을 웃기고 울던 악극은 신파였다. 임선규 극본의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1936년 서울 동양극장에서 황철 주연으로 초연되어 장안에 선풍을 일으킨 전형적인 소재의 가정 비극이다.

배우 황철과 차홍녀는 이 악극으로 스타가 되었으며 주제가 '홍도야 울지마라'도 인기가 대단했다. 이처럼 붐을 일으키던 악그은 시대적 트랜드에 부응하지 못해 쇠퇴했다.

1990년대 접어들어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김상렬(1941~1998)이 악극 부흥에 나서 상당한 붐을 일으켰다.

1993년 공연한 악극 '번지 없는 주막'이 크게 히트하면서 악극은 흥행 보장뿐 아니라 실버세대의 새로운 즐길 거리로 사랑받았다. 이후 김상렬은 여러 작품을 연달아 히트시켰다. 성공 요인은 신파에서 벗어나 현대적 연출로 관객 변화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김순영 연출의 '사랑에 속고...'에 출연 중인 정상철·이인철·이정섭·박승태 등 중진 배우들은 체력이나 열정으로 보아 정극에서도 농익은 연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들이라 악극에서도 노련한 연기를 보였다.

홍도 아버지 역의 이정섭은 애드리브가 적은 대신 한결 진솔한 연기로 역할을 소화했다. 며느리 홍도를 괴롭히는 악독한 시어머니 역 박승태는 무대를 한껏 휘저을만큼 연기에 물이 올랐고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국립극단 출신의 정상철은 악극이지만 노래 없이 정극 배우로서의 정통연기로 극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이번 무대에서 이인철은 1인 다역을 하면서도 그만이 할 수 있는 개성연기를 유연하게 펼쳐냈다. 노래도 잘하고 변사도 잘하고 연기도 잘했다.

여기에 기생 춘홍역을 맡은 연기파 우상민이 가세해 구성진 노래에 똑 떨어지는 연기를 펼쳤다. 오랜 만에 무대에서 본 홍도 역 김혜영도 연기가 많이 늘었고 노래 또한 빼어났다. 홍도 남편 역 박용기, 홍도 오빠 역 민충석, 홍도 시누이 역 김현정, 홍도 라이벌 김미경 등 연기진이 고루 제 역할을 해내 악극이지만 정극처럼 드라마를 잘 살려냈다.

이는 김상렬의 각색을 잘 활용한데다 그와 함께 악극을 했던 배우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랑에 속고...'보면서 90년대 무대에서 혼을 불태웠던 김상렬 연출과 미남배우 태민영의 모습이 계속 오버랩됐다. 이들은 이미 가고 없지만 그들이 악극의 맥의 이어냈기에 오늘의 악극 붐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붐이라고 하기에는 악극 환경이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관객이 좋아할만한 배우들로 팀을 이뤄 전국 순회공연에 나서는 악극은 지자체들이 협조해주어야 활기를 띨 수 있다.

말로만 ‘지역시대 지역문화’를 외칠게 아니라 지자체들이 지역문화진흥법에 명시된 데로 지역의 생활문화, 생활예술을 활성화와 함께 지역민들의 문화 향수권을 높일 의무가 있다.

또한 문화 당국은 연륜 있고 연기 잘 하는 중장년 배우들이 기량을 펼 수 있게 정극 무대를 넓혀주는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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