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몽골 국민배우 ‘몽골의 김지미’ 맨드바야르 내한 단독 인터뷰
[인터뷰] 몽골 국민배우 ‘몽골의 김지미’ 맨드바야르 내한 단독 인터뷰
  • 김두호
  • 승인 2017.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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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처음 공개된 몽골 영화 ‘더 마더’의 주연배우

 

몽골의 국민배우 맨드바야르 여사. 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몽골의 국민배우 맨드바야르(73) 여사가 최근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자신의 출연 영화 ‘더 마더’(The Mother)의 무대 인사차 서울에 왔다.

 

인터뷰365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한 그는 젊은 시절에 누린 인기와 미색, 활동이력에서 한국영화계의 김지미에 비교된다는 몽골의 대표적인 여배우다.

 

최근 서울 충무로 명보아트홀(구 명보극장) 6층 명화극장에는 맨드바야르와 그녀의 출연영화를 보기 위해 한국에 거주하는 몽골인들이 모여들어 200여 관람석을 채웠다. ‘더 마더’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몽골영화로, 3일간 진행된 시사회는 한국에 체류하는 유학생을 비롯한 몽골교민들이 주관했다. 출연배우와 감독의 초청, 작품 선정도 그들이 추진해 몽골영화가 국내 일반 관객에게 소개되지 못한 아쉬움이 따랐다.

 

맨드바야르 주연의 ‘더 마더’는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자식을 구하려는 애틋한 모성애를 담아낸 영화다. 스토리의 구성과 사건 전개 등 작품 성향이 한국영화의 멜로드라마에 가깝고 가족이나 사회적 정서도 우리의 생활문화와 통하는 게 많다는 느낌을 보여준 작품이다.


몽골 여성들은 대체로 얼굴이 큰 편인데 ‘몽골의 김지미’ 맨드바야르 배우는 김지미처럼 얼굴이나 몸집이 작고 가냘픈 미인이었다. 서울에서 ‘더 마더’가 상영되는 날, 모여드는 몽골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사인을 해주고 기념사진을 찍는 그녀의 표정은 밝고 행복해 보였다.


한국은 첫 방문인가?


그렇다. 처음 왔지만 몽골인들은 한국을 많이 알고 있다. 나도 일찍이 전해 듣고 알고 있는 정보가 많아서 낯설지는 않다. 우선 사람들이 친절해서 편하다. 또 이곳에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으니 친숙감을 느낀다. 한국에 우리 몽골 동포들이 4만여 명 거주하고 유학생만 5800여 명이라고 들었다.

 

당신을 소개한 몽골의 유학생 난디아(23·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4학년) 양이 당신을 ‘몽골의 김지미’라고 했다. 김지미는 1960년대 한국영화의 최고 미녀배우로 인기를 누린 톱스타이다. 간단하게 당신의 활동이력을 소개해 달라.


나는 1963년 몽골대학교(Mongolian University) 연기학과를 다녔다. 출생지는 몽골의 동쪽 끝에 있는 호버드 시인데 2살 때 울란바토르로 이주해 18세 때 ‘역시 여자들이야’라는 영화로 배우활동을 시작했다. 영화 출연과 연극배우로 활동하면서 지금까지 200여편에 출연했다.
대표작품은 1982년 크게 히트한 직지드(Jigjid) 감독의 고전 사극영화로 내가 왕비로 출연한 ‘만두카이’(Mandukhai Tsetsen Khatan)를 포함해 ‘행복을 받지 못한 괴로움’ 등 화제작들이 많다. ‘만두카이’는 몽골영화의 새 장을 연, 새로운 역사극의 분기점이 된 작품이다.
몽골 국민수가 어린이를 포함해 300만여 명이다. 아마도 나의 히트한 작품들은 어린이를 빼고 몽골 국민들이 모두 관람했을 것이다. 또 해외 영화제에 출품되어 크고 작은 상도 많이 받았다.

 

 

젊은 시절 출연한 작품들.

 

 

남편도 몽골을 대표하는 배우라고 소개받았다.


남편 체렌다그바(Tserendagva)는 나보다 4살 연하다. 우리 부부는 영화배우이면서 몽골국립극장 소속의 연극배우로도 적을 두고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대학에서 교수로 연기를 강의하지만 아직도 현역 배우로 카메라 앞에 설 때가 행복하다.

 

몽골영화가 한국에 소개되지 않아 궁금한 것이 많다. 역사적인 배경이나 특성, 연간 제작편수나 현재의 영화산업 실태를 알고 싶다.


몽골영화의 역사는 1936년대로 거슬러 오른다. 러시아로부터 건너왔다고 보면 된다. 러시아 영화계에서 제작에 참여했던 인력들이 초기 몽골영화의 길을 열었고 그로 인해 작품 성향도 러시아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한때 러시아와 합작 영화들이 주목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국제적으로 작품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연간 50여 편이 제작됐다.

 

편당 제작비는 평균 어느 정도인가?


작품의 스케일과 인건비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 ‘더 마더’는 여성감독 에르덴 체체그가 시나리오에서 연출, 제작까지 맡아 독립영화 형태로 완성해 제작비가 많이 절감되었다. (자리를 함께 한 에르덴 체체그 감독에게 제작비를 묻자 총제작비는 17만 달러지만 정부 지원금이 있어서 자신은 8만 달러 정도 투자했다고 밝혔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는 영화관 수가 얼마나 되는가?


극장 수가 정부 지원으로 증가하다가 한때 지원제도가 없어져 늘지 않다가 2000년부터 다시 증가했다. 울란바토르에 20여개 극장이 있다.

 

 

함께 내한한 에르덴 체체그 감독(왼쪽), 그리고 인터뷰이와 함께(오른쪽). 사진=인터뷰365

 

 

‘더 마더’를 보면서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희생적인 모성애가 우리나라의 가족 정서와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성애란 말은 인간 사회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류의 공통 언어이므로 통하는 게 많을 것이다. 몽골 엄마들의 마음속에도 자식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보호해야 하는 귀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착한 아들이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 있다면 엄마의 생활은 감옥보다 더 절망적인 지옥살이를 하는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사랑과 믿음에 대한 엄마의 진실을 스스로 입증해내기까지의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나간 작품이다.

 

몽골 관객들에게 당신은 어떤 성격과 이미지의 배우로 사랑을 받고 있는가?


젊은 시절은 역사물이든 현대극이든 사랑 받는 연인 역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사랑을 주는 어머니, 할머니 역이니 선량한 이미지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내 캐릭터가 성깔 있는 악역은 어울리지 않은 탓인지 주로 러브스토리 영화로 사랑을 받았다.

 

자녀를 소개해 달라.


1남 2녀를 두고 있다. 손자가 모두 14명이다.

 

몽골의 영화와 연극무대에서 톱스타로 인기를 누리며 활동해온 노배우는 3남매를 낳아 손자가 열넷이나 된다고 밝히며 마침내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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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 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기자, 스포츠서울 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전무이사를 지냈으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