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유기농 농부 된 순악질여사 개그우먼 김미화
[인터뷰]유기농 농부 된 순악질여사 개그우먼 김미화
  • 김두호
  • 승인 2014.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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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 착한 내 발자국 남기고 싶다"
순악질여사로 사랑받은 개그우먼 김미화가 유기농 카페주인으로 변신했다.

【인터뷰365 김두호】 입심 좋고 입담 좋은 개그우먼 출신의 작은 여장부 김미화(1964∼)는 어릴 때 살던 농촌으로 돌아가 일상의 절반을 촌부로 살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목신리 375-4번지 국도변에 ‘호미’라는 이름의 카페를 차려놓고 유기농 농산물을 생산 판매하는 (주)순악질 농업법인까지 운영하고 있다.

호미를 들고 직접 농사를 짓거나 동네 주민들의 친환경 농산물을 대신 판매해주는 농업법인체의 이름으로 내건 ‘순악질’은 코미디 프로에 출연할 때 대박을 친 그녀의 개그 캐릭터의 닉네임이다. 창밖으로 짙어가는 6월의 신록과 들판이 바라다 보이는 카페는 컨테이너 형태의 건물이었고 내부 집기와 장식물도 흔한 목재를 활용하는 등 산촌의 소박한 정취를 살려 편안한 정감을 느끼게 꾸며 놓았다. 손님들은 쉬지 않고 찾아왔고 다들 주인을 보고 아는 척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김미화는 카페를 직접 관리하고 일철이 되면 삽과 호미를 들고 나가 고구마 감자밭의 김을 매거나 논의 잡초를 뽑기도 한다. 그의 카페를 찾아간 날도 그는 전지가위를 들고 담장 밑에서 장미넝쿨을 손질하고 있었다. 카페 뒤편 언덕 위에 있는 수 백 년 된 도토리나무 고목의 허리에는 주인이 둘러놓은 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이 바람결에 펄럭이고 있었다.

저 아름드리나무는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 같은데 엄청 큰 노란 리본을 치마처럼 둘렀네요.
수령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어요. 다들 몇 백 년은 묵었다고 해요. 기둥나무 중간에 시커멓게 불 탄 흔적이 보이지요? 저게 벼락 맞아 저런 거래요. 큰 가지가 번갯불에 맞아 잘려나간 자리랍니다.

언제 이곳에 왔나요.
카페 문을 연지는 9개월 됐고 이 동네로 와서 살게 된 지는 9년째입니다. 우리 집은 이곳(호미 카페)에서 차로 10분 쯤 떨어져 있어요. 남편(윤승호 성균관대 교수)과 함께 시골 동네를 여행하면서 자연의 풍광이 가장 변하지 않고 많이 남아 있는 지역을 직접 물색해서 땅을 마련하고 집을 짓고 이주를 했어요.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목신리 진짜 주민이 된지 10년이 다가 오네요.

원래 고향이 경기도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아요. 신갈입니다. 두 살 때 부모님 따라 서울로 이주했지만 큰댁 가족이 신갈에 그대로 살고 계셔서 자주 고향에 내려와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9살 때 아버지가 별세하셔서 더 고향과 가까워지게 됐지요. 논에 모심고 밭에서 김 매는 농촌에는 내게 애틋한 추억이 많아요.

어떤 추억들이 많이 기억나는지.

냇가를 뛰어다니면서 물장구 치고 가제잡고 놀던 곳이었어요. 따가운 햇볕에 그을린 얼굴로 친구들과 칡뿌리 산딸기를 찾아 산속을 헤매기도 하고 들에서 꽃을 꺾으러 다니거나 메뚜기를 잡던 어린 시절들이 언제나 그리웠어요. 어른이 되어서도 돌아가고 싶었는데 남편이 내 희망을 들어 준 것이지요. 길이 잘 뚫려 있어서 서울까지 한 시간 반 거리인데 막히지 않으면 1시간 10분 정도면 도착해요.

‘농사는 예술이여’라는 말이 재미있네요. 순악질 농업법인의 로고에 쓴 슬로건인데 주로 어떤 사업을 하는건가요.
제가 임대해서 생산하는 땅은 논 3600㎡, 밭 1600㎡ 쯤 됩니다. 주로 손님들과 체험농사를 짓고 있어요. 고구마 감자 토마토 등의 작물을 심고 캐는 재미를 함께 즐기는 사업입니다.그러나 주 사업은 이곳 농부님들이 수확한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을 중간 매장 없이 바로 서울서 온 손님들에게 판매하는 건데 쌀, 찹쌀, 현미에서 토종계란, 뿌리나 열매 식품과 채소 류 등 많아요. 카페를 통해서 많이 팔고 있는데 찾아오시는 분들이 모두 저를 알고 있는 분들이라 신뢰를 하고 있어서 좋은 점도 있지만 그것이 더 무서워요. 책임감 때문에 더 조심스럽지요.

유기농 카페 호미의 주인장으로 변신한 김미화와 남편 윤승호 씨의 다정한 모습.

방송활동은? 언제부터인가 개그우먼이라는 말보다 MC나 방송인이라는 직함이 따라붙던데.
아하, 그랬어요. 그래서 지금은 이미지 세탁기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코미디언으로 복귀하기 위해 잠정적인 휴식기에 있다고 해야 말이 될지, 그런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개그프로 출연을 떠난 뒤 주로 시사프로의 진행에 참여했는데 지난해 CBS의 시사프로 <김미화의 여러분>을 끝으로 지금은 출연 프로가 없습니다.

다시 코미디를 하고 싶을때가 있나요.
아무렴요. 고향 같은 곳이 예능프로인데요. 직업적인 정체성을 외면할 수는 없지요.

1983년 개그콘서트로 방송에 모습을 드러낸 후 한때 최고의 갈채를 받았었지요? 바로 야구방망이를 들고 남편의 버릇을 일깨워주는 <쓰리랑 부부>에서 순악질 아내 역은 정말 인기가 대박이 났던 기억이 나는데.

하하하. 그랬어요. 내 생애 <쓰리랑 부부> 시절이 가장 화려했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인기를 누리는 기쁨이 좋은 동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절실히 느낀 때였습니다. 일에 후회 없이 그토록 열정을 다 바치고 결과를 기다리면 그에 대한 보답과 응답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는 점에서 행복했습니다.

농촌에 살아보니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생활이 순수하고 순해졌어요. 저절로 착하게 변해졌어요. 느리게 사는 법을 익혔구요. 사람이 사람들 속에 사는 건데 주위의 이웃들이 모두 서두는 법 없이 각박한 것을 모르고 살아서 천천히 사는 것을 배웠어요. 우리 부부는 주로 아침을 한 동네 농부님 가정에 초대받아 해결해요.

이곳에서도 인기 짱이군요.
그런데 초대를 받아 아침 밥상 앞에 앉으면 꼭 고기를 중심으로 한 성찬을 대합니다. 농촌에서는 손님 접대에 푸성귀만 차려놓으면 결례로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아침부터 푸짐한 삼겹살이나 불고기 밥상을 대할 때가 많아요.

아직도 농촌은 인심이 살아 있다는 얘기 같습니다.
물론이지요. 좋은 분들입니다. 말씨가 투박하고 거칠지만 꾸밈이 없고 정이 듬뿍 담겨 있어요. 씨를 뿌린 만큼 거두고 누구나 땀을 흘려 일해야 잘 살 수 있다는 삶의 철학이 몸에 배어 있어서 대다수 농부님들은 주어진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할 뿐 남의 밥그릇을 쳐다보는 따위의 탐욕이 없어요. 잔머리를 치열하게 굴리며 사는 도시사회에서는 흙의 철학을 모릅니다. 흙의 세상은 아주 순수하고 정직하고 착한 세상이 아닌가요?

그러다가 농촌의 홍보대사나 운동가가 될 것 같은데.
이미 되어 있는걸요. 농촌에 살며 나도 내 인생에서 착한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요.

성균관대에서 스포츠과학을 가르치는 부군과 또 다른 가족은.
제가 낳은 아이가 1남 3녀잖아요. 대학 1학년짜리에서 30살 아이까지 다 키워 함께 살지는 않고요. 아들 하나는 발달 장애로 미국 로스앤젤리스 지역의 보호시설에 머물고 있어요.

현재 저는 내 인생의 동반자인 남편과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은 카페에 나오면 손님들이 반겨주고 함께 사진 찍고 농산물 판매하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너무 짧아요. 참, 농촌 문화운동도 시작했어요.

구체적으로 문화운동은 어떤 내용들인가요.
카페를 문화 예술 공연 장소로 제공하고 있어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미술품 등 각종 전시회나 음악 공연도 해요.

신장이 154cm로 알고 있습니다. 핸디캡을 오히려 장점으로 극복하고 한 분야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거친 세상을 헤쳐 온 작은 여장부의 신념이나 인생관을 젊은 후배들을 위해 들려주시지요.

우리 시대의 화두가 서둘며 사는 ‘빨리빨리’인데 앞으로 주인공이 될 젊은 세대는 느리면서 착하게 사는 지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로 만들어 주기를 바라고 싶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자연을 바라보며 농촌에서 농부님들과 살며 생각해보니 주어진 우리 인생을 서둔다고 해서 더 길게 더 많이 얻고 누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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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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