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박수근 가짜그림 밝혀낸 1등 공신, 최명윤 교수
이중섭,박수근 가짜그림 밝혀낸 1등 공신, 최명윤 교수
  • 정중헌
  • 승인 200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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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박수근 위작사건을 말하다 / 정중헌





[인터뷰365 정중헌] 희대의 ‘이중섭 박수근 위작 사기사건’의 전모가 검찰에 의해 발표되었다. 이에 앞서 신문과 방송은 지난 10월 하순 이 사건을 주도한 김용수씨 구속을 계기로 사건의 전말과 에피소드를 보도했다.

검찰이 이 가짜그림 사건을 밝혀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명지대 최명윤 교수(60,문화재보존관리학과)다. 그는 2005년 3월 한국미술품감정협회 외부 위촉 감정위원으로 위작 판정을 내리면서 이 사건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었다. 이 사건에 연루된 이중섭의 둘째 아들 이태성씨가 그를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최 교수는 사재를 털어 김용수가 주장하는 대량의 이중섭 박수근 그림이 가짜임을 입증하는데 전력을 쏟았다.

처음에는 화랑측 감정위원들과 함께 대응했으나 하나 둘 떨어져나가고 혼자서 고군분투했다. 평창동 개인 연구소에서 대학원생 10영명과 밤샘을 하면서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기 위한 연구와 자료 분석에 심혈을 기울였다. 주변에서 약간의 도움을 받기도 했으나 차까지 팔고 적지 않은 빚도 짊어졌다.

검찰이 밝혀낸 위작 근거는 최 교수가 고군분투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작 사건을 맡은 검찰은 경험도 전문 인력도 없어 난감한 지경에 처했다. 각계에 수소문했으나 미술과 과학을 아우르는 전문가를 찾지 못하다가 고소당한 최 교수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최 교수는 검찰 청사를 제집 드나들다시피 하며 증거 수집과 과학적 근거 제시에 전적으로 협조했다.

언론 기사에서 화제가 되었던 ‘도록 같은 영장’이라던가 ‘논문 같은 각주’는 최 교수가 작성했음은 물론이다. 중앙일보가 보도한 여중생 그림 추적에도 최 교수의 집념이 큰 몫을 했고, 서명 대조나 종이 제작년도, 물감의 사용 시기 등 결정적 단서를 밝혀낸 것도 최 교수와 연구팀의 개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외롭고 괴롭다. 자신의 업적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번 같은 큰 사건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풍토가 그를 외롭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막상 당사자가 구속되자 인간적 괴로움도 따른다는 것이다. 요즘도 뒤처리에 바쁜 최명윤 교수를 만나 사건의 경위와 속내를 소상히 들어 보았다.



검찰 수사결과에 만족하는가?
만족하지 않다. 미술계의 신뢰는 물론 미술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이 같은 대형 사기사건은 발본색원해야 하며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자 모두를 엄중처벌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한 사람만 구속되고 깊이 간여했던 인물들은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공범인 이태성씨는 일본인이라 구속이 어렵다면 사과라도 받아야 한다.

이번 사건의 진상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중섭 박수근 같은 현대미술사의 비중 있는 작가 작품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전시했다는 점이 첫째다, 두 번째는 감정협회가 가짜라고 판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팔았다는 점이다. 수사 결과 압수 작품 모두가 가짜임이 판명됐고 연루된 인물들이 누구인지도 파악됐다. 검찰이 압수한 이중섭 작품은 1,067점, 박수근 작품은 1,762점으로 총 2,829점이다 추가로 압수된 것까지 합치면 3천점에 육박한다. 전체가 가짜로 밝혀진 만큼 실체를 규명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어떤 방법으로 가짜임을 밝혀냈는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안목 감정을 배제했다. 철저하게 증거와 근거 위주로 실체를 밝히는데 주력했다. 첫째 서체(서명, 사인) 분석에 집중했고, 둘째 종이의 산화도(酸化度)를 과학적으로 밝혀냈으며, 셋째는 물감의 개발 연도로 접근했고, 넷째는 도상(圖上)을 분석했다. 서체는 경찰 과학수사대에 50점을 보내 위조 여부를 분석했다. 2~5㎝ 크기로 방한선에 가짜 서명을 복사해 그림 한 점씩 대조했더니 먹지로 복사한 그림이 56점이나 나왔다. 심지어 또 다른 가짜 서체를 먹지 대고 복사한 그림이 132점이 나오기도 했다. 먹지를 대고 복사했는지 연필로 직접 서명했는지는 특수 촬영을 해보면 구별된다. 연필은 반사광이 잡히는데 먹지는 반사하지 않는다. 먹질 복사하고 덧쓴 경우도 많았다.

종이의 산화도는 어떻게 측정했나?
천여 점이 압수되다보니 같은 지질이 많아 분류하기가 수월했다. 그런데 작가가 생전에 큰 종이를 잘라 썼다면 4면이 산화가 되어야 하는데 2면만 산화된 그림들이 부지기수였다. 칼로 절단된 종이의 각도를 맞춰보았더니 최근에 절단된 종이임이 밝혀졌다. 결국 산화된 옛날 종이를 잘라서 모작을 만들었으며, 여럿이 아니라 한 사람이 모사를 주도한 정황임을 알 수 있었다.

신문에서는 물감을 결정적 단서로 꼽았던데.
모사에 이용된 물감은 여러 종류였다. 유성물감, 수성물감, 포스터컬러도 있었다. 물감은 안료가 바뀌면서 개량되고 발전한다는 점에 착안해 제작연도를 밝히는데 중점을 두었다. 예를 들어 크롬 예로로 불리는 노랑은 인체에 무해한 합성 유기물감인 퍼머넨트 옐로로 개량됐다. 모사에 쓴 금색과 은색도 분석해보니 금가루가 아니고 구리와 아연의 합금이었다. 모사에는 펄이란 물감이 많이 쓰였는데 펄은 1998에 나왔다. 그렇다면 모사한지 10년이 안됐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저쪽의 변호사와 과학자들은 펄이란 물감이 1984년 개발됐다며 진품임을 주장하는데 그렇다 해도 가짜를 자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검찰은 펄이 이용된 그림 20점을 국가 운영 연구소 4개소에 정밀 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최근에 나온 산화티타늄(TiO2)으로 만들어졌음이 밝혀졌다. 이처럼 검증에 검증을 거듭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물밑싸움이 대단했나.
누가 봐도 가짜인데 김용수씨 측은 물론이고 일부 화상과 평론가 중에도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데는 기가 막혔다. 그래서 더 확실하게 위작임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는데 지금은 거의가 가짜임에 동의하고 있다.

미술품 감정도 하고 복원하는 일도 했는데 자료 분석을 전공했나?
홍익대 미대에서 응용미술을 공부하고 한양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프랑스 8대학 조형미술대학원에서 수학할 당시 개인 연구소에서 복원기술을 배웠다. 한서대 예술품 보존관리연구소에 있을 때 월정사 보살상(석불)을 수복했고 중앙청 벽화를 복원 처리했다. 현재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 문화재보존관리학과 교수로 석박사 대학원생 12명과 평창동에서 개인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사건의 개요를 정리해 달라.
2005년 3월 3일 한국미술품감정협회는 서울옥션이 감정 의뢰한 이중섭 작품 1점을 나를 포함한 5명의 감정위원들이 위작 판정을 내렸다. 다음날 서울옥션 이호재 대표가 3점을 추가한 4점을 의뢰, 4점 모두 위작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3월 8일 3차 감정으로 위작 결정을 내렸다. 3월 14일 이호재 대표를 만나 진품이 아니라는 분석 자료를 보여주며 경매만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런데 3월 16일 서울옥션에서 위작 판정이 난 이중섭 작품 4점이 낙찰됐다. 한 점은 3억 2천만 원, 또 한 점은 1억 2천만 원, 나머지 2점도 4천~5천만 원에 낙찰됐다. 3월 22일 일보에 사는 이중섭의 둘째 아들 태성씨가 서울 롯데호텔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어 본인이 50년 동안 소장해온 그림이라고 주장했다. 감정협회도 3월 3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물고기와 아이’의 경우 78년 이중섭 화집의 도상을 반전시킨 것이라고 밝히고 눌린 자국과 서체 분석을 통해 복사됐음을 위작의 근거로 제시했다. 4월 12일 감정협회가 진위 공방을 가릴 세미나를 제안했지만 김용수 측에서 거절했다. 4월 22일 이태성씨가 다시 기자 간담회를 열어 20점의 소장품을 참고 자료로 제시했다. 그 중 1점이 한국에서 건너간 것임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사건은 분명해 진 것이다. 모든 것이 여기서 끝나야 했다. 그런데 서울옥션은 위작 판정을 받은 4점을 포함한 이중섭 작품 8점과 이태성씨가 가져온 2점 등 28점을 서울옥션 경매 전시(4월 23~25일)에 유족이 소장한 진품이라며 세상에 공개했다.

위작 입증 작업은 언제 시작했나.
4월 25일 이태성씨가 나를 고소했다. 5월 10일 검찰에 처음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그날부터 모든 것을 규명하겠다는 각오로 입증작업을 시작했다.

조사를 받아야할 당사자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는 것은 비정상 아닌가.
검찰도 직접 당사자 1인에게 검증을 맡기는 문제를 고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사건을 다루려면 미술과 화학을 넘나들어야 하는데 이런 전문가가 없으니 검찰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거지요. 과학적인 입증은 화학 전공자보다 부족할지 몰라도 그림물감 분석은 화학자에게 지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다.

수사가 길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검찰청에는 얼마나 갔나.
담당 검사가 3년 동안 4번이나 바뀌어 그때마다 사건 개요와 입증 방법을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검찰청 출입이 300회도 넘을 것이다. 이제는 수위까지 나를 알아볼 정도다.

초기에는 화랑 측 감정위원들과 공조하지 않았나.
그랬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하나둘씩 떨어져 나갔다. 200년 11월부터는 혼자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3년 가까이 연구소 입증 팀을 이끌기 위해서는 경비도 꽤 들었을 텐데.
연구소의 대학원 석박사생 12명이 이번 사건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낮에는 물론 허구 한 날 밤샘을 해야 했다. 인건비를 포함해 지금까지 소요된 경비만 8000만~9000만 원에 이른다. 화랑협회가 1000만 원, 감정연구소가 1000만 원, 그리고 친구들이 1000만 원 상당을 모아주었지만 턱없이 부족해 차도 팔고 빚도 진 상태다. 처음에는 가족들이 만류했으나 지금은 끝장을 보라고 응원해 준다.

자료만 해도 엄청날 텐데.
손으로는 나를 수 없을 정도다. 박스에 담아 끌개로 두 번에 옮길 분량이다.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그림만 좋아도 덜 피곤했을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그림을 수십 번씩 반복해 보려니 짜증이 나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신문 방송에 보도된 여중생 그림의 실제 인물을 찾아낸 일이었다. 박수근 작품을 체크하던 연구생이 뒷면에 글씨가 쓰여 있음을 발견했다. 그런데 무슨 글자인지 해독이 안 되었다. 특수 촬영해 보니 '태안중학교 제이학년 李來蘭(이래란)'이라고 적혀 있었다. 검찰에 보고했더니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린 여중생이 생존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검찰과 함께 찾아보기로 했다. 태안을 뒤졌으나 없어 신원을 조회해 뙤약볕 속에서 합평과 신평을 오가며 드디어 본인을 찾아냈다. 이래란(66)씨는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으로 내가 그린 그림이 틀림없다"며 "5년 전 서울 인사동의 골동품을 수집하는 가게에 스케치북 등 학창 시절에 쓰던 물건들을 팔았다"고 했다. 그래서 인사동 골동품상을 뒤졌더니 이래란씨가 3학년 때 그린 스케치북이 나왔다. 신기했다. 그중 일부는 방송사 드라마 세트장 소품으로 쓰인 사실도 가족들에 의해 밝혀졌다. 이런 그림에까지 서명을 넣어 진짜라고 우기니 어이가 없지 않은가.

위작 분석에 특별한 원칙이 있는가?

연구생들에게 선입견을 갖지 말라고 매일 강조했다. 미리 판단하지 말고 유도하지 말라, 그리고 실전 훈련의 기회로 삼으라고 했어요. 이런 마음가짐으로 한 작품 한 작품 세밀하게 분석했어요.

애쓴 만큼 압수된 그림 전체가 가짜로 판명되었다. 소감은?
검찰이 가짜로 판정하도록 기술적 과학적 근거를 제공한 것에 보람을 느낀다. 가짜임을 입증하는 최대 역할을 했고 김용수가 만난 화랑 주인 등 실체도 파악하게 됐다. 그런데 기분이 착잡하다. 그렇게 긴 시간 애쓴 결과가 사람 하나 저렇게 만든 것인가 하는 허탈감도 든다.

이번 위작 사기사건을 다루면서 느낀 점은?
검찰에 위작 수사 전담반이 있어야 한다. 문화범죄를 잡범과 같이 다루고 있어 무리가 있고 전문가가 없어 애로가 많다. 미술품은 시장이 형성되어 소비자가 있는 한 가짜가 나온다. 현재의 감정협회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2년 전 국회에 출석해 국가가 인정하는 재단법인 국책연구소로 미술품감정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처럼 화랑 중심이 되어서는 신뢰를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관련자는 일벌백계로 처리해야 범죄를 줄일 수 있다

검찰이 압수한 가짜그림은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고 보나.

미술계에 돌려주라는 의견을 검찰에 제시했다. 위조한 그림이지만 이것도 역사고 사건이니까 위작 낙인을 찍어 국립현대미술관에 자료로 활용하는 것도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검찰은 법원이 김용수씨에 대해 유죄를 확정하면서 위작에 대해 몰수 선고를 하면 가짜 작품에 ‘위작’ 도장을 찍어 박물관에 보관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 교수 의견과 같다. 대형 위작 사건이었던 만큼 역사로서 보존할 가치도 있지만 몰수된 그림은 폐기처분해야 하는 것 아닌가.
미술계의 중론을 모아 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미술과학연구소를 사단법인으로 설립하는 준비에 착수했다. 이달 말 정도 가시화될 것 같다. 그동안 그림 부스러기를 많이 수집해 놓았다. 이 재료를 분석해 캔버스 천과 물감의 시대별 기준자료를 데이터베이스 하여 과학적인 감정과 위작 판정에 활용할 계획이다.


인터뷰 말미에 성격을 묻자 최 교수는 “무슨 일을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며 빌렸다는 사위 차에서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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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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