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의 솟대 방귀희 인터뷰
장애인들의 솟대 방귀희 인터뷰
  • 김두호
  • 승인 2008.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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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팔로 사랑하는 사람을 안아보고 싶다”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솟대문학 발행인 방귀희 씨의 얼굴은 언제 만나도 환하다. 쉬지 않고 미소가 피어난다.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모습에서 찡그리거나 슬퍼하거나 우울한 표정을 본 기억이 없을 것이다. 방귀희 씨는 태어나서 한 번도 일어서거나 걸어 본 적이 없는 1급 지체장애인이다. 그가 창간한 솟대문학은 장애 문인들의 순수 문예동인지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발행해 이번 겨울로 17년째 72호를 내놓는다.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해 살며 27년째 KBS <내일은 푸른 하늘>의 작가로 활동해온 그는 장애우들의 희망이 되어주고 꿈을 심어주며 쉬는 날 없이 달려온 이 시대의 인간상록수다. 금년 초에 펴낸 18번째의 저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의 겉장에 ‘다시 태어난다면 달리고 싶다 / 세상을 향해 마음껏 달리고 싶다 / 다시 태어난다면 하늘을 안고 싶다 / 두 팔로 사랑하는 사람을 안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드러냈으나 생활 속에서는 그런 속마음을 버리고 온 몸 안에 웃음을 가득 채우고 사는 사람이다.


기자는 1981년 동국대 수석졸업자(불교철학 전공)로 화제에 오른 방귀희 씨를 인터뷰 하고 27년 만에 쉰한 살이 된 방송인 방귀희 씨를 다시 만났다. 장애인이 대학 가기 힘들었던 시절에 수석 졸업까지 한 방귀희 씨는 전례 없는 미담의 주인공이었다. 무학여고 입학 때도 수석 이력이 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부지런히 사회활동을 하며 혼자서 슬기롭게 꽃피워 온 극복의 삶, 그러나 그녀는 보이지 않게 묻어 둔 힘든 삶의 이야기들을 모처럼 터놓고 들려주었다.



웃음을 잃지 않고 밝게 보였던 20대 시절의 첫인상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됩니다. 그 후 간혹 만날 때도 늘 미소가 얼굴 가득했는데 여전히 웃고 사시네요. 사는 게 언제나 즐거우세요?

산다는 건 힘든 것 아닌가요? 언제나 행복만을 느끼며 사는 사람은 없을 거 같아요. 장애인이라면 건강한 사람이 겪지 않는 신체적 고통까지 안고 살게 되어 힘든 일이 더 많은 거구요. 오늘도 주변 사람들이 점심식사를 두고 맛있는 요리집부터 생각들 하지만 나는 그냥 편하게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의 식당이 좋거든요. 잘 웃고 살아서 고민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나이 탓인지 조금씩 소외감이나 힘들게 느껴지는 일이 많아졌어요.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감정이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지 않고 웃으며 살기가 쉽지 않는데 표정이 밝아 그래도 행복해 보입니다.

여자가 미인이 아니더라도 미인처럼 살려면 두 가지 조건이 따릅니다. 첫째는 자신이 못생겼다고 생각 않고 사는 것, 그 다음은 언제나 웃어야 합니다. 웃는 얼굴은 아무리 못생겨도 예쁘게 보입니다. 그리고 힘들 때는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생각하면 용기가 생깁니다. 나는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머리와 오른 팔 하나뿐이지만 나보다 더 중증 장애인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도울 수 있는 지를 생각합니다. 얼마전 열심히 살아온 최진실 씨의 죽음을 참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을 겁니다.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했으면 생명을 그렇게 버리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항상 따님을 뒷바라지하셨지요?

5년 전 떠나셨어요. 어느 토요일 아침 어머니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셨어요. 언제나 일찍 일어나셔서 딸의 나들이 준비를 해 놓으시고 아침상을 준비하는 분인데 8시반이 넘어도 꼼짝 않고 누워 계셨어요. 곁에는 강아지가 힘없이 지키고 앉아 있었지요. 119를 부르고 오빠와 언니에게 연락을 하고...일생중 가장 슬프고 충격을 준 순간이 그렇게 느닷없이 찾아왔어요. 평생 손발이 되어주신 어머니가 떠나신 후 나는 비로소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고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어른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버지는 그 한 해 전 별세해 1년 사이에 두 분을 여읜 거죠. 어머니는 떠나시기 한 달 전쯤 내가 의지해 살만한 아이를 입양하고 싶어하셨어요. 아마도 예감을 하고 딸을 생각했던 것 같았어요.

참, 대학 졸업 때 인터뷰하면서 나에게 가장 먼저 던진 질문 기억하세요?


그때 기사를 찾아봐야 될 것 같은데 어떤 질문이었던가요?

남자 친구가 있느냐는 질문부터 시작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대답하셨지요?

남자 친구가 미국 유학 갔다고 대답했어요.


그랬었군요. 그런데 왜 아직 결혼을 안하셨지요?

남자 친구들과 자유롭게 교제도 하고 많이 만났어요. 결혼을 하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일로 혼기를 놓쳤어요. 주변사람들이 아무래도 내가 불편한 몸으로 결혼생활을 하기 힘들다고 생각해 결혼에 대한 권유를 하지 않았던 것도 영향이 있었어요. 세상이 달라졌지만 그땐 그런 인식들이 많았지요. 지금은 내가 알고 있는 장애인 중에 행복하게 사는 분들이 많아요. 뇌성마비 남편과 사이에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둔 어머니 한 분은 아들이 공부를 너무 잘해 오히려 학교에서 왕따가 되었다고 걱정하더군요. 똑똑한 아들이 아버지로 인해 놀림감이 되고 있다면서.



오랫동안 방송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인식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하셨지요. 대학을 졸업하던 해부터 27년간이라면 방송과 관련해 쌓인 일화도 엄청 많을 것 같습니다.

장애인들의 방송활동이란 꿈도 못 꾸던 시절이고 휠체어를 탄 사람이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즐겁게 웃는 얼굴조차 흉이 되던 때인데 마침 내가 졸업하던 1981년이 장애인의 해로 정해져 기회가 생긴 겁니다. 그 동안 뜻대로 하지 못한 점들이 생각나 후회될 때도 있지만 방송이라는 영향력 있는 매체에서 사명감 있게 보낸 시간이 그래도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프로그램 내용들이 장애인들은 물론 비장애인들에게까지 감동으로 전달되어 좋은 반응으로 돌아올 때 보람을 느낍니다.

장애를 딛고 일어나 가정을 만들고 자신의 할 일을 찾은 가수 강원래 씨 같은 경우는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을 줍니다. 방송국에서 자주 만나 친하게 지내는데 중증 장애인 아내를 맞아들인 어떤 가정은 강원래 씨를 좋은 모델로 삼았다고 해요.


뜻대로 하지 못한 일들이 있다는데 어떤 것들인가요?

대학에 그대로 남아 학자의 길을 가고 싶은 것, 조물주가 부여한 섭리대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사는 일, 그리고 장애인 정책을 시대에 맞게 펼 수 있는 정계진출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들이 아쉽게 생각됩니다.


지난 총선 때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명단에 이름이 올랐더군요. 정치활동에도 관심이 있었군요.

장애인을 위한 가장 적극적인 활동은 정치 참여라는 생각에서 관심을 가져봤어요. 장애인 단체의 추천을 받았으나 그곳은 실적이나 성적 따위가 소용없고 재력이나 줄을 잘서야 되는 곳이어서 좌절했어요.


시각 장애인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뉴스도 나왔습니다. 장애인으로 성공한 사람도 많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도시사회의 편의시설이나 복지혜택도 예전과 다르고 차별을 받는 시대도 지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장애인을 위해 꼭 개선되고 반영해야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사람은 누구나 부처님 말씀처럼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어요. 늙고 병들면 누구나 장애자가 됩니다.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노인복지와 장애인 복지 정책이 일원화되어야 합니다. 노인사회에서 왜 장애인하고 함께 취급하느냐는 주장이라면 문제가 있어요. 나는 우리 아버지가 94세까지 사시면서 조금씩 신체부문들이 기능을 잃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피할 수 없는 생명의 순리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결국 백지 한 장 차이일 뿐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공동운명체라는 걸 느꼈습니다. 장애인의 복지문제도 노인 복지정책 만큼 관심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구상 시인이 작고하신 후 유가족들이 고인의 유지라며 남긴 재산 2억원을 솟대문학에 기부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솟대문학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지요.

넉넉하게 사신 분이 아닌데 거액을 우리 솟대에 주셨어요. 그 돈을 한푼도 쓰지 않고 은행에 예금해 매년 이자로 <구상솟대문학상> 상금을 만들어 필자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솟대문학은 방송프로를 만들면서 알게 된 장애인 동료들 가운데 시와 소설 수필 등 각 부문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많아 함께 책을 만들어 보자는 뜻이 모여 시작됐어요.

1990년에는 장애인문인협회가 만들어 지고 이어서 계간지로까지 발전해 계절마다 2천여 권을 발행하지만 대개 독자는 장애인들입니다. 글을 발표하는 분들도 손으로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 행복해 하는 중증 장애인들이 많지만 영혼이 정갈하고 문학성도 뛰어난 분들입니다. 그럼에도 장애인들만 보는 책이라는 인식에서 아직도 못벗어나 안타까워요. 장애인들이 글을 쓴다는 게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데 장애인 복지라는 것이 고기밥상만 차려주는 게 최상은 아닙니다. 국수나 나물국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구상 시인이 생전에 솟대문학과 인연이 깊었던가요?

구상 선생님 가족분이 소록도에서 봉사활동하실 때 동행하게 된 인연으로 저의 사업에 관심을 갖고 계셨어요. 생전에 저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대신해주어 고맙다고 말씀하시길래 제가 오히려 고맙다고 말씀드렸어요. 또 생전에 기부금을 주신 걸 비공개로 하셔서 돌아가신 후 발표하게 된 것이지요.


장애인 작가 중에는 음악이나 미술부문의 예술인도 많지요?

그렇습니다. 그림도 그릴 수 없고 음악도 할 수 없는 장애인들이 문학적 재능을 보여주는 곳이 솟대입니다. 스토부인이라는 나약한 한 여인이 쓴 <엉클 톰스 캐빈>(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흑인 노예해방에 영향을 미치며 세상을 일깨웠듯이 솟대도 장애 해방운동의 심지가 되려고 합니다. 그게 존재이유입니다. 문학행사에서 매번 느끼지만 장애인의 시 낭독은 별나게 감동을 자아냅니다. 그들의 문학감성이 워낙 고결하거든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방송작가 일에 솟대문학 발행, 장애인문인협회 회장일, 그밖에 또 어떤 일이 있습니까?

장애인과 관련된 단체일은 몇가지 더 있지만 그보다 강의나 강연을 다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월요일은 경희대 국어국문과에서 방송작가실기론, 수요일은 대전에 있는 우송대에서 겸임교수로 장애인복지학과 재활론을 강의하고 저녁에는 숭실대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행복해요. 특히 강의를 하면 제자들이 다른 교수들보다 더 느끼는 게 많다고들 좋아해 그것도 나를 즐겁게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이나 꿈이 아직도 많겠지요?

그래요. 방송 작가활동 30주년과 솟대문학 100호 기념호를 지금부터 준비하고 있어요. 이 한손으로 그걸 지탱해 온 게 스스로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아요. 그 꿈을 이루면 조용한 시골로 가서 전원 속에 묻혀 살고 싶어요. 돌아보면 고단한 삶이었지요. 웃고 살지만 너무 힘들게 살았거든요.

[인터뷰이 나우] 이명박 정부에서 문화특별보좌관으로 활동한 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이 ‘장애예술인의 창작활동 경험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숭실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방귀희 씨는 소설과 시를 발표하고 방송작가로 활동하면서 장애인 문학잡지인 ‘솟대문학’을 발행해온 1급 지체장애인이다.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할 때 수석 졸업자로 화제가 됐던 방귀희 씨는 사회활동을 하면서 2008년부터 학업을 계속하는 정력적인 삶을 통해 항상 장애우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성공한 작가로 이름을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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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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