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석에 앉은 지 11년 만에 운전석에” ‘트럭’의 운전사 유해진
“조수석에 앉은 지 11년 만에 운전석에” ‘트럭’의 운전사 유해진
  • 유성희
  • 승인 2008.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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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과 동행하는 스릴러물의 주연 / 유성희



[인터뷰365 유성희] 오는 9월 25일 개봉하는 영화 <트럭>에서 유해진이 맡은 역할은 어린 딸의 수술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체를 옮기게 되는 트럭 운전사다. 여기까지만 보면 뭉클한 드라마다. 하지만 시체를 운반하는 과정에 우연히 연쇄살인범이 동행하게 되면서 숨 가쁜 24시간이 시작된다. 스릴러다. <추격자> 이후 오랜만의 서늘함이어서 반가웠고, 유해진이 몰고 왔기에 더욱 기대된다. 단역부터 주연까지 차분히 쌓아온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그 무엇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지 않은가.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유해진을 만났다. ‘이디오피아 하라’라는 이름의 커피를 마시고 있던 그는 기자에게 ‘이디오피아 이가체프’를 권하고는 커피에 대한 부연설명을 이었다. 그러더니 마지막에 “커피는 역시 아메리카노죠”라며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낮게 읊조린다. 딱 유해진스러웠다.


뜻하지 않은 상황에 처한 인물의 심리묘사에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고삼은 캐릭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참고할 만한 캐릭터까지는 아니었고요. 아픈 아이를 둔 아버지의 감정을 익히려고 병원 응급실을 방문해 소아 환자를 둔 부모들을 보면서 연기 준비를 했어요.


소위 흥행대박이 났던 작품을 두루 거치면서 관객들에게 각인된 이미지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기대치로 인해 곤란했던 점은 없었나요.

지금까지 제가 연기한 캐릭터가 상황설정이 재밌었던 것이지 인위적으로 코미디 연기를 한 것은 아니잖아요. <왕의 남자>와 <타짜>에서의 역할도 하나같이 다 평범한 사람들인데, 캐릭터상 한 가지 모자란 부분으로 인해 웃음을 유발했던 거죠. 유달리 재밌었던 부분을 관객들께서 많이 기억해 주시는 면이 컸다고 봐요. 그로 인해 특별히 곤란했던 점은 없었어요.



코믹한 이미지로 유명세를 탔지만 이전의 <해안선>이나 드라마 <토지>에서의 역할은 기존의 모습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섬뜩함을 풍겼습니다.

남들이 저를 부를 때 ‘배우 유해진’이라고 하잖아요. 배우라는 이름에 책임을 지려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지 배우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것이고요. 기존에 만들어진 이미지든 다양한 모습이든 ‘좋은 작품’이라는 기준에서 정해진다고 봅니다.


어떤 시나리오가 왔을 때 느낌이 확 오나요?

때로는 감동을, 때로는 웃음을 주면서도 사람냄새가 진솔하게 배어 있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코미디라고 해서 사람 냄새가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 속에는 인물들마다 각자 사연이 있고 또 냄새가 있어요. 연기하는 인물을 온전히 이해해야만 관객들에게 자연스러움이 전달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제 스스로에게도 그렇고요.


<트럭>에도 사람 냄새가 배어있겠군요.

그렇죠.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밑바탕에 깔린 작품입니다.


똑같은 주연이라도 <이장과 군수>와 비교해 볼 때 캐릭터가 전환되었다는 점에서 남다를 것 같습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새롭게 생겨난 고민은 없나요?

연기에 대한 고민은 매 작품마다 항상 있어요. 하지만 특히 이번 작품은 극한에 처한 인물을 연기하다보니 전보다 더한 연기고민이 깊었던 게 사실입니다. 딸아이가 아픈데 수술비를 구해야 하고, 트럭에 실린 시체도 은폐시켜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 연쇄살인범과 동행을 한다는 설정이 연기로 풀어내는 데 있어 고민이 많이 됐어요. 한 가지도 버거운데 세 가지의 악조건을 안고 가는 사람의 심리는 어떤 것일까. 빠져나갈 구멍조차 없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부분이 힘들었습니다. 전체적인 맥을 이끌어 나가야 하고 예전보다 책임져야 할 범위가 넓어져서 다소 버거움을 느꼈죠.




지난 19일 열린 <트럭>의 기자간담회에서 유해진은 주연을 맡은 소감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의미심장하고도 유쾌한 답변을 들려줬다.


“데뷔작 <블랙잭> 트럭조수석에 앉은 지 11년 만에 트럭운전석에 앉게 됐습니다.”


유해진은 중학교 시절 연극배우 고(故) 추송웅 씨의 <우리들의 광대>를 보고 연극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집안의 반대로 군대에 다녀오고 나서야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할 수 있었던 그는 이후 ‘극단 목화’에서 다져진 연기를 통해 1997년 <블랙잭>으로 스크린에 첫 발을 내딛는다. 목화 출신 동료배우로는 손병호, 김병옥, 정은표, 성지루, 황정민, 박희순, 임원희, 장영남 등이 있다.

유해진은 <해안선>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공공의 적> <혈의 누> 등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특유의 역할을 통해 개성있는 조연배우로서의 입지를 넓혀간다. 그리고 한국영화의 흥행역사를 다시 쓴 <왕의 남자>로 제43회 대종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영화의 주 배경이 되고 있는 남사당패의 마당놀이는 육갑(유해진) 칠득(정석용) 팔복(이승훈)의 주무대였다. 이들의 질펀한 육담은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를 이끌어냈다.

이후 영화<타짜>의 소시민 타짜 고광렬을 거쳐 2007년 <이장과 군수>에서 차승원과 함께 타이틀 롤을 책임지는 주연으로 성장하게 된다. 현재 그는 <타짜> 최동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전우치> 촬영을 앞두고 강동원, 임수정과 함께 액션연마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쟁쟁한 연기자들을 배출한 극단 목화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왔습니다. 당시 ‘목화의 에이스’라 불리셨다죠? 스크린에서 이렇게 잘나가게 되리라고 예감했나요?

하하. 그런 거는 잘 몰라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달려온 거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성공을 못하더라도 열심히 했다’는 스스로의 만족감만 있으면 된다고 봐요. 더불어 성공을 하면 더 좋겠지만요. 촌놈이 잘되려면 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밖에 없어요. 제가 성공했다면 곁다리로 끼인 거죠.(웃음) 아직 뭐.. 성공을 했나요?


촌놈이라는 표현이 구수한데요.

촌놈들이 정감이 가는 면이 있어요. 무슨 말을 할까 기다려봤는데 별 얘기 안하고.(웃음) 때로는 촌스럽게 또 때로는 촌스럽지 않게. 그게 좋은 것 같아요.


<트럭>을 촬영하면서 틈날 때마다 실제 트럭을 몰고 나갔다가 돌아오곤 했다고 하던데 어디를 그렇게 갔다 온 건가요?

그냥 영화 촬영 들어가기 전에 촬영장 근처를 도는 정도였어요. 역할이 트럭운전수다 보니 내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수시로 연습을 했죠. 보통 작품을 하다보면 그 정도는 다 하니까요.


그동안 관객들을 웃겼고, 무섭게 했습니다. 울려볼 생각은 없나요? 멜로라든지..

그런 건 생각 안 해봤어요. 다음 작품 <전우치>도 울리는 역할은 아닌 것 같고.(웃음)



배우 유해진에게 요즘 신나는 일은 무엇인가요?

영화 개봉 때문에 초조하긴 하지만, 사실 신나기보다 행복하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배역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하고 싶은 연기와 작품을 했다는 게 무엇보다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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