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기와 제철 음식이 건네는 자연의 위로
- 냉이·달래로 몸 깨우고, 두릅·쑥으로 몸 열고
- 보리밥으로 기운 쌓는 봄이 성큼성큼
인터뷰365 신향식 칼럼니스트(/자연치유사) = 지금 독자들의 마음은 어떤 계절일까. 병상에 누워 있거나, 빚의 무게에 짓눌리거나, 억울한 법적 문제로 앞날이 보이지 않거나,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사연을 혼자 끌어안고 있을지도 모른다. 통장 잔고를 볼 때마다 한숨부터 나오는 이도, 이유조차 분명하지 않은 막막함 속에 갇힌 이도 있을 것이다.
겨울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해는 짧고, 바람은 매섭고, 마음마저 움츠러든다. “이 터널은 끝이 있긴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스며드는 계절이다.
그러나 자연은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아무리 혹독한 겨울이라도, 땅속 어딘가에서는 이미 봄이 준비된다. 얼어붙은 흙 아래에서 씨앗은 숨을 고르고, 나무의 끝에서는 보이지 않는 새순이 방향을 틀고 있다. 인간의 시간은 멈춘 듯 보일 때가 있지만, 자연의 시간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일주일 뒤면 입춘이다. ‘봄이 선다’는 날, 계절이 방향을 바꾸는 문턱이다. 옛사람들은 이 흐름을 ‘양춘(陽春)’이라 불렀다. 양기가 깨어나는 봄, 생명이 다시 위로 향하는 시간이다. 양춘은 입춘에서 곡우까지, 봄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이다.
자연은 이 시기에 우리에게 조용히 “이제, 조금씩 풀어도 된다”고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를 가장 쉽게 받는 방법이 바로 음식이다. 계절에 맞는 한 끼는 몸을 살리고, 몸이 살아나면 마음도 따라 일어난다.
입춘부터 곡우까지
양춘은 24절기 가운데 봄에 해당하는 흐름, 곧 입춘에서 곡우까지 이어지는 시간이다. 2026년의 양춘은 이렇게 펼쳐진다.
■ 입춘 - 냉이, 달래, 쑥 같은 봄나물
입춘은 2월 4일 수요일이다. 이름 그대로 ‘봄이 선다’는 날이다. 아직 찬 공기가 남아 있지만, 계절의 문이 바뀌는 첫 신호다. 이때는 냉이, 달래, 쑥 같은 봄나물이 좋다. 겨울 동안 묵직해진 몸을 깨우고, 간의 기운을 부드럽게 연다. 예로부터 입춘에 오신반을 먹은 것도 같은 이유다. 몸속에도 “이제 움직여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는 셈이다.
■ 우수 - 무국, 미나리국, 맑은 채소
우수는 2월 19일 목요일이다. 눈이 비로 바뀌는 시기다. 얼음이 풀리고, 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때는 따뜻한 국 한 그릇이 몸에 깊이 스민다. 무국이나 미나리국, 맑은 채소국이 좋다. 겨울 동안 쌓인 냉기를 걷어내고, 혈액과 기운의 흐름을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땅에 물길이 트이듯, 몸 안에도 순환의 길을 내는 음식이다.
■ 경칩 - 두릅, 씀바귀, 취나물 등 쌉싸름한 봄나물
경칩은 3월 5일 목요일이다. 땅속 벌레가 놀라 깨어난다는 뜻이다. 자연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라”고 신호를 보내는 때다. 두릅, 씀바귀, 취나물 같은 봄나물이 제격이다. 쓴맛은 몸속에 쌓인 묵은 노폐물을 밀어낸다. 겨울에 쌓인 피로와 답답함을 털어내는 데 이만한 음식이 없다. 몸도 자연처럼 기지개를 켜야 할 시점이다.
■ 춘분 - 달걀, 두부, 생선 등 담백한 단백질과 봄나물
춘분은 3월 20일 금요일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 음과 양이 균형을 이루는 날이다. 이 무렵에는 달걀, 두부, 생선처럼 담백한 단백질과 나물이 잘 어울린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음식보다,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식사가 좋다. 자연이 균형을 맞추듯, 몸도 균형을 회복하는 시간이다.
■ 청명 - 봄나물 비빔밥, 녹차 같은 가볍고 맑은 음식
청명은 4월 5일 일요일이다. 하늘이 맑아지고, 공기가 투명해지는 시기다. 쑥떡, 봄나물비빔밥, 녹차처럼 가볍고 맑은 음식이 어울린다. 겨울 동안 몸에 쌓인 탁한 기운을 씻어내고, 안과 밖을 동시에 환기하는 때다. 예로부터 이 무렵 성묘를 하며 마음을 정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곡우 - 보리밥, 콩요리, 제철 채소
곡우는 4월 20일 월요일이다. ‘곡식에 내리는 단비’라는 뜻이다. 이제 봄은 끝자락이고, 여름을 준비하는 시기다. 보리밥, 콩요리, 제철 채소가 좋다. 기운을 쌓아두는 음식이다. 씨앗이 비를 머금고 자라듯, 몸도 다음 계절을 위한 에너지를 저장한다.
‘막 돋아난 생명’을 먹고 계절에 몸을 맞춰라
양춘의 음식에는 공통점이 있다. 무겁지 않고, 생기가 있으며, 땅의 기운을 품고 있다는 점이다. 겨울의 기름진 저장식이 아니라, ‘막 돋아난 생명’을 먹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미각의 변화가 아니라, 계절에 몸을 맞추는 지혜다.
자연은 분명히 말한다. 겨울은 반드시 끝난다. 그리고 그 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 와 있다. 입춘은 달력 속의 날짜가 아니다. “이제 괜찮아질 차례야”라고 속삭이는 자연의 신호다.
이번 봄, 냉이 한 줌을 씻으며 “나도 다시 살아날 거야”라고 말해 보자. 따뜻한 봄나물국 한 그릇을 먹으며 “이 또한 지나간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보자.
얼어붙은 땅이 끝내 꽃을 밀어 올리듯, 당신의 삶에도 분명히 새순은 올라온다. 곧 봄이다. 독자들 인생에도,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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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향식 칼럼니스트
신문기자 출신 글쓰기교육 전문가이자 대한민국 1호 생애기록치유사다. 한 사람의 생애를 기록하여 삶의 의미를 회복하고 내면을 치유하는 새 영역을 개척했다. 조선미디어그룹 스포츠조선과 경향미디어그룹 굿데이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이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등에 교육, 글쓰기, 자연치유를 주제로 글을 발표했다. 연세대에서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하며 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그 논문이 서울대 1학년 기초필수 교재에 모범예문으로 수록된 것을 계기로 대학과 전국 주요 고교에서 학술적 글쓰기 초빙강사로 활동했다. 또, 하버드대, MIT, 베를린공대, 함부르크대 등 해외 대학의 글쓰기교육 현장을 취재하며 글쓰기 교육 방법론을 연구했다. 국제 바칼로레아(IB)가 한국에 본격 도입되기 이전부터 그 교육적 가치에 주목해 선구적으로 취재했다. 대치동에서 신문기자 출신 강사진으로 구성한 논술학원을 17년간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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