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시인의 좋은 시 365] 이복희 시인의 ‘오래된 거미집’
[김지수 시인의 좋은 시 365] 이복희 시인의 ‘오래된 거미집’
  • 김지수 칼럼니스트
  • 승인 202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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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인간 마음속 심상(心像)에서 피어나는 혼불과도 같습니다. 깊은 사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짧지만 응축된 언어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시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좋은 시와 함께 조용하지만 반짝이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복희시인 북토크에서 / 사진=김지수)
북토크에서 이복희 시인과 함께./ 사진=김지수 

오래된 거미집 / 이복희

창틀마다 물방울들 매달려 있어도
자식 없는 빈집일 뿐이다

세공사 손길이 다녀간 거미줄에
뭇별들을 걸어 두고서야
밤하늘에 지은 집은 완전한 집이 된다

꽁무니에서 흘러나온 초능력
네트워크를 이루는데 한 치 어긋남이 없다

직선이 난무하는 아파트 공사장에서
밤늦게 돌아온 아버지
자신의 집은 지을 줄 몰랐고
찢기거나 되엉킨 그물을 밤마다 수선하는 것은
어머니의 몫

거칠어진 어머니 무릎 서로 베겠다고
실랑이 벌이다 잠든 남매들 머리맡,
얼룩진 벽만 바라보다 떠난 아버지
눈치 싸움에 익숙해진 남매들은
다투는 일에 급급하다 그만,
잡아놓은 먹이조차 놓치곤 했다

줄줄이 매달렸던 물방울들
도시 속으로 모두 떠나고
빈집에서 홀로 생을 탕진한 늙은 거미
몸으로 쓴 시를 허공에 대다 걸고 있다

- ‘오래된 거미집’ (모악, 2022)

이복희 시인의 ‘오래된 거미집’은 가정과 가족의 해체를 ‘거미집’의 이미지로 형상화한 시입니다. 거미집은 한때 생명이 깃든 따뜻한 보금자리였지만, 이제는 ‘자식 없는 빈집’, ‘늙은 거미’만 남은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헌신’, 그리고 ‘남매의 다툼’은 산업화 시대의 가족 해체와 소통 단절을 상징합니다.

결국 시인은 거미의 생애를 통해 인간의 삶과 가족의 상처를 비유적으로 드러내며, ‘몸으로 쓴 시를 허공에 대다 건다’는 마지막 구절로, 삶의 덧없음 속에서도 존재의 흔적을 남기려는 생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이복희 시인은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화성시 동탄에서 살고 있습니다. 2010년 ‘문학시대’에 수필이 당선되고, 2022년 계간 ‘시에’ 가을호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었습니다. 시집으로 2022년 ‘오래된 거미집’을, 2024년 수필집 ‘내성천에는 은어도 별이 된다’를 펴냈습니다.

김지수 칼럼니스트

시인, 교수, 연기지도. 2023년 ‘월간 시’ 34회 추천 신인상으로 등단, 시담작가회 회장, [감성지수 시낭독회] 진행. 저서로는 시집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 된다』, 동인시집 『공감과 치유』, 『지구의 솜털을 숏커트로 잘랐다』, 『나 때와 라떼』, 『축봄합니다』 가 있으며,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에 다양한 언어로 번역 소개 됨. 상명대 영화과, 백제예대 연예매니지먼트과, 국제대 모델과의 겸임교수와 김지수 연기 아카데미 학원장을 역임했으며, 배우 권상우, 송혜교, 김선아, 남궁민, 아이유, 김다미 등 연기 지도. 저서 『대한민국에서 연예인 되는 법』이 있음. 현재 단국대 공연예술학부 연극과 초빙교수, 서울사이버대학교 성악과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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