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인간 마음속 심상(心像)에서 피어나는 혼불과도 같습니다. 깊은 사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짧지만 응축된 언어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시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좋은 시와 함께 조용하지만 반짝이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어금니를 뺀 날의 저녁 / 김성규
이를 빼고 난 후 혓바닥으로 잇몸을 쓸어 본다
말랑말랑하다 물고 있던 거즈를 뱉을 때 피 냄새
살고 죽는 것이 이런 것들로 이루어졌구나
내 삶이 가진 말랑함
어린 강아지를 만지듯 잇몸에 손가락을 대본다
한 번도 알지 못하는 감각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일들이 일어나서 살 만한 것인가
이빨로 물어뜯는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은 말한다
이를 잘 숨기고 필요할 때 끈질기게 물어뜯으라고
이렇게 부드러운 말 속에
피의 비린 맛이 숨어 있다니
그러나 그들은 늘 자신의 것을 놓치지 않는다
이제는 살고도 죽고도 싶지 않은 나이
오늘도 나는 시장에 간다 뺀 이를 다시 사고 싶어
그러나 내 잇몸에 맞는 것은 없고
구름이 핏빛 솜뭉치로 보인다, 라는 구절을 생각해본다
울고 있는 갓난아이와 유모차를 밀며
늙어 죽어가는 노인의 얼굴이 겹쳐진다
먹고 살고 있지만, 또 먹을 것이 있을지
불안 속에서 죽어가야 하다니
시를 쓰던 시간은 지나고
살아 있는 모두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은 밤이다
잇몸으로 고기를 핥으며
오직 뒹굴고 더럽혀져 구걸해야 할 시간이 남았음을 알고 있기에
- 한영시집 '자살충' (아시아, 2021)
김성규 시인은 1977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독산동 반지하동굴유적지’로 등단했습니다. 그는 일상의 작은 순간 속에 스며 있는 재난과 고통, 상처와 아픔을 섬세한 서정성과 절제된 감각으로 포착하는 시인입니다. 그의 시에는 삶의 부조리와 인간 존재의 나약함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이 있지만, 동시에 그 상처를 감싸는 따뜻함과 가족·일상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함께 흐릅니다.
대표 시집으로는 ‘너는 잘못 날아왔다’,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 가나’, 한영시집 ‘자살충’, ‘따뜻한 이불을 덮고 주무세요’ 등이 있으며, 신동엽문학상, 김구용시문학상, 박영근작품상, 아름다운작가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그는 2016년부터 출판사 걷는 사람의 대표로 활동하며, 시와 에세이와 소설을 꾸준히 소개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김성규 시인은 “일상의 무수한 무의미 속에서 가치를 발견해내는 일”이 문학의 본질적 역할이라고 말하며, 그 신념을 작품과 출판 활동 속에서 성실히 실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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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칼럼니스트
시인, 교수, 연기지도. 2023년 ‘월간 시’ 34회 추천 신인상으로 등단, 시담작가회 회장, [감성지수 시낭독회] 진행. 저서로는 시집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 된다』, 동인시집 『공감과 치유』, 『지구의 솜털을 숏커트로 잘랐다』, 『나 때와 라떼』, 『축봄합니다』 가 있으며,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에 다양한 언어로 번역 소개 됨. 상명대 영화과, 백제예대 연예매니지먼트과, 국제대 모델과의 겸임교수와 김지수 연기 아카데미 학원장을 역임했으며, 배우 권상우, 송혜교, 김선아, 남궁민, 아이유, 김다미 등 연기 지도. 저서 『대한민국에서 연예인 되는 법』이 있음. 현재 단국대 공연예술학부 연극과 초빙교수, 서울사이버대학교 성악과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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