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현장] 한국영화 100년과 검열의 역사...김수용 감독 "검열 없었다면 50년 전에 봉준호 탄생"
[365현장] 한국영화 100년과 검열의 역사...김수용 감독 "검열 없었다면 50년 전에 봉준호 탄생"
  • 박상훈 기자
  • 승인 201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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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기획전시 간담회에 참석한 (왼쪽부터)김수용 감독, 이장호 감독, 김종원 영화사학자/사진=한국영상자료원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기획전시 간담회에 참석한 (왼쪽부터)김수용 감독, 이장호 감독, 김종원 영화사학자/사진=한국영상자료원

[인터뷰365 박상훈 기자]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와 함께한 검열의 역사가 최초 공개된다. 내부에서는 '심의'라 부르고 외부에서는 '검열'이라고 불리며 암흑기를 거친 한국영화의 삭제 필름, 검열 서류가 한국영상자료원 기획 전시를 통해 빛을 보게 됐다.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기획전시 간담회에는 김수용 감독, 이장호 감독, 김종원 영화사학자, 김소연 큐레이터가 참석했다.

1919년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한국영화는 탄생의 순간부터 통제와 간섭의 대상이었고 전쟁, 군사 정권기를 거치며 긴 시간 권력의 통제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한국영화 검열제도의 변천사와 그 영향을 소개하고자 기획된 이번 전시에서는 검열 서류, 관계자 증언 영상 등의 풍부한 자료를 토대로 1920~90년대 한국영화계의 그늘진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기획전시 간담회에 참석한 김수용 감독/사진=한국영상자료원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기획전시 간담회에 참석한 김수용 감독/사진=한국영상자료원

1950년대부터 검열을 몸소 겪은 김수용 감독은 '도시로 간 처녀'(1981), '만추'(1982) 등을 비롯해 100여 편이 넘은 영화를 연출한 영화계 원로다.

김 감독은 "1958년에 첫 영화를 찍었다. 검열로 잘린 필름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며 "영화만 만들면 자르라고 하더라"고 회상했다.

이어 "억울한 것은 그때 검열한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기준으로 자기 고집과 신념으로만 영화를 검열했다. 영화를 영화 자체로만 보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검열이 한국영화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우리 영화는 50년은 더 앞질러 갔을 거다. 아마 봉준호가 50년 전에 태어났을 거다"라며 "봉준호 감독에 앞서 유현목, 김기영 감독 등이 있었는데 검열이 가로막았다"고 밝혔다.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기획전시 간담회에 참석한 이장호 감독/사진=한국영상자료원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기획전시 간담회에 참석한 이장호 감독/사진=한국영상자료원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어둠의 자식들'(1981), '바보 선언'(1983) 등을 통해 1980년대 청년문화의 신화를 연 이장호 감독은 "한국영화는 태어나서 성장할 때까지 계속 얻어맞고 자랐다. 결국은 견뎌내서 지금의 번영을 이뤘다"며 "몹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흙수저'의 자수성가라고 표현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늘 검열당했지만 영화를 만들면서는 일부러라도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썼다"며 "영화를 만들기도 전에 '이건 안 되겠구나' '못하겠구나' 라는 잣대를 스스로 내려버리면 햇빛을 못 본다. 스스로 검열하는 처지가 되면 위험하다"고 털어놨다.

또 이장호 감독은 "검열은 권력 체계에 손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 시작했을 텐데, 노골적으로 이념이나 사회적 모순, 부조리를 파헤치는 것만 하다 보면 졸렬해 보이니까 성적인 것 등 여러 가지를 복잡하게 넣어서 자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기획전시 간담회에 참석한 (왼쪽부터)김소연 큐레이터, 김수용 감독, 이장호 감독, 김종원 영화사학자/사진=한국영상자료원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기획전시 간담회에 참석한 (왼쪽부터)김소연 큐레이터, 김수용 감독, 이장호 감독, 김종원 영화사학자/사진=한국영상자료원

이장호 감독은 검열 기준에 드러난 난센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사극이 아닌데 영화에 초가집이 나오면 잘렸다. 새마을 정책 이후에 초가집이 없어졌는데 왜 나오냐는 것이다. 초가집이 있으니까 찍은 건데"라고 말했다.

또 "'바람 불어 좋은 날'에 '영자를 부른 거냐, 순자를 부른 거냐' 라는 대사가 있는데 '순자'만 잘라달라더라. 난 그때까지 전두환 대통령 부인이 순자인지 몰랐다. ㅅ 발음을 잘라서 '운자'로 만들었는데 직접 들으면 '순자'인지 '운자'인지 구분이 잘 안됐다. 개봉 후에 관객들이 그 장면에서 폭소가 터지더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정도 감각과 의식을 가지고 검열했으니 얼마나 엉터리였겠느냐"고 덧붙였다.

이 감독은 검열이 없는 이 시대에는 감독만의 검열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감독들은 너무 자유 방임상태다. 도덕적인 기준과 국민 문화 의식에 맞게 스스로가 검열 기준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기획전시를 둘러보는 김수용 감독/사진=한국영상자료원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기획전시를 둘러보는 김수용 감독/사진=한국영상자료원

영화평론가이자 심의위원으로도 활동한 김종원 영화사학자는 "전 세계에서 영화 심의가 없는 나라는 없다. 성적으로 가장 개방된 스웨덴에도 영화 심의는 있다. 문제는 일제강점기의 활동사진 검열규칙에 따른 잣대로 계속 심의를 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5공화국 때 극심했던 한국 영화 검열제도가 바로 일제강점기 아래서 시행됐던 검열의 틀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며 "영화 검열의 본질은 청소년을 관람환경에서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기획전시를 둘러보는 (왼쪽부터)이장호 감독, 김종원 영화사학자/사진=한국영상자료원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검열을 딛고 선 한국영화 100년' 기획전시를 둘러보는 (왼쪽부터)이장호 감독, 김종원 영화사학자/사진=한국영상자료원

전시에는 영화 '오발탄' (1961, 유현목), '7인의 여포로'(1965, 이만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1981, 이원세), '바보들의 행진'(1975, 하길종), '도시로 간 처녀'(1981, 김수용) 등 주요 검열 대상 작품들의 장면 삭제 사유를 확인할 수 있는 검열 서류가 공개된다. 

김수용, 이장호, 이원세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과 1950~70년대에 활동했던 검열관의 증언 영상도 함께 전시된다.

특히 1950~90년대 한국영화 속 검열 삭제 장면이 이번 전시를 통해 최초로 공개된다. 이는 자료원이 별도 보관 중이던 필름 자료들을 디지털화 한 것으로, 1970년대 검열실을 재현한 공간에서 영상 전체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는 2020년 3월 22일 까지 서울 상암동 한국영화박물관에서 열린다.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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