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시나리오 검열’ 받는 곽경택감독(하)
아버지의 ‘시나리오 검열’ 받는 곽경택감독(하)
  • 이희승
  • 승인 201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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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시나리오 얘기 때는 긴장하고 무장한다”

【인터뷰365 이희승】12년 만에 ‘친구2’를 찍은 곽경택 감독은 ‘핏줄로 이어진’ 모니터요원을 두고 있다. 바로 아버지와 아들이다. 인터뷰(상)에서의 영화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는 아버지에 대해 물었다.


아버지 이야기를 안 물어 볼 수가 없다. 게다가 아들도 곽 감독을 자극하는 존재라고 알고 있다. ‘친구2’는 어떻게 보면 아버지에 대한 오마주인가.
(잠시 침묵) 아버지의 시대는 내가 살았던 시대같이 머릿속에 항상 있다. 평안남도 출신인 아버지는 17살 때 혼자 피난 와 34살 때 나를 낳았다. 그 때까지 경험한 오만가지 고생은 말로 할 수 없다더라. 난 집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날 받았다. 그 어린 청년의 꿈은 다시 고향에 가 의사를 하는 거였다. 이북 사람들은 훨씬 자유스러워서 경상도 아버지의 엄함과는 좀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이북이 개화속도도 빨랐으니까. 훈육과 규칙은 있었지만, 아버지 하고 맨날 아침 밥상에서 이야기 했던 기억이 있다. 주말 정도는 친구들하고 놀 법도 한데 항상 가족들과 여행을 가셨다. 내가 지금도 아버지를 가장 존경하는 점이 바로 그거다. 그런 고마운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다니던 의대나 때려치우고...(웃음)


대신 영화 ‘닥터K ’찍었잖나.
흥행을 못해서 더 대못을 박았다. 아무튼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내가 하고픈 일을 하게끔 끝까지 밀어주신 분이니만큼 당연히 지금까지 시나리오 검열을 받는다.(웃음) 아버지가 워낙 논리가 강한 분이어서 어떤 시나리오 회의를 할 때보다도 많은 긴장과 무장을 하는 편이다. ‘친구2’의 경우엔 아버지와 결말에 대한 고민을 같이 많이 했다. 성훈이가 복수를 하는 부분에서 아버지는 ‘동기’가 없다고 주장하고, 나는 비록 추억은 없지만 유전자를 준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강조하고. 아버지 앞에서 됐다고는 했지만 결국엔 너무 찝찝해서 성훈이가 테러 당하는걸 찍긴 찍었다. 전체적으로는 빠져도 될 것 같아 넣진 않았지만. 항상 시나리오를 보내드리는데 언제나 너덜너덜해져 있다.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면서 불필요한 건 쳐내고, 건질 건 건진다.


아들은 뭐라고 하나.
아이들이란 존재는 참 재미있는 게, 크니까 모니터링이 된다는 거다.(웃음) 성인이 되니까 이것들이 편집본을 보여달라는 거야. 2시간 36분짜리 현장 촬영분이 있어서 어차피 덜어낼 걸 확인도 할 겸 같이 봤는데, 우빈이의 감정을 따라 가더라고. 지금 군대에 간, 산업디자인 전공한 큰놈이 다 보고 나더니 “마음 편하게 갔다 오겠다. 아빠 영화지만 좀 어색하다 싶은 건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는데 ‘친구2’에서는 그런 게 없었다”고 했다. 신문방송학과를 전공하는 딸은 재미있게 보더라. 우리 아버지가 나를 그렇게 키웠듯이 아이들이 행복한 일을 찾으면 그게 감사한 일이지. 영화나 연기에 관심을 보이진 않더라.


과경택 감독은 ‘친구2’를 통해 그동안 멀어졌던 친구 유오성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싸인회장에서나 촬영장에서나 늘 함께 했다.


훈훈한 가족이다.
그 행복에 항상 변수가 되는 게 나다.(웃음) ‘친구2’를 찍기로 하고 배우 캐스팅을 고민하고 있을 때 아내가 해결을 해주더라. “어휴, 나이 먹고 누구 미워하는 사람 마음속에 넣고 있으면 불편하지 않아요?” 하더라. 먼저 오성이게 손 내밀라는 소리였다.


어떻게 손을 내밀었나.
나도 사람인데 영화 초반의 기 싸움이 왜 없었겠나. 그게 프리 프로덕션 때 무너졌다. 갑자기 못 알아듣는 소릴 하는 거다. 그때는 가볍게 한잔 한 상태였다.


뭐라던가.
옆에 앉더니 “스콜세지가 나를 버렸거든.” 이러는 거다. 내가 대뜸 “뭔 소리고?”했더니, 남들은 어떻게 날 볼지는 몰라도 자신은 로버트 드니로가 되고 싶었다는 거야. 나는 내 인생의 스콜세지를 만났다고 생각했다고. 취중에 그 이야길 하는 오성이를 보니 내 입장만 생각했구나를 처음으로 느꼈다. 마음이 그렇더라고.
두 번째는 촬영 중간에 내가 어쩔 수 없이 카메라를 올리거나 내릴 때 살짝 고개를 맞춰달라고 했다. 너는 하이 앵글로 잡는 게 잘 나온다고. 그랬더니 픽 웃는 거야. 살짝 기분이 나빠져서 “와?” 그랬더니 “내 생김새 가지고 어디 무슨 앵글이 좋다는 감독이 없었거든” 하더라. 그래서 이놈이 자신을 알아주는 감독과 일을 못해봤구나 싶어서 마음이 좀 아렸다. 그래서 내가 정말 너를 빛나게 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찍었다. 지금은 서로 인터뷰를 하다 만나면 의상도 체크해주고...편해졌다.


영화 ‘태풍’의 이야기를 해보자. 블록버스터급으로는 최초로 탈북자, 이념 차를 다룬 영화였다. 요즘 영화계에 자주 소재로 등장한다. ‘동창생’부터 곧 개봉을 앞둔 ‘용의자’까지.
지금의 이런 현실이 정말 좋고, 환영한다. 그 당시에는 자료를 구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탈북자에 대한 신을 찍는데 배우만 우리나라 사람이지 정서는 전혀 다른 나라로 여겨졌다.
탈북자가 많아지고 대한민국 사회에 자연스럽게 흡수, 동화가 되면서 그들의 이야기도 재미있으면 볼 만하다고 생각하게 됐다는 건 고무적인 거다. 그들이 더 이상 뭔가 불편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거지. 실향민 아버지를 둔 나로서는 일단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라고 본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태풍’은 온갖 악재를 견딘 영화다. 쓰나미도 피했고, 대규모 현장 화재로 규모에 비해 피해 소실이 기적 같은 부분도 있었고.
사람만 안 죽었지 돈으로 다 작살난 영화다. 흥행도 부족한 부분이 많았잖나. 그때 화재 빚을 아직까지 갚고 있다. 정말 ‘태풍’은 나한테 너무너무 큰 시련을 아직까지 주고 있다. 소중하지만 아픔을 준 존재다.


그런 고생에도 계속 영화를 찍는 원동력은 뭔가.
그런 표현조차 고급이다.(웃음) 생존 전략이 좋은 편이라고 하고 싶다. 적은 돈으로 버티는 스킬 같은 것.(웃음) 아버지가 학비는 주지만 유학생 중에 제일 못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유학을 보내주셨다. 유학생 중에서는 가장 못 살아야 한다는 상대적 열등감을 주셔서 돈 가지고 버티는 힘을 길러주신 것과 엄마의 낙천적인 성격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어머니 덕에 ‘또 해보지 뭐’라고 생각하게 된다.(웃음) 그리고 자꾸 부모님 이야길 해서 그렇지만 아버지가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다. 재미있는 영화는 네가 안 봤더라도 보고 온 놈이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재밌는 거라고. 그만큼 스토리가 중요하다는 거다.
누가 보면 부모 잘 만나 공부 한 것처럼 받아들일까봐 조심스럽지만, 뉴욕대 커리큘럼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곽 감독의 영화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그 ‘진행’에는 항상 아버지가 함께 하고 있다.


죽어라 글만 썼다고 들었다.
4년 내내 글만 썼다. 매 학기 들어야 하는 학점에 졸업까지 날 괴롭힌 과목이기도 하다. 영어로 그것도 매일 써야 하는 트레이닝이 큰 도움이 됐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게 하기보다는 좋은 시나리오를 쓰게 만드는 분위기가 많은 도움이 됐다. 그때 배운 건데, 좋은 시나리오는 좋은 캐스팅을 부르고, 좋은 배우들은 완벽한 투자를 받아내고, 투자가 좋으면 원활한 배급이 가능하다는 거다. 실전에서 단 한 번도 틀려 본 적이 없다. 좋은 투자가 먼저 이뤄지면 위험하고, 좋은 캐스팅은 도리어 영화가 안 될 때가 많았다. 반면에 좋은 시나리오는 그 이야기에 동의 해주는 강력한 배우만 장착하면 투자가 따라오게 되어 있다.


유학시절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늦은 나이의 유학이라 고생도 많았는데 겉으로는 부자 부모 덕에 뉴욕대에서 공부한 감독으로 알려져 있지 않나.
바빴다. 생활비가 부족했으니까 언제나 돈을 벌어야 했다. 수업이 끝나면 육아도 함께 해야 해서 시간이 빠듯했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유학생끼리 하는 파티를 딱 한 번밖에 간 적이 없다. 늙다리 복학생 분위기의 유학생이었던 거지.


그 한번이 궁금하다. 언제나 그 순간에서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좀 나이가 먹은 상태에서 영화를 시작했어도 ‘그래도 내가 이 사람들 보다 낫구나’를 느끼게 해 준 사건이 있었다. ‘스몰 깐느’라고 불리는 클레르몽 페랑 영화제에서 동양인 최초로 대상을 탄 감독이 미국에 온다는 거다. 당시 나보다 2, 3살 위인 변혁 감독이 만든 ‘호모 비디오쿠스’라는 영화였는데, 영화학도들이 난리가 났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끼고 싶어서 갔더니, 한인식당에 죽 앉아서 유학생들이 너무 무게를 잡고 난 척을 하고 있는 거다. 그 당시에 내 이미지는 좀 덜떨어져 보이는...그런 거였다. 애도 있다고 그러지, 모임엔 안 나오지 돈은 없어 보이지.
내 입장에서는 축하해주고 배워야 할 자리에 유학생들이 선배를 앉혀놓고 오버를 하고 있나 싶어서 웃자는 얘기로 “감독님 영화는 호모에 대한 이야기인가 보죠?”라고 했더니 단 한 명도 웃질 않더라. 그래서 계속 ‘무게나 잡고 살아라’ 라면서 나왔다. 나중에 변혁 감독과 그때를 추억하며 오해를 풀었다. 실제로 만나보니 무척 유쾌하고 재미있더라.
그 당시의 경험이 무척 중요했던 게 영화라는 척박한 현장에서 전면전으로 뛸 때는 부유한 부모 밑에서 자란 유학생보다 교포들이 더 우수하다는 거였다. 실제로 교포들과 더 친했는데, 같이 일 해보면 끝까지 간다. 나도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라 돈보다 사랑을 더 나누고 물려줘야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기도 했고.


마지막으로, ‘친구2’ 때문에 그동안 준비 중이던 작품이 잠시 중단됐다고 들었다. 언제 만날 수 있나.
총 세 가지가 있고 구체적인 시나리오가 두 편 정도 있다. 40대 중반에 알츠하이머를 겪으며 무너지는 중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 하나 있다. ‘미인도’ ‘킬링 바이블’의 한수련 작가가 맡았다. 또 타이틀은 ‘적’인데 계속 내용이 바뀌는 작품이 하나 있고. 이번에 ‘친구2’를 찍으며 철주(주진모)의 이야기를 조사하다 만났던 부산의 전설적인 형사 한 분의 실화도 준비 중이다. 이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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