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최초의 거물 신상옥 ①> 충무로에 내일은 없다.
<한국영화 최초의 거물 신상옥 ①> 충무로에 내일은 없다.
  • 황기성
  • 승인 2007.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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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장 우뚝한 감독이고, 제작자였다. / 황기성


[인터뷰365 황기성] 영화와 신상옥 감독을 분리해서 생각하거나 설명하는 것은 의미도 없고 방법도 없다. 그를 기념하기 위한 <신상옥 최은희 기념사업회>가 발족했고, 지난 11월27일 서울 세종호텔에서 신상옥의 <난 영화였다.> 최은희의 <최은희의 고백> 두 권의 책에 대한 출판기념회가 성대하게 치뤄졌다. 출판기념회장에는 전 감사원장이던 한승원, 정치인 정대철, 소설가 한운사, 최인호 등 신감독 생전의 지인들과, 신필름에서 인연을 맺었던 이장호감독 등 많은 영화인들이 참석했었다. 인터뷰365는 몇 회의 걸쳐 ‘한국영화 최초의 거물, 신상옥 감독’과의 추억을 나누려고 한다.


그가 최인규 감독의 문하에서 출발하여 해방과 6.25전쟁, 5.16을 거치며 충무로 최초의 메이저 영화사였던 <신필름>에 이어, 평양에 납치되어 영화를 만들던 <평양신필름> 7년, 탈북 후 미국 허리우드에서 보낸 <신상옥 프로덕션> 시기를 지나, 충무로로 돌아와 신필름 간판을 다시 걸고 몇 작품을 시도 하다가 연로하여 타계하기까지 신상옥 감독의 일생을 되씹어 보면 <영화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환경>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는, 극도로 열악한 영화적 환경, 특히 척박한 ‘정치적 환경’으로 인해 좌충우돌해온 영화인들의 상처 위에 쓰여진 기록이다. 이 어려운 역사의 2/3를 , 닥치는 문제마다 피하지 않고 온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온 영화인. 나는 이 투사 같은 이름을 신상옥이라 정의한다.

이제 나는 신상옥이 남긴 필름만을 보고 작가정신이니 예술성 운운하는 것은 영화가 무엇이고 어떤 괴물인지를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제작자 없이 영화가 없음에, 그는 가장 큰 제작자였고, 감독이 없는 제작자가 없음에, 그는 우뚝한 감독이었다.


<지옥화>를 비롯하여, <쌀>, <상록수>,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열녀문>, <벙어리삼룡>, <빨간마후라>, <연산군>, <내시>등, 수많는 영화에 제작자와 감독을 겸임 했을 뿐 아니라 한국은 물론 아시아 영화계를 대표하는 최초의 거장으로 세계속에 각인된 감독이 바로 신상옥 이었다.


영화인 신상옥을 당신이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몇 꼭지의 추억을 남기려 마음먹고 우선 아주 작은 이야기 하나를 전하고자 한다.


우선, 신상옥은 낙천가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얼굴을 찌푸리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꽈당!” 하는 큰 소리가 나지 않을 뿐 기업이 부도가 난다는 것, 부도가 나면 빚쟁이들이 어떻게 밀려오는지, 그리고 어떤 난장판이 벌어진다는 건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구경이라도 하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그날, 200명의 유급사원을 거느리고 있던 한국의 유일한 메이저 영화사 ‘신필름’에 수표 부도가 났다. 회사는 일순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 고함을 지르는 사람도 울부짖는 사람도 있었다. 영업부, 경리부는 정신없이 바쁘고, 폭풍이 몰고간 회사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회사가 조용해지자, 빚쟁이들을 피해 3층 기획실 내 옆 자리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신감독이 벌떡 일어나면서 나를 불렀다.


“야. 박 선생 댁에 가자!”


회사가 부도나는 날에, 신필름의 주인이었던 신상옥 감독 입에서 나온 이름은 난데없는 ‘월탄 박종화’ 선생이었다. 물론, 부도라는 큰 사건이 없었다면 난데없는 일은 아니다. 기획실장이었던 나는 벌써부터, 박종화 선생 원작권에 관한 문제를 여러번 회사에 제기를 해 두었던 터였다. C신문에서 연재소설로 독자가 많이 있었던 박종화 선생의 소설 <다정불심>에 대한 영화 판권을 우린 이미 확보하고 있었다. 신상옥 감독은 <다정불심>을 몹시 영화화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각색까지 이미 모두 끝나 있었지만, 제작비가 많이 드는 관계로 미루러 오다가 어느새 원작계약기간이 만료가 되었고, 게다가 회사는 부도까지 나 버린 것이다.


하지만, 신문을 집어 던지고 일어선 신상옥감독의 표정은 밝고 명랑해 보였다. 부도 따위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 같았다.


“알겠습니다!”


나는 약속이라도 했던 것처럼 서랍에서 원작계약서를 쥐어들고, 복도를 뛰어내려와 대기 해 있던 빨간색 감독 전용차에 올라탔다. 용산 문배동 사무실을 빠져 나와, 계약서에 쓰여 있는 주소를 찾아 종로구 평창동 박종화 선생 댁으로 가는 사이, 나는 모처럼 예고도 없이 찾아가는 대감독 신상옥이 맨손으로 낯선 선생 댁을 방문한다는 것이 걱정 되었다. ‘화분이라도 하나 들고 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기획실장도 돈이 없고 이 대감독 역시 평생 주머니에 돈을 넣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고민 끝에 조심스레 이 문제를 말씀드리자, 유쾌한 왕초 신상옥 감독에게서 빛나는 아이디어가 튀어 나왔다. 그는 지갑 속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한국영화 제작가협회. 회장 신상옥>이었다. 그가 명함을 보여주며 나에게 전략을 말해주었고, 그 말에 우리 둘은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왕초의 아이디어가 너무도 걸작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길가에 커다란 꽃집 하나를 발견하고 그 앞에 차를 세웠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화들짝 웃으며 인사를 하고 꽃집에 들어갔고, 나는 화분하나를 얼른 집어 들고 나왔다. 주인도 반겨주었다. 대 신상옥 감독을 몰라보면 간첩 아닌가? 신상옥 감독은 그러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얼른 명함에 금액과 싸인을 날려 주인 앞에 주었다. 주인은 얼떨결에 당했고, 작전이 끝나는 데 까지는 2분이 넘지 않았다.


마치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의 콤비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처럼 우리 둘은 순식간에 ‘한탕’을 해치워 버린 것이다. 차를 타고 오면서 우리는 낄낄거리며 한참을 웃었다.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지금도 그 일이 떠오르면 웃음이 터진다.


그 강탈한 화분을 들고 찾아간 월탄 박종화 선생 서재에서 받은 차의 맛과 그 풍경은 아직도 내 생애 최고급의 맛으로 기억된다. 옛날의 양반 선비가의 풍모와 정서가 바로 거기 있었고, 이날에 각인된 월탄의 풍모로 나는 그 선비를 두고두고 흠모하게 되었다. 그날 월탄은 흔쾌히 이렇게 말했다.


“내 졸작을 훌륭한 감독 신상옥 선생께서 영화로 만들고 싶어 하신다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지 그 계약서 종이에 쓴 날짜가 무슨 소용인가요. 사례금은 이미 받지 않았나요. 허.허.허.”


영화를 위해서라면 모든 고통까지를 즐거움으로 소화할 수 있었던 신상옥의 영화 열정과 투지 앞에 현실의 애로사항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회사의 부도는 수습되었으며 , 그 후 신상옥 감독은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어 내었다.


물론, 월탄 박종화 원작의 영화 <다정불심>또한 김진규, 최은희, 박노식 주연으로 완성되어졌고, 작품과 흥행 모두 성공함으로 그 날, 월탄 선생이 보여준 큰 아량에 대한 인간적 은혜 또한 갚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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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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