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치즈 아버지' 지정환 신부 선종...불모지에서 일군 치즈 기적
'임실 치즈 아버지' 지정환 신부 선종...불모지에서 일군 치즈 기적
  • 김리선 기자
  • 승인 2019.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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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전주교구
지정환 신부/사진=천주교 전주교구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국내 치즈 산업을 일군 '임실 치즈의 아버지' 지정환(디디에)신부가 13일 오전 9시 55분 숙환으로 선종했다. 향년 88세.

1931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지정환 목사는 1954년 루뱅 예수회 성 알베르토 신학과에 입학, 1958년 4월 사제서품을 받고 그해 7월 신학교를 졸업했다. 

이듬해인 1959년 7월 영국 런던대학 한국어학과 1년을 수료한 후 같은 해 12월 처음 한국 땅을 밟은 뒤 천주교 전주 교구 소속 신부로 활동했다. '정환'이란 이름은 '정의가 환하게 빛난다'는 의미다. 그의 한국 성은 본명 디디에와 비슷한 '지'로 정했다. 

지 신부는 1964년 임실 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후 척박한 농촌에서 굶주림으로 힘겹게 살고 있던 주민들을 보고 치즈 제조에 관심을 갖게 됐다.

농가 소득을 위해 처음엔 완주군의 한 신부로 부터 선물 받은 산양의 젖을 팔기 시작했다. 팔리지 않은 많은 양의 산양유가 버려지자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떠올린 것이 치즈였다. 당시 한국에선 치즈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시기였다.

마을 청년들과 협동조합을 만들어 치즈 제조에 돌입했지만,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야했다. 전문적인 치즈 제조 지식이 없었던 그는 실패를 거듭했고, 직접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치즈 공장을 찾아다닌 끝에 힘겹게 핵심 비법을 배울 수 있었다. 1969년,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임실치즈가 탄생된 순간이었다.

지 신부는 유럽 장인들의 치즈 비법을 아낌없이 전파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낙농업의 불모지였던 임실군은 한국 치즈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지 신부는 치즈 산업 육성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1980년대 부터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재활공동체 '무지개의 집'도 만들었다. 2002년 한국 치즈 산업에 기여하고 장애인 복지에 헌신한 공로로 호암상을 받았으며, 2016년엔 법무부로 부터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받았다.

빈소는 전주시 완산구 서노송동에 위치한 전주 중앙성당이다. 장례미사는 4월 16일 오전 10시에 진행된다.

장지는 전주 치명자산 성직자 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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