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생활연극 '맹진사댁 경사'에 출연하는 70년대 배우 이화시
[인터뷰] 생활연극 '맹진사댁 경사'에 출연하는 70년대 배우 이화시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8.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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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김기영 감독의 페르소나로 활동하다 캐나다로 이주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심사위원 위촉...긴 공백 깨고 활동재게
-"연기의 기본인 연극에서 기초 다져 영화에서 못 다한 배우의 꿈 펴겠다"
1970년대 김기영 감독의 페르소나로 '이어도', '반금련', '혈육애' 등에 출연했던 배우 이화시가 생활연극 '맹진사댁 경사' 무대에 오른다./사진=한국생활연극협회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김기영 감독의 페르소나였던 왕년의 배우 이화시(1952~)가 사단법인 한국생활연극협회가 창립 기념으로 공연하는 생활연극 '맹진사댁 경사'에 연극배우로 데뷔한다. 아마추어 연극에 프로 영화배우가 출연하는 것은 이색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오영진의 원작의 이번 공연은 연극계의 중진인 김도훈 연출가를 초빙하여 직장인, 주부, 학생 등 일반인들이 대학로 무대에 서보는 생활연극프로젝트의 하나로 1월 27일(오후 5시), 28일(오후 3시, 6시) 대학로 대로변의 소극장 공간 아울에서 막을 올린다. 

이 공연에서 맹진사의 부인 한씨 역을 맡은 이화시는 젊은이들도 버거운 강행군 연습을 불평 한번 없이 땀 흘려 해내고 있다. 서울 용산의 예술창작센터에서 연습 중인 이화시 배우를 필자가 만났다.

-1970년대 김기영 감독에게 발탁되어 여러 작품에 출연했던 영화배우가 아마추어 연극공연에 참여한 동기가 궁금합니다.

캐나다에 이주해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 몇 작품에 출연 섭외를 받고 일하면서 겪어 보니 모든 여건이 1970~80년대 활동하던 그 시대와는 바뀌어 있었어요. 저도 현역들과 어울려 활동하려면 재충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지요. 영화나 드라마 쪽에서도 배울게 많겠지만 연기의 정수인 연극에서 기초부터 차근차근 익히고 싶었어요. 그런데 기성 극단에 가면 자칫 따라가기 힘들 수도 있고 민폐가 될 수도 있어 망설였는데 우연찮게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정중헌 조선일보 영화 기자께서 한국생활연극협회를 창립하여 생활연극을 한다고 해서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덤벼들었어요. 제게 이런 소중한 기회를 가져다준 인연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2017년 10월 12일.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김해공항에서 내려 해운대로 가는 리무진버스 안. 옆 좌석에 앉은 KBS 파리특파원 출신의 지종학 선배가 여배우 한 명을 소개했다. 그가 이화시였다. 1975년부터 영화기자를 했던 필자는 배우의 얼굴은 기억이 안 나도 '이화시'라는 예명은 생각났다.

즉시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이화시. 본명 이경덕. 1952년 7월생. 1976년 영화 '혈육애'로 데뷔.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부문 심사위원. 

이것이 경력의 다였다. 그 밑에 최근 출연한 영화 '귀향'(2009), '간증'(2011), '배우는 배우다'(2013), '조류인간'(2015) 등의 포스터가 실려있었다.

그날 저녁, 해운대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개막식 현장. 필자는 이석기 감독과 함께 명패가 붙은 지정석에 앉았다. 그런데 잠시 후 필자 옆 좌석에 이화시 배우가 와 앉는 게 아닌가. 이런 우연 덕분에 필자는 이화시 배우와 짧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고, 막연히 서울 올라가면 식사 한번 하자면서 헤어졌다.

며칠 후 이화시 배우에게서 전화가 왔고 세종문화회관 지하 식당가에서 만나 점심을 하고 커피도 같이 마셨다. 이날 필자는 이화시 배우에게 사단법인 한국생활연극협회를 만든 취지를 설명하면서 창립 기념으로 직장인, 주부 중심의 생활연극으로 대학로의 중진 김도훈 연출가를 초청하여 오영진 작 '맹진사댁 경사'를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한다는 얘기를 곁들였다.

그런데 이화시 배우가 "저도 출연하게 해주세요"라며 참여 의사를 비쳤다. 처음에는 농담이려니 했는데 그 태도가 매우 진지했다. '아마추어 연극'이라는 점을 강조했는데도 그는 “캐나다에서 돌아와 영화 몇 편에 출연하면서 제가 데뷔하던 1970년대와는 제작 방식이나 기술 등 여건이 많이 바뀐 걸 느끼고 저도 뭔가 새롭게 연기의 기초를 배우고 싶었는데 연기의 기본인 연극을 통해 그 갈증을 해소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런 연유로 이화시 배우는 수은주가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한 겨울에 분당서 서울 대학로까지 먼 길을 마다않고 주 3~4회 연습 일정을 소화해왔다.)

-극단 뿌리의 김도훈 연출에게 연기를 배우기가 쉽지 않았을텐데요.

연극의 시작, 연기의 걸음마부터 배우고 싶었는데 경험이 많으시고 명성도 있는 김도훈 연출선생님을 만나 그 욕구를 채울 수 있게 되어 오히려 기뻐요. 김도훈 선생님의 지도 방식이 좀 혹독한데도 있지만 이런 분에게 정공법으로 배울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에요.

처음에는 겁도 나고 말씀 한마디에 어리벌벌 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발성과 몸의 움직임 등 꼭 거쳐야 하는 힘든 과정을 넘기게 되었고 이제는 최고의 한씨, 최고 앙상블의 '맹진사댁 경사'를 보여주겠다는 목표로 힘든 줄 모르고 연습하고 있어요.

서울 용산 예술창작센터에서 연극 '맹진사댁 경사' 맹연습 중인 배우 이화시(사진 왼쪽). 돈으로 벼슬을 사서 우쭐대는 맹진사가 밉지만 집안 체통을 살리려고 어쩔 수 없이 부창부수하는 한씨 부인 역을 맡았다. /사진=한국생활연극협회

-'맹진사댁 경사'라는 작품은 어떤 점이 매력인가요?

무엇보다 한국인의 정서가 흐르는 오영진의 희극 '맹진사댁 경사'라는 작품을 만나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을 되살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1943년에 발표된 오영진의 이 희곡은 양반 계층의 물욕과 허례허식을 풍자한 희극인데다 우리 고유의 감정과 해학을 현대화하고 있어 무엇보다 웃음이 터지고 재미가 있어요.

세월이 지나도 유행을 타지 않아 새것 같아요. 60~70년 전 이야기지만 현대적 어조로 하기 때문에 연기하기가 어색하지 않거든요. 우리네 토속적 색채들을 밝고 경쾌하게 펼치면서도 권선징악이 주는 교훈은 현대 젊은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작품입니다.

-영화배우 이화시가 무대에서 보여 주는 한씨 부인의 캐릭터는 어떻게 잡았는지요?

제가 맡은 한씨 부인은 돈으로 벼슬을 사서 우쭐대는 맹진사가 밉지만 집안 체통을 살리려고 어쩔 수 없이 부창부수하는 역이에요. 영화배우로 한 창 활동할 때 "천사와 악마를 동시에 지닌 두 얼굴의 매력을 지닌 여자"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었는데도 연습하다보면 가끔 나도 모르게 에로틱한 분위기가 나와요. 배우 이화시를 보러오는 관객들에게 말투나 행동에서 에로티시즘이 배어나오는 연기를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봉산탈춤 이수자이자 한예종 전통예술원을 이끌던 최창주 교수가 배우 겸 지도를 맡아 주고 있는데 도움을 받았는지요?

탈춤 동작으로 몸을 풀고나면 발성이나 움직임이 한결 유연해지는 것을 체험했어요. 발성도 호흡법을 익히고 나니 훨씬 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아요.

-영화와 달리 연극이 갖는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연극을 하다 보니 연극만이 갖는 친화력이 있더군요. 아마추어 배우들이지만 순수하고 열정도 대단해요. 영화할 때는 한 두번 만남 뿐인데 연극은 배우들과 얘기도 많이 하고 정도 나눌 수 있어 아주 좋아요. 이젠 영화나 드라마 촬영에 가더라도 자신 있게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연극 '맹진사댁 경사' 무대에 함께 오르는 배우들과 함께 촬영한 컨셉컷. 그를 제외하고 모두 아마추어 배우들이다.

-그 같은 친화력이 생활연극이 추구하는 목표지요.

고령화 사회가 되고 여가 시간이 늘면서 일반인들도 생활에서 문화를 즐겨야 하는데 이런 세계적 트렌드에 생활연극이 안성맞춤인듯 해요. 이같은 생활연극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가면 주부나 직장인들의 삶에 활력이 생기지 않을까요. 특히 '맹진사댁 경사'는 김도훈 선생님의 말대로 상업연극과 달리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미학과 생활풍속도를 보여준다는 의미도 커요. 가장 원형질적인 연극의 전통을 제대로 관객에게 보여주자는 것이지요.

(1974년 김기영 감독의 '파계'로 데뷔한 이화시는 '혈육애'(1976), '이어도'(1977), '흙'(1978) 등에 출연했고 1981년 지각 개봉된 '반금련'에서 강한 개성을 뿜어냈다. 이중 '이어도'는 한국영상자료원이 2013년에 펴낸 『한국영화 100선』에 선정됐다. 이 영화에서 천남석(최윤석)의 첫 번째 애인이자 술집 작부인 민자 역의 이화시는 선우현 역의 김정철과 주역을 맡았다. 김기영 감독에게 발탁된 이화시는 이 영화에서 시체와 섹스를 하는 시간(네크로팔리아)을 하는 등 자극적인 연기도 과감하게 해냈다.)

영화 이어도(김기영 감독, 1977) 스틸 컷/ 사진출처=한국영상자료원
영화 이어도(김기영 감독, 1977) 스틸 컷/ 사진출처=한국영상자료원

-어떻게 배우가 되셨나요?

전남 영암이 고향인데 어려서부터 눈이 똘망똘망하고 총기가 있었대요. 10살 무렵 서울로 이사와 삼선교에서 살았는데 그때 활동사진이라는 걸 처음 보았어요. 당시로서는 너무 놀랍고 그야말로 획기적이었어요. 저런 신기한 것도 있구나, 나도 저런 신기한 활동사진에 나오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지니게 되었어요. 중고교 다니면서도 표현력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친구들에게 영화 본 얘기를 해주면 친구들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니까요. 친구들로부터 너는 배우해야 되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대학(단국대 국문학과) 다닐 때는 문학소녀였던 것 같은데 결국 어려서부터 꿈꾸던 배우가 되셨군요.

눈이 이쁘다고 해서 '미스아이 콘테스트'에 나가보려 했는데 그만 대회가 취소되고 말았어요. 그래서 신문에 영화배우 모집한다고 해서 응모했더니 한재수 선생이 하는 연기학원인거예요. 시큰둥 해서 이력서와 시진을 내고 그만두었는데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김기영 감독의 새 영화에 신인배우를 뽑는데 와보라는 것이었어요. 그무렵 저는 삼선교 인근의 동도극장에서 윤여정 주연의 김기영 감독 대표작인 '충녀'와 '화녀'를 보고 한국영화도 이처럼 세련되고 쇼킹한 영화가 있구나 하고 화들짝 놀랐거든요. 그 하늘같은 김기영 감독이 보자고 한다니 얼마나 떨렸는지 몰라요.

가보니 동아수출공사에서 '반금련'에 출연할 신인배우 공모를 하고 있더군요. 미스코리아 출신에 연예인까지 응모자가 많았는데 김기영 감독은 풍만한 육체의 반금련보다는 비쩍 말라 눈만 큰 저를 뽑더군요. 아마 김기영 감독이 추구하는 3차원적 반금련 이미지와 맞았나봐요. 그렇게 뽑혀 동아수출공사 전속배우로 5년간 활동했어요.

-그래도 신인으로 김기영 감독의 스타일을 해내기가 쉽지 않았을텐데요.

연극배우 고설봉 선생님에게 연기 지도를 받기도 하고 프랑스문화원, 독일문화원을 찾아가 새로운 영화의 흐름을 익히기도 했어요. 김 감독이 연기 과제를 내주면 그걸 연습하기도 했고요. 지금 생각하면 영화과 학생 같았어요.

배우 이화시

-김기영 감독은 어떤 분이셨나요?

정말 독특한 분이셨어요. 단 한 장면도 상투적으로 찍는 법이 없었어요. 김 감독님이 제게 건네준 메모에 "슬플 때 울고 기쁠 때 웃는 것은 연기의 제일보(第一步)에 지나지 않는다"는게 있는데 평범함과는 다른 뭔가 색다른 것을 원하셨어요. 촬영할 때도 그 분은 말이 많은 편이 아니셨어요. 제가 이해를 못하면 본인이 직접 실연해 보이며 본인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셨어요.

-예명도 김기영 감독이 지어준 걸로 아는데 이화시라는 배우의 어떤 점을 좋아했고 외모나 연기에 대해선 뭐라고 하셨는지요?

김 감독님은 제 마스크를 좋아했어요. "이화시의 눈동자와 눈썹은 백만불짜리"라고 말하신 적도 있으니까요. 연기할 때도 머리를 묶고 하라고 하셨어요. 제 마스크는 머리를 묶었을 때 강렬한 선이 살아난다고 했어요. 그 분은 제 얼굴에 천사와 악마의 모습이 공존한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평소에는 단아해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그로테스크하게 보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관능미가 뿜어 나온다는 거예요. 당시엔 그런 매력이 있었나 봐요. 중국의 미인 서시를 떠올려 화시라고 예명을 지어주셨어요.

-김기영 감독이 '반금련'에 이화시라는 신인을 캐스팅한 이유를 알겠군요. 그런데 '반금련'은 개봉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땠나요?

동아수출공사가 거액을 들여 제작한 '반금련'은 제 데뷔작이었어요. 김포 오정리에 지은 세트장에서 심혈을 기울여 촬영했는데 웬일인지 잘 풀리지를 않았어요. 김 감독도 야심을 갖고 임한 대작이어서 개봉되면 배우 이화시도 크게 빛을 보게 될 걸로 기대하고 있었는데촬영이 자주 중단되더니 제작 자체가 몇 년씩 지연되더라고요.

-당시만 해도 유신시대라 검열이 만만치 않았을텐데요.

그 당시 검열이 강화돼 '반금련'은 상영불가 판정을 받았고 필름은 창고에 들어갔어요. 검열 단계에서 제 마스크가 퇴폐적이니 출연정지 시켜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고 해요. 기대가 큰 작품이었는데 상황이 이 지경이 되니 충격이 컸어요.

-결국 '반금련'은 이화시의 데뷔작인데도 불구하고 1981년에야 개봉되었는데 세간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요.

누더기 형태로 개봉되었으니 그런 결과가 당연하지요. 표현의 자유가 허용됐다면 아마 굉장한 작품으로 남았을 거예요.

-그래도 김기영 감독과는 여러 편의 작품을 했네요.

촬영이 지연되는 동안 동아수출공사가 제작한 '파계', '이어도', '흙' 등 문예영화를 찍었어요. 나중에 삼영필름에서 제작한 김기영 감독의 '혈육애'에서 주연을 맡았지요.

-그 후 영화계를 떠나 초야에 묻혀 사셨네요?

젊은 날의 꿈이 산산조각 나버렸는데 무슨 미련이 있겠어요. 저는 영화를 간절히 원했는데 영화가, 세상이 저를 버린 상실감이 너무 컸으니까요.

(이화시는 1981년 경향신문 문화부 양인식 기자와 결혼해 1남1녀를 낳고 주부생활을 하다가 1998년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해 벤쿠버, 토론토 등에서 살았다. 최근 캐나다 국적에서 한국인으로 국적을 회복했다.)

-2008년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심사위원 위촉을 받아 배우로 고국 땅을 밟은 소감이 어떠했나요?

정말 뛸듯이 기뻐 방바닥에 벌렁 누워버렸어요. 그 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김기영 회고전을 했데요. 그때 영화를 본 기자며 평론가, 영화학자들이 이화시라는 배우가 어디 있느냐 라고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지요. 외국에 간거냐, 심지어는 죽었느냐는 말까지 나왔대요. 명지대 김영진 교수가 제 거처를 수소문해서 국제전화로 통화를 했고 영화잡지에 인터뷰 기사를 크게 실어 주었어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부산국제영화제 측에서 뉴커런츠 부문에 저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한 거예요. 영화를 하다가 그만두어 해외에 살면서도 편지 않았던 내게 비행기표를 동봉한 심사위원 위촉장은 제 수십년 체증을 한 번에 쓸어내린 쾌거였어요. 감격으로 눈물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어요. 한국이, 한국영화가 나를 잊지 않고 찾아주었다는 고마움, 젊은 시절의 배우 이화시가 이제야 보상 받는 것 같은 기분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어요.

영화 귀향(안선경 감독, 2009)스틸 컷/사진출처=한국영상자료원
영화 귀향(안선경 감독, 2009)스틸 컷/사진출처=한국영상자료원

-이후 서서히 영화계에 복귀한 걸로 아는데요?

안선경 감독의 독립영화 '귀향'에서 배우 박지아와 공연했어요. '간증'에 특별 출연했고, '배우는 배우다'에서 조연을 맡았어요. 최근에는 '질투의 역사'에서 오지호 배우의 엄마 역을 했어요. 인기 아이돌 그룹 워너원의 뮤직비디오에서 강다니엘의 할머니 역을 했는데 재미있었어요.

-오랜만에 일을 하시면서 고충은 없던가요?

30년 세월이 흐르다 보니 제작 방식도 연기 메소드도 예전과 전혀 다르더군요. 예전엔 감독이 시키는 데로 하면 됐는데 요즘은 배우들이 알아서 하고 감독이 선택하는 식이에요. 카메라도 디지털로 바뀌어 낯설었어요. 그래서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에 생활연극에 뛰어든 것도 이런 절실함 때문이었지요.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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