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세계화를 꿈꾸는 소리꾼 서명희 명창
판소리 세계화를 꿈꾸는 소리꾼 서명희 명창
  • 서영석
  • 승인 2010.12.1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들은 우즈보다 뛰어난 프로골퍼 꿈나무로 자라” / 서영석



【인터뷰365 서영석】 임권택의 영화 <서편제>가 성공 했을 때 판소리와 남도민요가 옛 소리꾼의 애환과 함께 우리의 일상 속으로 성큼 다가왔었다. 한 세기를 훨씬 넘는 전통 판소리의 일맥은 송만갑 김소희 신영희 명창의 대를 이어 오늘의 서명희에 닿고 있다.

소리의 높고 낮은 폭이 크고 호흡이 길어 '목장수'라는 별명이 있다는 당대의 아름다운 소리꾼 서명희 명창을 지난 11월 말 그녀의 '솔이 국악연구원'에서 만났다. 그리 크지는 않아도 방음시설이 잘 된 단아한 공간이었다.


"연구소가 범상치 않습니다. 이곳에서 후학을 가르칩니까?"

한 5년 전 동숭동 연극인들의 모임에서 만났던 무명(?)의 앳된 모습의 소리꾼이자 연극배우가 아닌, 이제 당당한 명창의 품격을 보이며 맞이한 그녀에게 건넨 기자의 첫마디 인사였다.

"여기는 본래 서울 월드컵 경기장을 설계하신 건축가 류춘수 선생님의 빌딩인데 작년에 이곳을 팔고 떠나시며 저에게 이방을 소개해주셨어요. 인테리어 설계와 시공까지 주선해 주셨고요..."

세상에! 그분은 기자와 같은 대구고등학교의 까마득한 동문 선배님이 아니던가. 이래서 세상이 좁다고 하는가! 이 연구원의 중심 공간에 그 선배님이 개원 기념으로 써주었다는 조선조의 기생 송이(松伊)의 시조 한편이 걸려있다.


솔이 솔이라 커늘 무슨 솔만 여기는다

천심절벽에 낙락장송 내 긔로다

길 아래 초동의 접낫이야 걸어볼 줄 있으랴


부드러움 속에 숨은 강직한 프로의식의 서 명창을 비유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서 명창은 시청 공무원 동아리를 가르치는 월요일과, 신영희 선생의 남도소리보전회에서 공부하는 화요일, 그리고 천안 선문대학교 교양대학에서 몇 해 째 우리소리를 열정으로 가르치고 있는 수요일을 제하면, 목금토일, 쉴 틈 없이 동호인은 물론 이름만 대면 누구든지 알만한 가수와 배우들에게 이 연구원에서 남도민요와 판소리를 가르치고 있다.



인터뷰의 시작은 본래 지나온 삶의 얘기를 듣는 것인데요.

저는 과거 보다 현재나 미래의 얘기가 더 좋습니다. 분명 저는 힘들고 모진 소녀 시절을 보냈습니다만 다행히 소리꾼 어머니의 DNA를 물려받아 열세 살부터 목포시립국악원에서 소리는 물론 가야금과 춤을 운명적으로 배우기 시작 하였습니다.


지나온 삶의 얘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한 그녀의 과거와 가족 얘기는 담담하지만 사무치는 감동의 얘기였다. 때로는 눈물겹고 비장하기 조차 했으나 다 쓸 수 없는 진솔한 과거의 여정이 강인하게 오롯이 선, 명리와 시류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선비 같은 오늘의 서명희 명창을 만들었다고 기자는 믿을 수 있었다.

졸업장 없는 청강생이어도 그녀는 소리뿐 아니라 공부에 열심이었고, 대학을 못 다녔기에 오히려 험한 소리꾼의 길에 열중 할 수 있었으며, 그 실력으로 대학에서는 명강의 교수로 이름 날 수 있게 되었나 보다.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학벌을 중요시하는데 어렵지 않으셨는지요?

그럼요. 힘들 때가 많지요. 그러나 동서고금에 학벌로 평가된 예술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것은 예술일 수 없을 것이며 그 평가자는 물론 옳은 예술인이 아니지요.

평범하되 단호한 말 속에 주변의 현실 세태에 대한 비판의 뜻이 숨어있음을 기자는 감지 할 수 있었다. 그녀의 대답은 늘 간결하고 지성적이었다.


아들이 장래성 있는 골프선수라고 소문나 있는데 이참에 가족 소개와 특기나 취미 얘기 좀 들려주시지요.

저는요, 소리꾼으로서의 이야기 보다 우리 아들 얘기가 더 신나요! 진짜 최경주나 타이거 우즈를 뛰어 넘는 골프 선수가 될 겁니다.


차분하던 소리의 키가 갑자기 높아지며 농담 아닌 자신감으로 중학교 2학년 아들 '김재일 선수'를 자랑한다.

확인해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1학년이던 작년에 이미 전국대회에서 연속 3회나 중등부에서 우승했고, 갑자기 12cm 이상 자란 금년에는 다소 슬럼프라지만 드라이버 거리가 300m를 훨씬 넘는 최 장타자임은 주니어 골프계에서 인정하고 있었다.

태권도 사범 출신인 남편은 아들 훈련 뒷바라지에만 전념하고 있고, 겨울방학이면 LA의 삼촌댁에 머물며 미국 전지훈련을 부자가 함께 한다고 한다.


재정적인 뒷받침을 어떻게 감당하세요?

물론 제게 벅찬 일이예요. 다행히 아들 애의 장래성과 자질을 믿고 용품이나 훈련을 지원해주는 업체나 골프장 등, 도와주시는 분들이 좀 있어요.


골프 선수를 키우는 일이 어지간한 부자라도 쉽지 않다는 소문이 사실임을 인정하는 대답이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아드님에 대한 꿈과 집념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열린다는 말을 저는 믿어요. 달리 표현하면 결국 뜻을 세우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는 경험적 확신이 우리를 견디게 하는 힘이 되고 있어요.


여리고 곱기만 한 여자의 보이지 않는 구석에는 남다른 신념의 강단이 숨어있었다.


심신이 다같이 강한 분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가 이래도 태권도 5단 사범으로 3년 전만 해도 남편과 함께 도장을 운영 했었고 우슈 4단이랍니다!


아들이 골프 뿐 아니라 모든 운동에 능하고 타고난 음악성에 빼어난 미남이라 연예인으로도 성공 할 것이라는 주변의 평판이 헛소문이 아님은 부모의 유전인자 덕분인지 모른다.


서명희 명창은 현존하는 판소리의 대표적 다섯 바탕인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중에 만정 김소희 명창의 계보를 이었기에 만정 재 흥보가와 춘향가, 그리고 남도 민요를 전문으로 하는 소리꾼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도의 판소리꾼은 서도소리 등 다른 지방의 소리꾼에 비하여 묘한 우월적 프라이드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월감이라니요? 판소리는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 유산이라 그런 생각도 혹 있을 수 있으나 예술에서 장르별 우월성은 있을 수 없고, 저마다의 분야에서 최고의 우월을 추구해야겠지요.

다만, 판소리는 여느 민요와 달리 소리 뿐 아니라 연극적 대사인 아니리와, 춤 같은 동작을 뜻 하는 발림의 3대 요소로 이루어지니 어떤 장르의 무대 예술보다 다양한 재능과 기량의 피나는 연마가 요구 되지요.

2008 년 박동진 명창대회에서 유명 남성 고수 대신 신영희 선생의 조카이며 같은 문하인 김난영 여성 고수를 데리고 '안으로 굽을 팔'이 없는 고독한 경쟁에서 탁월한 실력으로 대통령 상을 받아 명실상부한 명창의 반열에 올랐었지요?

물론 명창 이란 타이틀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누구든 목표를 이루고 뜻을 성취하고 나면 그것이 멍에가 되고 새로운 짐이 되지 않습니까? 저를 바라보는 귀와 눈을 의식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부담스런 굴레가 실은 더 큰 꿈을 향한 디딤돌이리라 믿기도 합니다만, 제가 명창이 되었다고 선생님께 가서 공부하는 날을 지금까지 게을리 하지 않으니 후배들 보다 제가 더 열심히 배우는 것만은 선생님도 인정 하실 거예요. 하기야 우리 선생님은 사십대 중반을 넘긴 저를 아직 스무 살 어린 제자로만 여기세요.



지금 후진을 양성하시는 이 시대의 명창에게 아직도 모시는 스승이 계시다는 것은 선 뜻 이해가 안갑니다.

제가 스승님(신영희 명창)과 인연이 된지 4세기가 넘었군요. 저는 그 어른 앞에 가면 아직도 어린 제자일 뿐이지요. 부모님 생각하듯 늘 건강이 걱정스러워요. 행여 거동이 불편하시면 제가 곁에서 간병을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살아요.


사제의 숭고한 사반세기 인연이 귀감을 주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스승을 하늘 같이 생각하며 배우고 따르던 시대가 지금은 옛날 얘기처럼 하고 있는데 우리 세대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자랐어요.


국내 뿐 아니라 해외 공연을 많이 다니신다고 들었습니다. 외국인들이 판소리를 어떻게 감상 할 수 있을까요?

꼭 대답해 주고 싶은 좋은 질문입니다. 우리가 서양의 팝송이나 오페라의 말 뜻을 잘 몰라도 즐길 수 있듯이 판소리 공연에서 그들도 소리와 몸짓에서 예술적 공감은 느낄 수 도 있겠지요. 그러나 판소리는 재미있는 스토리를 엮은 것인데 어찌 뜻을 모르고 재미를 다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해외 공연이라도 관객은 아직은 대부분 교포와 공관원들입니다.

< 흥보가>와 <춘향가>를 일어와 중국어로 번역을 준비하고 있어요. 판소리 대본은 거의 한문이 많아 특히 중국인들에겐 쉽게 공감을 줄 내용이라 대형 스크린에 번역된 소리를 보여준다면 오페라나 뮤지컬 같은 범세계적 공연예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문화유산인 판소리지만 세계적 보급을 위한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는 말씀은 새로운 뉴스 같습니다. 기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문화관광체육부나 국립국악원, 창극단, 아니면 어느 대학에서든 그런 작업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바 없습니다. 아마도 영문으로는 번역해서 공연한 적이 있기는 하겠지만, 해외의 그 많은 유명 공연장에서 성황을 이룬 판소리 공연 뉴스는 여태 들은 바 없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판소리의 세계화라는 엄청난 꿈에 제가 작은 힘을 발휘할 수 있을 지 매일 고민하고 있습니다. 동료 교수 분들을 설득하여 그런 사업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곧 새해가 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하고 계십니까?

많아요. 우선 <흥보가> 완창 공연과 함께 음반도 만들어야 하고, 민요 음반도 내고 싶은데 경비가 더 많이 든답니다. 제게 맞는 창작 국악이나 영화나 드라마 음악도 맡고 싶지요. 누군가 저를 위해 곡을 만들어 줄 분이 나타 날 것입니다. 작년에 어느 영화감독이 좋은 배역을 제안 했지만 소리와 소리꾼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이라 결국 단호하게 거절 한 적이 있습니다. 예술가는 자존심을 먹고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아직도 우리 사회는 문화를 빙자한 반문화적 인식이 도처에 남아 있어서 서운한 일, 대립하고 설득해야 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우리 고유의 유산인 소리를 지켜가는 명창에게도 힘든 경험들이 많았을 텐데 왜 소리를 배우고 일생을 소리에 바치시게 됐는지요? 그리고 아직도 소녀처럼 윤기 나는 검은 머리는 약을 사용한 것인가요?

왜 소리를 업으로 택했느냐고요? 사람들이 저의 소리를 듣고 혼이 맑아지기를 바라면서 그것에 매달려 살며 보람을 찾습니다. 인생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들을 찾아 떠나고 헤매는 여행 같기도 합니다. 저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외로운 직업을 택했지만 후회가 없었고 보람을 얻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머리요? 하하하 진짜 내 머리인걸요. 염색 안했어요.








기사 뒷 이야기가 궁금하세요? 인터뷰365 편집실 블로그



관심가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