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명대사-이에야스의 길, 그 길을 걷다'…53일간 '땀방울의 기록'
- 1200㎞ 노정에 담긴 한일 평화 염원…한일 공존공영의 해법 모색
- 을사늑약 120년·광복 80년·한일 국교 정상화 60년 역사의 변곡점 맞아
'Interview人 동정' 은 <인터뷰365>가 인터뷰한 인물들의 근황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터뷰365 박현수 편집위원 = 임진왜란의 참화 속에서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던 사명대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두 영웅이 열어젖힌 '평화의 길'을 4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다시 걸으며 한일 관계의 미래를 성찰한 기록이 책으로 나왔다.
허남정 ‘21세기 조선통신사 한일 우정 걷기’ 단장 (전 한일경제협회 전무이사)의 신간 '사명대사-이에야스의 길, 그 길을 걷다'(글로벌마인드)는 2007년 시작된 '21세기 조선통신사 한·일 우정 걷기'의 제10회 대장정을 생생하게 담아낸 동행기다. 2025년 을사늑약 120주년, 광복 80주년, 그리고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라는 역사의 변곡점에서 서울을 출발해 도쿄까지 1200㎞(3000리)를 53일간 걸어온 기록이다.
사명대사와 이에야스, 전쟁 넘어 평화 설계
저자는 흔히 알려진 조선통신사의 역사를 '사명대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두 인물의 이니셔티브로 재해석한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끌고 구국에 앞장섰던 사명대사는 전쟁 후 일본으로 건너가 이에야스와 담판을 벌였다.
당시 이에야스는 "전쟁에 관여하지 않았기에 조선과 원수질 일이 없다"는 논리로 국교 재개를 강력히 희망했다. 두 영웅의 대좌는 실질적인 합의로 이어졌다. 이에야스는 침략 재발 방지, 피로인(포로) 송환, 선릉·정릉 도굴범 인도 등을 약속했다. 이 과정에서 사명대사와 함께 귀국한 3,000명을 포함해 총 1만여 명의 포로가 고국 땅을 밟았다.
저자는 이에야스가 조선의 성리학을 '칼의 사회'였던 일본을 예의와 질서의 사회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통치 철학으로 삼으려 했던 점에 주목한다. 포로 출신 유학자 강항이 전한 주자학은 일본 유학 발전의 토대가 되었고, 이에야스는 통신사 교류를 통해 일본 민중의 의식 개혁을 꾀했다. 이러한 상호 필요성과 '성신교린(誠信交隣)'의 정신은 이후 300년간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평화 시대를 가능케 했다.
3000리 대장정, '속살'로 본 일본의 현주소
저자는 20대 시절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대망'을 읽다 포기했던 경험이 있었으나, 70세에 다시 완독하며 이에야스의 매력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2023년 한국의 1인당 GDP가 일본을 추월하는 등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그는 평생의 관심사였던 일본의 현주소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이번 우정 걷기에 동참했다.
애초 대원으로 참여하려던 저자는 일본어 실력과 경제협력 분야의 풍부한 경험을 인정받아 '정사(正使)'를 맡았고, 주최 측의 사정으로 결국 단장의 중책까지 수행하게 됐다. 10회 연속 참가한 일본 측 엔도 야스오 대장과 협력하며, 고령화와 물가 인상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대원 69명과 함께 도쿄 히비야공원에 무사히 입성했다.
저자는 53일간 일본인들과 먹고 자며 걷는 과정에서 그들의 진솔한 '속살'을 들여다보았다. 아사히신문 간부 출신인 엔도 대장과 술잔을 기울이며 흉금을 터놓는 친구가 된 과정은 그 자체로 현대판 조선통신사의 모습과 닮아 있다.
2025년 도쿄 히비야공원에 울려 퍼진 평화가
책은 과거의 기록에만 머물지 않는다. 저자는 1200㎞ 노정 위에서 국교 정상화라는 결단을 내렸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뇌를 되새기고, 오늘날 한국이 이룩한 경제적 기적을 피부로 느낀다.
특히 이번 10회 행사가 여러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사실상 '마지막 걷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저자가 남긴 이 기록은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허남정 저자는 "조선통신사의 성신교린 정신을 바탕으로 양국이 새로운 60년을 공존공영하기를 기원한다"며, 길 위에서 흘린 대원들의 땀방울이 한일 관계 개선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냈다.
허남정 제10회 조선통신사 단장은
허남정 단장은 1981년 외환은행(현 하나은행)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뒤, 와세다대학 연구소에서 1년간 연수했다. 이후 외국어대 통역대학원 한일과를 졸업한 후 박태준 포항제철(현 포스코) 사장의 신문 칼럼에 감명받아, 한일경제협회에 입사했다.
허남정은 한일경제협회에서 전무이사를 역임하는 등 27년간 활동하며 한일 간 민간 경제협력과 산업협력 지원사업에 힘썼고, 약 200여 차례 일본을 오가며 양국 간 교류의 현장에서 활약했다.
그는 박태준(초대 회장), 박용학(대농그룹 회장), 김상하(삼양사 회장) 세 사람을 자신의 은인으로 꼽으며, 이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박태준 회장의 ‘지일(知日), 용일(用日), 극일(克日)’이라는 실용주의 대일관을 내면화해왔다.
퇴임 후에는 한양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학위 논문은 ‘박태준 리더십에 대한 재고찰-일본 문화적 속성의 발현과 그 변용’. 또한, 일본인 교회에서 설교 통역으로 10여 년간 봉사하며 일본어 실력을 유지해왔다.
현재 허남정은 매일 새벽 5시 기상과 독서, 기공 수련 등으로 심신의 건강을 관리하며, 신문 기고와 저술 활동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저서는 ‘박태준이 답이다’, ‘산티아고 순례자들’, ‘일본은 원수인가 이웃인가’, ‘사랑스럽습니다, 그립습니다’ 등이 있으며 ‘박태준이 답이다’는 일본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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