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신간] '9급 신화' 쓴 오영수 전 동작구 부구청장, 지역경제 살린 현장 이야기 출간
[365신간] '9급 신화' 쓴 오영수 전 동작구 부구청장, 지역경제 살린 현장 이야기 출간
  • 신향식 칼럼니스트
  • 승인 2026.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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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급 말단 공무원서 부구청장까지 오른 공직자
- 현장 에세이 '바람이 속삭이는 행정의 노래' 펴내
- 시민과 상인이 함께 웃은 현장을 담은 신간서적
- 골목 상권도 살린, 국내 첫 관상(官商) 복합청사 화제
단행본 '바람이 속삭이는 행정의 노래'(오영수 지음)

인터뷰365 신향식 칼럼니스트 = 매트를 깔고 앉은 시민들이 커다란 고무 호스처럼 생긴 미끄럼틀 ‘D라이드(D-Lide)’ 속으로 하나둘 빨려 들어가자, 청사 안에 “꺄악!” “야호!” 하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곳은 놀이공원이 아니라 바로 동작구청 신청사다.

연면적 4만4672㎡, 지하 3층·지상 10층 규모의 이 청사는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뚫린 중정 구조 한가운데, 높이 15m의 초대형 미끄럼틀 D라이드를 품고 있다. 민원으로 가득하던 공간은 어느새 주민들이 모이는 ‘사랑방’이자 외지인까지 찾는 핫플이 됐다.

이 부지에는 과거 영도시장이 있었다. 반발하던 상인들과의 상생을 위해 동작구는 지하 1층에 상가를 들인 관상 복합 청사를 만들었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면 바로 푸드코트로 이어지는 동선도 그 배려의 결과다. 시민은 쉬고, 상인은 웃는 구조다.

민원업무 뒤 미끄럼틀 타고 내려오면 푸드코트

서울 동작구청 신청사 2층에서 지하 1층으로 연결된 길이 15m의 대형 미끄럼틀 ‘D-Lide’. 민원업무를 마치고 동작구청 신청사 안에 설치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면 바로 지역 상인들이 운영하는 푸드코트로 이어지도록 설계돼 있다./사진 제공=서울 동작구청

나는 서울 동작구 구민으로서, 노량진에 있던 옛 동작구청을 찾을 때마다 느끼던 답답함은 오래된 기억이다. 민원을 보러 들어서는 순간부터 비좁고 낡은 공간이 주는 피로가 먼저 다가왔다.

그런데 지난해, 지하철 7호선 장승배기역 인근에, 창의적인 설계로 동작구청 신청사가 들어서며 풍경이 달라졌다. 서류 한 장을 떼러 왔다가 민원 상담과 복지 안내, 생활 민원 접수까지 한 번에 마치고, 나가는 길에는 자연스럽게 1층 개방 공간과 상가를 거쳐 동네 골목으로 이어진다. ‘일 보러 오는 곳’이 아니라 ‘잠깐 들렀다 동네로 스며드는 구청’이 되었다.

이 변화의 배경을 한 권의 책으로 풀어낸 기록이 있다. '바람이 속삭이는 행정의 노래'는 9급 공무원에서 시작해 동작구 행정의 최일선에서 33년을 보낸 전직 동작부구청장 오영수가 최근 펴낸 신간이다. 이 책은 행정 에세이이자, 한 도시가 변해 온 과정을 기록한 정책 현장 보고서에 가깝다.

행정 최일선 33년간 민원현장 근무

저자는 민원 현장, 도시정비, 복지 정책, 도서관과 책문화 정책까지, 동작구 행정의 굵직한 장면들을 ‘성과’보다 ‘과정’의 언어로 풀어낸다. 특히 동작구청 신청사 건립 과정은 단순한 공사 기록이 아니라, “행정의 체력과 진정성을 시험하는 시간”으로 그려진다. 수천억 원대 예산, 복잡하게 얽힌 인허가 절차, 이해관계자들의 시선 속에서, 저자는 행정국장·기획재정국장·부구청장을 거치며 사업의 큰 그림과 실무를 동시에 책임졌다.

이 책에서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저자의 행정 철학은 “설득보다 설명이 먼저”라는 원칙이다. 예비타당성조사와 투자심사라는 까다로운 관문 앞에서 그는 수치를 숨기지 않았고, 위험과 한계를 감추지 않았다. 장점과 함께 불확실성까지 그대로 드러내는 자료를 준비했다고 고백한다. 그 태도는 행정을 ‘홍보의 기술’이 아니라 ‘신뢰의 기술’로 되돌려 놓는다. 숫자를 포장하지 않는 정직함이 쌓여, 종합행정타운 사업이 경제적·정책적 타당성을 인정받는 토대가 되었다는 서술은 공공사업을 둘러싼 오래된 불신을 조용히 되묻는다.

신청사의 큰 그림과 실무를 동시에 책임

서울 동작구청 신청사

이 책에서 가장 생활의 온기가 묻어나는 장면은 신청사의 공간 설계 이야기다. 동작구청 신청사는 국내 최초의 관상(官商) 복합 청사로, 행정 기능과 상업 기능이 한 건물 안에 의도적으로 배치됐다. 저자는 그 이유를 “지역을 비워내는 일이 아니라, 지역의 숨을 되돌리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관공서가 들어서며 주변 상권이 밀려나는 풍경이 아니라, 청사로 인해 사람의 발걸음이 다시 골목으로 흘러들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상생은 구호가 아니라 구조로 구현된다. 지하와 지상에 조성된 특별임대 상가는 영도시장 상인들과의 공존을 전제로 설계됐다. 행정타운이 들어서며 기존 상인들이 삶의 터전을 잃지 않도록, 오히려 새로운 흐름을 만날 수 있도록 한 장치다. 건물이 지역의 피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아니라, 골목으로 사람을 밀어내는 심장이어야 한다는 저자의 비유는, 공공건축이 지녀야 할 사회적 역할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지역 상권과의 공존을 전제로 설계

재원 마련의 고비에서 등장하는 선택 또한 상징적이다. 동작구는 LH와 기부대양여 방식 협약을 체결해, 장승배기 신청사를 새로 짓는 대신 노량진 기존 청사 부지를 제공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저자는 이 결정을 단순한 재원 조달이 아니라, 기존 부지 개발에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한 선택으로 해석한다. 행정이 숫자를 맞추는 기술에 머물지 않고, 도시의 방향을 설계하는 책임이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이 대목에서 분명해진다.

‘밥상 위에서 만나는 행정’이라는 장면도 인상 깊다. 저자는 구내식당을 지나치게 크게 만들지 말자는 의견을 처음부터 냈다고 한다. 공무원들이 점심시간마다 청사 밖으로 나와 골목 식당의 문을 열고, 시장 국밥집에 앉아 주민과 같은 메뉴를 먹는 일상이야말로 지역 상권에 숨을 불어넣는 행정이라는 것이다. 행정은 창구 안에서 완성되지 않고, 식당 테이블 위에서 주민의 생활과 섞일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는 상징이 이 장면에 담겨 있다.

구내식당을 크게 짓지 않은 사연

오영수 전 부구청장은 자신을 ‘성과를 쌓은 사람’이 아니라 ‘현장에 오래 남아 있던 사람’으로 소개한다. 9급 공무원으로 출발해 부구청장으로 퇴임하기까지, 그는 수없이 많은 민원 현장을 걸었다. 행정이 규정과 절차의 집합이 아니라, 시민의 하루에 작은 온기를 더하는 일이라는 깨달음은 실패와 작은 성공의 축적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눈에 띄는 업적보다, 주민 앞에서 한 번 더 멈춰 서는 공무원의 태도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민원 창구에서 언성이 높아진 주민을 ‘설득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먼저 들어야 할 사람’으로 기록한다. 서류가 미비해 접수가 어렵다는 말을 해야 할 때에도, 그는 규정보다 사정을 먼저 묻는다. 행정은 칸막이 너머에서 내려다보는 일이 아니라, 같은 눈높이에서 불편을 나누는 일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언성 높은 주민은 '먼저 들어드려야 할 사람'

여러 부서가 얽혀 쉽게 맡으려 하지 않는 민원 앞에서, 저자는 연락 창구를 끝까지 자신이 맡는다. 주민이 매번 처음부터 설명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문제를 처리하는 속도보다, 주민이 행정 앞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하는 일이 공복의 역할이라는 메시지가 이 장면에서 분명해진다.

복지 현장의 기록 역시 이 책의 중요한 축이다. 홀로 사는 노인, 돌봄 공백에 놓인 장애 가구, 갑작스러운 위기에 처한 가족을 만나는 장면에서 저자는 행정을 ‘제도’가 아니라 ‘연결의 손길’로 설명한다. 공무원이 한 발 더 움직일 때, 복지는 종이 위의 정책에서 사람의 일상으로 내려온다는 사실을 이 책은 조용히 보여준다.

청렴과 재난 대응에 관한 서술도 선언이 아니라 일상의 선택으로 풀린다. 예산과 계약, 인허가가 오가는 순간마다 ‘의심받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일의 중요성, 폭우와 위기 상황에서 ‘보고’보다 ‘확인’이 먼저여야 한다는 현장 중심의 태도는, 행정을 기술이 아니라 책임의 문제로 되돌려 놓는다. 공무원은 가장 먼저 도착해 가장 늦게 떠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문장은 이 책의 정서를 집약한다.

가장 먼저 도착해 가장 늦게 떠나

'바람이 속삭이는 행정의 노래'는 화려한 정책 설명서가 아니다. 주민 곁에서 오래 버텨 온 한 공복의 생활 기록이자, 행정이 다시 사람의 얼굴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조용한 답변이다. 저자 오영수의 활약은 거창한 영웅담이 아니라, 현장에서 쌓아 올린 신뢰의 층위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 책은 공무원 개인의 회고록을 넘어, 오늘의 행정이 어떤 태도로 시민 앞에 서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생활의 교본에 가깝다.

다시 동작구청 신청사를 떠올리게 된다. 민원을 보고 나오며 자연스럽게 골목으로 이어지던 그 동선은, 행정이 시민의 삶 속으로 한 발 더 들어오겠다는 공간적 선언처럼 느껴졌다. 『바람이 속삭이는 행정의 노래』는 바로 그 건물에 스며든 철학을, 글로 옮겨 놓은 기록이다. 낡은 구청을 드나들던 기억에서 시작된 변화의 체감은, 이 책을 통해 비로소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신향식 칼럼니스트

신문기자 출신 글쓰기교육 전문가이자 대한민국 1호 생애기록치유사다. 한 사람의 생애를 기록하여 삶의 의미를 회복하고 내면을 치유하는 새 영역을 개척했다. 조선미디어그룹 스포츠조선과 경향미디어그룹 굿데이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이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등에 교육, 글쓰기, 자연치유를 주제로 글을 발표했다. 연세대에서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하며 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그 논문이 서울대 1학년 기초필수 교재에 모범예문으로 수록된 것을 계기로 대학과 전국 주요 고교에서 학술적 글쓰기 초빙강사로 활동했다. 또, 하버드대, MIT, 베를린공대, 함부르크대 등 해외 대학의 글쓰기교육 현장을 취재하며 글쓰기 교육 방법론을 연구했다. 국제 바칼로레아(IB)가 한국에 본격 도입되기 이전부터 그 교육적 가치에 주목해 선구적으로 취재했다. 대치동에서 신문기자 출신 강사진으로 구성한 논술학원을 17년간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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