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한국 현대사 재조명한 '새들의 무덤'...몸 사리지 않는 배우들의 연기 일품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한국 현대사 재조명한 '새들의 무덤'...몸 사리지 않는 배우들의 연기 일품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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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수민 작 연출의 현대사 시리즈 '새들의 무덤'
- 성실한 무대, 코러스 앙상블과 주인공 오루의 혼신의 연기가 빛이 났다
- 숙성 과정 제대로 거친 '새들의 무덤'...잘 익은 술처럼 깊은 풍미
20240617_110541 사진=극단
'새들의 무덤'/사진=극단 즉각반응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참 열심히 만들었고, 배우들이 정말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연기했다.

광복 이후부터 지금까지 굴곡의 한국 현대사를 조명하면서도 시각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고, 이념연극이 아니어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서울연극제 공식 참가작으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15~23일)에서 공연 중인 즉각반응의 한국현대사 시리즈 '새들의 무덤'은 접해보지 못한 극단의, 모르는 제작진의 작품이었지만, 필자의 지나온 인생 축소판 같아 참 열심히 보면서, 작품의 진솔함과 배우들의 진정성에 감동을 받았다.

공연의 시대정신과 연극의 힘도 느끼게 한 무대였다. 

하수민 작 연출로 세 번째 다시 올린 '새들의 무덤'은 숙성 과정을 제대로 거쳤다. 2016년 초고, 2018년 쇼케이스, 2020년 초연, 2021년 재연... 그래서 3연은 잘 익은 술처럼 풍미가 느껴졌다.

연극 '새들의 무덤' 주인공 오루 역의 서동갑 배우/사진=극단 즉각반응 

필자는 2023년 10월 김상열연극상을 수상한 하수민 연출을 시상식장에서 보았지만, 현대사 시리즈 1탄으로 공연한 '육쌍둥이'도 보지 못해 이번 무대가 첫 만남이었다. 배우들도 손성호 김현 외에는 잘 알지 못하지만 내공들이 깊었다.

2013년 창단해 10년 넘게 현대사 조명에 천착하면서 우리 전통의 멋에서 형식을 찾고 자신들의 연극 언어를 탐구해온 즉각반응은 앞으로의 끈기와 정진이 기대되는 극단이 아닐 수 없다.

'새들의 무덤'은 1968년 군사정권 시절에서 출발해 고속 성장시대(1976), 5.18광주민주화운동(1980년), 서울올림픽(1988), IMF 외환위기(1997), 세월호 침몰(2014)까지 한국 현대사를 거꾸로 회상하는 형식이다. 이 긴 세월을 150분(인터미션 포함)에 담아내기란 버거운 작업이었고, 어느 시점은 극화를 위한 인위적 선택처럼 보였지만, 튀어보이지는 않았다.

하수민 작가는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를 한 가장(家長)을 내세워 기억 속 과거를 여행하는 형식으로 무대에 형상화했다. 안내자는 ‘새’였다. 날갯짓도 하고 소통도 하는 이 새(강민지)는 공연 내내 주인공 오루(서동갑)의 곁에서 맴돌며 그를 과거의 현장으로 이끌었다. 새는 시공을 초월해 날 수도 있지만, 탁 트인 미래로 떠오르는 ‘희망’이기도 하다.

연극 '새들의 무덤' 공연 장면/사진=극단 즉각반응 

연극의 제목 '새들의 무덤'은 복합적인 의미가 있겠지만, 필자는 세월의 축적, 인생의 모뉴먼트(기념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기술자로 일하는 오루는 새섬(새의 무덤)이 있는 어촌으로 안내되어 다섯 살의 자기 모습을 본다. 고기잡이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부모의 장례식날, 마을 사람들은 그같은 액운이 일제와 미 군정에 빌붙어 동족을 해코지한 귀신 탓이라며 굿을 해대고 서로를 탓한다. 꼬마 오루는 모두가 꺼리는 귀신 씌운 돼지를 죽이고, 미신으로 점철된 새섬의 진실을 밝혀낸다.

성장한 청년 오루는 창신동 봉제 골목에서 기술자로 일하며 온갖 수모와 세상 풍파를 겪고 결혼해 쌍둥이 딸을 낳는다. 행복도 잠깐, IMF 여파로 풍비박산이 되자 이혼한 오루는 선박용접공이 된다. 쌍둥이 딸들은 아빠의 간곡한 설득으로 수학여행을 떠나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오루는 통곡처럼 딸들의 이름을 외친다.

그 시간의 역사 속에서 서로 시간과 장소는 다르지만 숨 가쁘게 일해온 이 땅의 남편들, 아버지들... 하수민의 '새들의 무덤'은 지금은 잊혀지고 묻혀버린 아버지들의 연대기를, 그것도 한 소시민의 자화상을 통해 들춰내 그 속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감이 갔다.

연극 '새들의 무덤'/사진=극단 즉각반응 

이 연극의 특징은 무대가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시작과 끝에 좀처럼 볼 수 없는 아르코 대극장 무대의 뒤쪽 벽이 오픈되어 동숭동 건물과 간판과 나무들과 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 하늘로 새떼들이 날아갈 것처럼 보였다.

11명의 배우들은 자신의 캐릭터를 연기할 때 외에는 모두 코러스가 되어 새들로 살았다. 장면을 바꿀 때는 무리 지어 깨끼춤을 추고, 생음악 반주와 창으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세월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를 우리 멋과 흥으로 전환시키는 장면들은 암전(暗轉)보다 효과적이고 재미를 더했다.

첫 장면은 코러스들이 쌓아 올린 ‘새들의 무덤’. 무대 안쪽에 망부석처럼 조형화시킨 무덤의 미장셴이 이 연극의 심볼이다.

전반부는 어촌의 장례식. 마을의 선주(船主) 수학 역을 맡은 손성호가 지팡이를 짚고 나와 비루한 마을의 역사를 한 서린 독백으로 뿜어내 객석을 숨죽이게 했다. 판수 역 장재호는 자신의 역할도 성깔 있게 해냈지만 코러스를 할 때도 무아지경으로 무대를 휘저으며 열심의 표상을 보였다. 수필 역 김형준은 영악한 머리로 마을을 장악하고 변화를 내다보는 선주 2세 역을 끈적이게 잘 해냈다.

당골 역 김현 배우는 굿을 하다가 진짜 신기(神氣)가 내린 듯 주술을 하고 뒹구는 무녀 역을 진짜 무당처럼 연기로 해냈다.

연극 '새들의 무덤' 공연 장면/사진=극단 즉각반응 
연극 '새들의 무덤' 공연 장면/사진=극단 즉각반응 

출연 배우 모두가 이들처럼 자신의 캐릭터 연기로, 코러스 앙상블로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을 했는데 다 열거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태봉 역 심민섭, 정례와 분이할매 역의 김시영, 성규와 은행원 역 홍철희, 종숙 역 김다임 등도 혼신을 다하는 연기를 펼쳤다.

배손 역 곽지숙은 2부 창신동 봉재공장 사장으로, 오루의 아내로 산고의 연기까지 온몸을 던져 해내며 생활력 강한 개성 있는 역할을 잘 해냈다.

'새' 역의 강민지는 날고 기고 뒹구는 역할만으로도 벅찰 텐데 쌍둥이 딸 오손, 도손까지 1인 3역을 야무지게 해냈다.

연극 '새들의 무덤' 공연이 끝난 후 커튼콜에서 춤추는 배우들/사진=정중헌

이제 '새들의 무덤'에서 가장 큰 박수를 보내고 싶은 찐 배우를 칭찬할 차례다.

오루 역을 맡아 5세부터 중년의 기술공까지 반세기 장구한 세월을 좌충우돌 온갖 수난과 시련 속에서도 오뚜기처럼 살아내 극 중에서 ‘천의무봉(天衣無縫)’으로 불리운 서동갑 배우, 그는 150분의 무대에서 온몸을 불살랐고, 흘린 땀만큼 빛을 발했다. 천의무봉은 그의 뛰어난 봉재기술에 붙여진 별명이지만, 사전을 보면 ‘세상사에 물들지 아니한 어린이와 같은 순진함을 이르는 말’이란 의미도 있다.

그는 전 출연진과 부딪치며 다양한 캐릭터 연기와 마임을 해냈음에도 에너자이저처럼 지치지 않았고, 무엇보다 대사 전달이 잘 되어 좋았다. 특히 이념과 일신의 영달에 치우치지 않고 오롯이 범부로서의 평범한 이미지로 무대를 누비며 관객들을 극 속으로 끌어들여 동화시키는 전력투구 연기는 이 무대의 백미였다.

연극 '새들의 무덤' 공연이 끝난 후 (사진 왼쪽부터) 곽지숙, 강민지, 서동갑 배우/사진=정중헌
(사진 왼쪽부터) 손성호, 장재호 배우/사진=정중헌

필자는 그를 이번 무대에서 처음 보았지만, 하수민의 이 작품에 적역이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해도 될만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번 공연의 장점이자 단점은 소리의 전달이었다. 아르코대극장은 공연장으로 설계되어 육성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하수민 연출은 대사 전달을 위해 마이크를 쓸까 고심하다가 배우들의 중의를 모아 육성을 택했다. 그 결정에 박수를 보내지만, 상당수의 배우들은 소리 전달이 잘 안 되어 답답할 때가 적지 않았다.

보는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겠지만, 필자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가 의외로 성실하고 진솔한 작품을 만나 반가웠고, 그래서 리뷰가 주관적 견해에 치우친 면이 있음을 밝혀둔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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