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속히 병마 털고 다시 무대에 서기를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6월 13일 오후 오랫동안 벼르던 윤석화 배우 문병을 극단 민중 멤버들인 박봉서 배우, 이종일 기획과 함께 다녀왔다. 옥수동 자택에서 요양 중인 윤석화 배우는 미소로 필자를 맞아 주었고, 일행과 담소를 나눴다. 거동은 힘들지만 표정은 밝았고, 간혹 유머를 섞어 분위기를 밝게 했다.
“꼭 일어날 거예요.”
필자를 바라보며 윤석화 배우는 굳은 의지를 내보였다.
- 회복하면 무엇이 가장 하고 싶은가요?
“약속하고 하지 못한 연극을 하고 싶어요. ”
안성에서 살구나무 책방을 하는 이종일 기획에 의하면 윤석화 배우는 2023년 카자흐스탄 수도 알마아타 국립극장에서 한국 '아리랑'을 공연키로 했는데 그해 10월에 발병해 현지에 갈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발병 전까지 윤석화 배우는 '마스터클래스', '햄릿' 2회 , '세여자 이야기', '윤석화의 만남',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 활발하게 공연활동을 했다. 필자가 주최한 (사)한국생활연극협회 연극제와 시상식에 와서 생활연극 배우들을 격려하고 시상도 해주었다.
그런 그가 2023년 1월 카톡으로 와병 소식을 전해왔다.
“정말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요. 몇 달 전 졸지에 골수암이라는 기가 막힌 소식을 듣고 남편과 주치의 판단에 서둘러 수술을 받고 지금까지 이렇게 투병하고 있습니다. 수술의 경과는 좋다고 합니다. 이제 곧 일어서겠지요.”
그동안 힘든 투병을 해온 윤석화 배우는 이제 집에서 요양하며 다시 일어서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외출은 어렵지만 식사도 잘하고 TV도 보고, 휴대폰으로 외부와 소통도 하고 있다.
이달 하순에는 영국에서 유학 중인 아들과 딸이 방학을 맞아 집에 온다며 좋아했다.
우리 일행은 정말 인생을 연극처럼 살아온 윤석화 배우가 하루속히 병마를 털어버리고, 무대에 다시 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아래의 글은 필자가 조선일보사를 정년퇴직하던 2006년 10월에 펴낸 『문화부 기자는 재밌다』에 남긴 윤석화 배우에 대한 기록이다.
자신을 연출하는 윤석화
배우 윤석화는 자신을 연출할 줄 아는 연기자다. 햇과일이 익을수록 맛이 드는 것처럼 윤석화라는 배우는 연륜이 더 할수록 매력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하나를 위한 이중주'에서 윤석화의 연기는 나무에 물이 오르듯 성숙했으며, 시선이나 동작 하나, 목소리의 호흡에 이르기까지 관객의 심리를 꿰뚫는 정확한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극 중 인물에 완전히 동화되어 전력투구하는 그의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섬뜩하게 보일 정도다. 그는 ‘인기’라는 날개를 털어버리고 천생 배우로 살아가는 흔치 않은 연기자다. 주어진 역할에 그치지 않고 상황을 연출해 내는 순발력과 끊임없는 노력이야말로 윤석화의 무기라 아닐 수 없다.
필자가 윤석화를 처음 본 것은 70년대 중반 그의 데뷔작인 '꿀맛'에서였다. 그는 당시 ‘CM송의 요정’답게 재기발랄했다. '선인장꽃'에서도 신선한 연기를 보여준 그는 한참 주가가 올랐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생의 굴곡도 겪었다.
결점까지도 자기 개성으로 변화시키는 천생 배우
1983년 윤석화는 자신이 아끼던 '신의 아그네스'를 실험극장에서 올려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그 절정에서 그는 단맛과 쓴맛을 함께 맛보아야 했다. 한쪽에서는 박수와 환호를 보냈지만 또 한쪽에서는 시기와 비난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발성조차 안 된다느니, 연기가 과장됐다느니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윤석화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목소리가 허스키한 핸디캡을 안고 있었다. 자신의 결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윤석화다.
그런데도 그가 ‘무대의 스타’로 떠오른 것은 바로 자신의 그 결점을 장점으로 연출해 내는 탁월한 역량과 노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남의 결점을 지적하기는 쉬우나 그 결점까지를 자신의 개성으로 연출해 내기는 어렵다.
이 점에서 윤석화는 남다른 매력과 멋을 풍긴다. 비싼 옷이 아니라도 포인트를 살려 세련된 외양을 살릴 줄 알고, 허스키한 목소리에 감정을 살려 흥취를 돋을 줄 아는 배우다.
연기, 연출, 제작까지 폭넓은 무대 활동
윤석화의 또 하나 장점은 연극에 대한 열정과 폭넓은 무대 섭렵이다. 그의 본령은 연기지만 번역에서 연출, 안무, 때로는 제작까지 다양한 경험을 쌓아 왔다. 연기 또한 정통 리얼리즘에서 뮤지컬까지 폭이 넓다. 특히 모노드라마에서 자신의 개성을 십분 발휘했다.
윤석화가 장 콕도의 '목소리'를 임영웅 연출로 소극장 산울림에서 올렸을 때 필자는 팸플릿에 ‘자신의 결점까지도 장점으로 연출해내는 윤석화’라는 글을 써주었다. 그 글에서 필자는 30대 윤석화가 겪은 생의 체험과 원숙한 기량을 조화시켜 피가 흐르는 열연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80년대 초, 윤석화를 뉴욕에서 만났다.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카페에서 우리는 너댓시간 넘게 이야기를 했다. 대화라기 보다는 윤석화가 말하고 필자는 듣기만 했다. 지루할 것 같지만 그의 입담은 연기 못지않게 드라마틱해 끊을 데가 없을 정도였다.
그날 윤석화는 첫 결혼에 실패한 이야기 등 자신의 부끄러운 면까지 털어놨다. 뉴욕에서 연극 공부를 하기 위해 피자 배달 등 안 해본 알바가 없다고 했다. 당시 그는 한국 여행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많은 무대에 섰지만 아픈 고독도 겪어야 했다. 한 신문의 혹평에 밤새 울기도 했고, 자신이 일으켜 놓은 작품에서 말 한마디 없이 배역이 교체되어버리는 쓰라림도 맛보았다. 그러나 그는 결혼을 했고 소극장 정미소와 클래식 음악 전문지 '객석'의 편집인 겸 발행인을 맡아 열정을 쏟았다. 그 당시, 지금은 대학생이 된 아들과 고교에 다니는 딸을 입양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필자는 윤석화가 출연한 많은 작품을 보았지만 그중에서도 '신의 아그네스'의 아그네스 역을 잊을 수 없다. 그가 연출해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린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는 정말 박력이 있었고 배우들의 연기와 앙상블이 대단했다. 그런데 필자를 ‘형’이라 부르는 윤석화를 곁에서 지켜보는 마음은 왠지 모르게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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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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