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역 가리지 않았던 착실했던 배우
- 자신의 인터뷰 기사보고 지갑에 넣고 다녔던 일화도
- 주역배우로 인기 누렸지만, 힘겨운 노후생활 보내며 쓸쓸히 떠난 '영화 전사'
인터뷰365 김두호 칼럼니스트 = 한국 영화인들이 한국영화의 중흥기를 맞이한, 그들의 고향이기도 한 서울 충무로 거리는 눈부시게 인기를 누리던 별들의 화려한 발자취는 간 곳이 없지만,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는 골목길은 이제 낡고 빛바랜 건물 사이로 음산하고 음울한 초겨울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그 충무로를 오가며 어쩌다 아는 사람 만나면 화려했던 배우 시절의 추억을 풀어놓곤 하던 원로배우 한 사람이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 팔순을 넘어선 박동룡(1940∼2023) 원로배우. 미남은 아니지만 건달 끼 있는 독특한 토종 체취의 액션 배우 캐릭터로 수많은 작품에서 주로 조연배우로 활동했다, 때로는 대사 없는 단역도 마다하지 않고 출연하는 배우였다. 키가 크고 성품이 착하고 모난 데가 없어서 모두 친하고 좋아했던 그의 부음을 후배 한지일 배우가 울먹이며 전해주었다.
필자가 영화 기자 시절 충무로에서 자주 그를 만났지만 주목받을 만한 배역을 맡지 않아 취재 인물로 기사를 쓸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아내를 사별하고 3년 상을 치른 뒤 비로소 재혼을 했고 귀여운 딸을 낳았다고 자랑하는 그의 인간적인 체취에 감동을 받아 인터뷰 기사로 그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인물 기사가 신문사 매체에 크게 나간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기사를 오려서 지갑에 신분증 삼아 가지고 다닌 일화도 있다. 그렇게 마음씨 순박한 그는 오르지 영화배우인 것을 긍지로 생각하고 행복하게 생각하며 일생을 살았다.
박동룡 배우는 부산 토박이로 고향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일본을 오가는 외항선 선원으로 활동하다가 배우의 꿈을 안고 상경했다. 1967년 신필름 소속 배우였던 친구의 소개로 편거영 감독의 ‘돌아온 팔도 사나이’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고영남, 이혁수, 김효천 감독 등 액션 영화 거장 감독들의 작품을 비롯해 1980년대까지 독립군에서 일본군, 국군과 북한군, 건달 등 배역을 가리지 않고 주어진 역할을 착실하게 연기해 감독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평생을 영화에 바친 배우는 물론, 감독이나 촬영, 조명 스태프로 활동하고 일찍 은퇴한 대다수 영화인들은 하나같이 여유롭게 노후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박동룡 배우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대중문화의 모체인 영화산업의 '이름 없는 별'로 평생 한 업종에 기여하며 일했지만 퇴직금이 없고 연금이나 특별한 복지 혜택이 없어 힘겹게 살아가는 '영화 전사'의 한사람이었다. 한때 주역 배우로 인기를 누렸던 인물 중에도 노후의 근황이나 타계 소식이 알려지지 않고 조용히 사라지는 사례도 있었다.
1960년대 초 톱스타의 인기를 누렸던 김석훈 원로배우가 얼마 전 사람들의 시선 밖에서 쓸쓸하게 떠나갔을 때도 충무로 시대를 함께 한 영화인들의 심경은 아마도 짧고 무상한 인생의 허망함으로 우울한 기분을 실감했을 것이다.
별세하기 전 생전의 박동룡 배우는 충무로에 있는 한국원로영화인회를 매일 출근하다시피 찾았고 필자와 어쩌다 충무로에서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날 잡아 식사같이 하자는 약속을 한 것이 오래전이다. 한동안 소식이 뜸하고 그를 만나기도 어려웠는데 오래전 건강 악화로 고생하다가 근래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곧 부음을 전해 받았다. 마음씨 착한 충무로의 사나이, 삼가 박동룡 배우의 명복을 빌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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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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