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이화 배우, 고운 자태로 타이틀 롤 생전 이미지 재현
인터뷰365 김두호 기자(/전주) = 영화작가로 활동하는 시인이면서 배우이기도 한 백학기 감독(섬진강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최근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한을 달래주며 판소리의 절창(絶唱)으로 이름을 떨친 이화중선(李花中仙, 1899∼1943, 본명 이봉학)의 생애를 추적한 로드무비 형식의 다큐멘터리 ‘이화중선’을 연출 겸 제작해 개봉을 준비 중이다.
먼저 지난 2월 24일, 영화평론가와 기자들이 참석한 전주 디지털독립영화관 첫 시사회에서 출연 배우의 표정과 행위를 통한 이미지 영상으로 이화중선 명창의 생애를 휴먼 다큐멘터리로 완성한 그의 영화는 아트필름으로서의 작품성과 연출 역량이 평가되어 엔딩 자막이 떠오르면서 박수갈채를 받아냈다.
백 감독이 2년 전에 발표한 ‘공중의자’도 대사를 배제한, 영화 연출의 다양성을 제시한 작품이지만 단편 극영화였다. 드라마든 다큐든 사람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시종 얼굴 표정과 동작에 의존한 팬터마임(무언극) 형태의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스토리 구성과 영상 표현의 기술 면에서 쉽게 시도할 수 없는 고도의 연출 감각을 필요로 한다. 그 난간(欄杆)을 극복하고 그는 태연하게 지극히 절제된 내레이션과 자막을 통한 최소한의 언어 전달통로만으로 관객이 시선을 떼지 않고 감동을 느끼며 볼 수 있는 장편 영화를 내놓았다.
영화 ‘이화중선’은 또 실존 인물 이화중선의 생애를 영화로 준비해온 감독 자신의 연출 헌팅작업 등 진행 중인 실제 활동상황을 그대로 영화로 옮겨 놓은 뒤 그 위에 주제(主題) 인물 이화중선의 묻혀있는 생애를 추적하고 밝히는 과정을 영상 스토리로 담아냈다.
이를테면 감독 스스로가 영화의 주역으로 출연해 전설적인 명창의 생전 삶의 발자취를 추적하고 입증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 작품이다. 과장 없는 신선한 다큐영상은 모두 독창적인 연출 감각의 성과로 볼 수 있다.
주연 배우로 등장한 배우 정이화의 기여도 앞머리에 올려야 한다. 그녀의 이화중선 배역은 단지 주인공의 이미지를 떠올려주는 역할이지만 한없이 외롭고 애잔하면서 온화한 여자의 자태로 관객의 시선을 편안하게 이끌었다. 잔잔한 표정이 변할 때마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우러나고 사람을 대하는 자태는 옛 여인이 저러했을 거라는 상상으로 이어가게 한다.
그녀의 출연 소감은 짧았지만, 여운이 따랐다.
“한없이 걷기만 하는 연기였다. 단지 말없이 내용에 따라 감정을 드러내는 눈빛과 표정을 통한 연기는 감독의 만족도가 너무 높아 힘이 들었지만 찍은 뒤 영상을 보고 너무 놀랐고 행복했다. 모든 장면이 아름다웠다.”
주인공의 환생을 보듯이 정이화 배우를 바라보면서 ‘이화중선’이 다큐필름으로서의 생동감을 더해주는 부문이 박물관 유성기 음반에서 가져온, 이화중선이 생전에 열창한 ‘춘향가’를 비롯해 많은 명창들이 구성지게 불러주는 판소리의 생생한 가락이 배경음악으로 화면을 흔들어대며 귓속으로 파고드는 데 있다.
‘이화중선’은 전주 영상업체 JB영상연구원과 백학기 감독이 설립한 엘오비필름이 손을 잡고 2019년 이화중선 명창의 탄생 120주년 기념 작품으로 기획된 작품이다. 코로나 사태로 진행을 못 하다가 2022년에 크랭크 인, 그로부터 카메라는 2년간 주인공 삶의 흔적을 따라 이동했다.
판소리는 전승지역의 전수(專修) 특성에 따라 전라도 서남지역은 서편제, 북부지역은 동편제, 경기 충청지역은 중고제(中高制)로 구분했다. 임권택 감독의 작품 중에 관객의 호평을 받은 영화가 ‘서편제’였다면 ‘이화중선’은 동편제 소리꾼을 주인공 불러낸 영화다.
이화중선은 출생지와 죽음 관련 대목이 베일에 싸여 있고 생애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부족해 소문류의 설(說)만 분분하게 전해온다. 부산 동래에서 태어나 전남 벌교에서도 살았고, 남원에서 시집살이를 했다는 기록도 설이라는 전제가 달려있다.
남원에 살 때 당대의 명창 송만갑 창극단의 공연을 보고 홀딱 반해 시집을 뛰쳐나와 소리꾼이 되었고 마침내 그 시대 최고의 소리꾼으로 전국 순회공연에서 일본 공연까지 하면서 “하늘을 찌를듯한 인기를 누렸다”는 일화가 따른다.
‘이화중선’ 영화는 로고 라인에 “이화중선의 소리는 참혹했던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산과 들을 휘감았지만 꽃도 무덤도 없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 영화는 “나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는 자막을 시작할 때와 엔딩 장면에 반복해 떠올린다.
이화중선은 삶의 흔적이 불확실하고 무덤도 없지만 그의 소리 혼(魂)은 팔도 산천에 스며있고 당대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특이한 점은 이복동생인 이화선도 판소리의 명창으로 동시대에 활동했고 카메라가 담아낸 그녀의 무덤은 지역 문화재급으로 잘 다듬어져 있었다.
백 감독은 이화중선의 생애와 삶의 발자취를 사실로 확인하는 촬영 작업을 시정 넘치는 섬진강을 낀 부안에서 시작해 순창, 임실, 오수, 김제, 전주 등지에서 순회공연을 간 일본까지 카메라를 가져갔다. 아름다운 영상의 백미는 수시로 주인공이 머문 수려한 산천에서 드론 촬영으로 인간의 감정을 전달하고 묘사한 장면들이다.
쩌렁쩌렁 산천을 울리던 명창은 간 곳이 없지만 그가 머문 바다와 강, 산천과 산골 동네는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아직도 명창의 소리가 산천을 배회하고 있음을 영화 ‘이화중선’이 판타지로 떠올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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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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