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현장] 18년 만에 빛 본 故 신상옥 감독의 '겨울이야기' 비화...눈시울 붉힌 간담회 현장
[365현장] 18년 만에 빛 본 故 신상옥 감독의 '겨울이야기' 비화...눈시울 붉힌 간담회 현장
  • 김리선 기자
  • 승인 202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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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배 영화인들 뜻 모아 故 신상옥 감독의 미공개 유작 공개
- "신상옥 감독, 한땀 한땀 손으로 편집...신 감독 의도 살렸다"
- 신정균 감독, 아버지 신상옥 감독 비화 전해..."'칭기즈칸' 영화 만들고 싶어하셨다"
- 김지숙 배우 "행복했던 촬영 현장" 눈시울 붉혀
내년 1월 18일 개봉을 앞둔 故 신상옥 감독의 마지막 작품 '겨울이야기' 시사회에서 조동관 촬영감독, 김지숙 배우, 신정균 감독.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 "20여 년 전 영화를 보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이런 자리가 만들어질 줄 예상하지 못했어요. 신상옥 감독님이 이 자리에 안 계신다는 게 실감이 안나요."

29일 한국 영화계 거장 故 신상옥 감독의 마지막 작품 '겨울 이야기'의 언론시사회가 끝난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주연 배우 김지숙이 눈시울을 붉혔다.

'겨울 이야기'는 2004년 촬영이 종료됐으나, 2006년 신상옥 감독이 건강 악화로 타계하면서 미공개 유작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신 감독의 장남 신정균 감독과 당시 촬영감독이었던 조동관 촬영감독 등 후배 영화인들이 뜻을 모아 오래된 필름을 복원한 끝에 이날 세상에 공개됐다. 개봉은 1월 18일이다. 

신정균 감독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5년 전부터 '겨울이야기'를 개봉하려고 했지만, 코로나19로 미뤄지다가 개봉을 하게 됐다"며 "신상옥 감독님의 유작이기도 하지만, 감독님의 작품 중 유일하게 개봉을 못 했다는 옥에 티를 이번 개봉으로 해소하는 것 같아 기분 좋다"는 소감을 전했다.

신상옥 감독, '겨울이야기' 하나부터 열까지 한땀 한땀 손으로 완성

故 신상옥 감독의 유작 '겨울이야기' 포스터

신정균 감독은 완성본과 관련해 "우리의 연출 의도나 감정을 철저히 배제하고, 신상옥 감독님의 손길을 최대한 살리면서 삐딱거리는 부분만 조심스럽게 손을 봤다"고 말했다.

"감독님이 건강이 악화되셔서 손을 놓기 전까지 이미 러프하게 편집은 되어 있었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감독님이 한땀 한땀 손으로 편집하셨죠. 우리가 한 일은 부드럽게 보여주기 위해 마무리한 정도입니다."

당시 촬영감독이었던 조동관 감독은 눈시울을 붉히며 "감독님의 마지막 작품 촬영이 되어 버렸다"며 "감독님이 돌아가신 후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겨울이야기' 장면./사진=와이드 릴리즈㈜, 시네마뉴원 

조 감독은 기억 남은 일화로 눈이 오는 마지막 장면을 촬영했을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감독님이 그 당시엔 굉장히 건강하셨고, 활발하게 움직이셨다. 독립문 고가도로 밑에서 촬영했는데, 앞으로 질주하실 때엔 우리보다 걸음이 더 빨랐다"고 회상했다.

당시 촬영 장소가 협소한 데다, 자금 부족으로 촬영 상황도 여의치 않았지만, 신상옥 감독의 편집은 이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그는 "감독님으로부터 편집을 많이 배웠다. 사거리에서만 찍었던 장면이 1㎞ 이상 이동한 것처럼 편집 각도를 정확히 찍어주시더라. 감독님의 내공이 담긴 작품이었고, 이 작품을 하면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겨울이야기'는 일본에서 무려 193만 부의 판매 부수를 기록한 '황홀한 사람'가 원작이다. 간병 가족의 시선에서 치매 노인의 삶과 돌봄 의무의 부담감, 사회의 무관심함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노년기의 애환을 담아냈다.

신구가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치매를 앓게 된 노인 역을 맡았으며, 김지숙이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를 돌보는 며느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겨울이야기' 장면./사진=와이드 릴리즈㈜, 시네마뉴원 

김지숙은 작품 섭외가 왔을 때 처음엔 고사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당시 한창 무대 활동을 할 때였는데, 에너지가 넘치고 감정적으로도 많이 고양된 작품들이 많았다"며 "일상적인 역할을 할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상옥 감독을 만난 이후 마음을 바꿨다며 "세 가지 이유로 설득당했죠"라고 말했다.

"감독님이 최은희 선생님과 제 무대를 보신 후 저를 섭외하기로 합의를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칭기즈칸 일대기 영화를 꼭 찍고 싶다시면서, 극 중 아내 역으로 저를 시키실 거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제게 워밍업처럼 이 작품을 함께하자고 하셨죠. 마지막으로 나를 믿으면 된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믿고 촬영에 임했어요. 긴장하지 않고 감독님 뵙는 마음으로 현장에 나간 건 처음이었어요. 마음의 부담이 없이 편하게 작업한 것도 처음이었죠."

신상옥 감독, 영화에 대한 뜨거웠던 열정...촬영장 함께 했던 신상옥-최은희 부부

신상옥 감독은 칸 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겨울이야기'를 만들어지만, 어렵게 자금을 조달해 시작한 작품이었다.

앞서 신상옥 감독은 KAL기 폭파사건을 영화화한 '마유미'(1990)와 김대중 납치사건을 영화화한 '증발'(1994)을 선보였지만, 흥행에 실패했다. 투자가 여의치 않은 상황 속에서도 영화에 대한 그의 열정은 뜨거웠다.

신정균 감독은 "아버지가 어떻게든 영화를 하시고 싶어하셨다"며 "'겨울이야기' 전 고 강수연, 최불암 등이 주연한 '방문'이란 저예산 영화를 찍었지만, 제작비 조달이 힘들어지면서 2/3를 찍고 중단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당시 신상옥 감독의 아내이자 전설의 배우인 故 최은희 여사는 '겨울이야기'에 반대했다고 한다.

신정균 감독은 "제작비도 적고, 나이도 있는데 몸 상한다면서 어머니가 반대하셨다"며 "나중에 탄로가 나서 그냥 같이하셨다"는 비화를 전했다. '겨울이야기' 엔딩 크래딧에는 '캐스팅' 담당자로 최은희 여사의 이름이 올라있다.  

'겨울이야기' 장면./사진=와이드 릴리즈㈜, 시네마뉴원 

'겨울이야기' 역시 넉넉하지 못한 제작비 사정으로 현장은 열악했지만, 현장은 행복했다고 김지숙은 당시를 회상했다.

김지숙은 "주택가고 주변에 음식점이 없어서 식사가 매일 만두였다"며 "야식으로 라면을 먹으면 거기에 만두가 있었고, 떡만두, 칼국수만두 등 다양한 만두를 먹었다"고 웃었다.

"하루는 신구 선생님이 '오늘 또 만두냐'고 물으니, 감독님이 '이 만두의 맛이 당신 고향의 만두 맛'이라며 '참 맛있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말 없이 다들 맛있게 먹었습니다. 특식으로 먹은 통닭도 기억납니다. 극 중 NG를 대비해 준비해뒀던 통닭이었는데, 식은 통닭이었어도 아주 맛있었죠."

김지숙은 "행복했던 현장이었다"며 말을 잊지 못하고 또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감독님이 배우들에게 편하게 해주셨다. 카메라 뒤에서 계신 모습이 멋진 분이셨다"고 말했다.

‘겨울이야기’ 촬영현장에서 故 신상옥 감독과 배우 신구/사진=영상자료원
‘겨울이야기’ 촬영현장에서 故 신상옥 감독과 배우 신구/사진=영상자료원

또 최은희 여사와의 기억을 꺼내며 "중요한 장면이 있을 때마다 최은희 선생님이 오셨는데, 두 분이 그 장면에 대해 카메라 밖에서 의논하시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며 "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선배님들의 모습"이라고 떠올렸다. 

"감독님은 배우들에게 "연기하지 말고 힘을 빼라"고 말씀하셨는데, 최은희 선생님이 감독님에게 "배우한테 연기하지 말라고 하면 배우들은 어떻게 하냐"고 속 시원하게 한마디 하셨어요. 최 선생님이 촬영장에 오신 날은 현장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곤 했죠."

신상옥 감독은 1960년대, '성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연산군' 등 한국 영화의 황금기와 함께 수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며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다. 1994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신정균 감독은 신상옥 감독이 늘 '칭기즈칸' 영화를 만들고 픈 꿈이 있었다고 말했다.

"동양의 영웅 역할을 왜 자꾸 서양 배우가 맡느냐면서 '칭기즈칸'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셨어요. 당시 부동산 재벌인 일본 투자자가 있었는데, 7000만 불 규모로 주윤발, 성룡 등 캐스팅도 생각하셨다고 해요. 그러나 당시 일본 버블경제 붕괴로 투자를 못 받았고 시나리오만 나왔어요. 결국 이 작품은 미완으로 남게 됐죠."

김리선 기자
김리선 기자
leesun@interview36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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